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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엉 Jul 08. 2024

1일 1버리기 25일차

오엉씨는 어떤 사람인가요?


5월은 정말 힘들었다.


작년 9월에 새로 온 과장님 때문에 너무 힘들어서 결국 교육지원청에서 학교로 자리를 옮겼었는데, 도망친 곳에 영광은 없다고 했었나. 여기는 교장선생님과 한 부장님이 날 괴롭게 했다.


3월은 허니문 기간이었고, 4월부터 아이들 문제가 터지기 시작. 5월이 되자 교실 내 문제들을 지원하라는 압박이 나에게 몰리기 시작했다.


나보다 어린 그 부장님은 첫 만남부터 인상이 좋지 않았는데, 나이 지긋하신 분들 앞에서도 거리낌 없이  ‘애새끼들이‘ ’또라이같은 부모들이‘ 하며 욕을 해댔다. 목소리는 또 어찌나 큰지. 그가 입을 열 때마다 심장이 두근거리고 인상이 찌푸려졌다.


불행하게도 그와 같은 연구실을 쓰게 됐는데, 분리수거를 하지 않고 쓰레기통을 함부로 쓰고 정수기 배치를 자기(만) 편한 식으로 바꿔놓은 것도 그에 대한 반감에 한몫했다. 그의 반 아이들이 유독 극성이라는데, 그런 애들을 상대로 수업시간과 쉬는시간/점심시간 규칙을 지키지 않고 자기 편한 식으로 운영하는 것이나 매일같이 고함치고/사랑한다고 말하는 극과 극의 생활지도 방식 또한 맘에 들지 않았다.


목소리가 워낙 커서 그가 수업하고 생활지도 하는 내용이 나에게 다 들린다는 사실이 가장 괴로운 포인트였다.


교장선생님은 내가 그의 반을 적극 지원하길 바라셨고, 나는 그의 반 VIP에 대해 개인상담/종합심리검사/외부놀이치료/소규모집단상담/학급단위집단상담/외부강사연극치료 등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지원을 다 계획했다.


그러나 그 부장님에게, 나의 성공은 곧 그의 실패였으리라.


그는 할 수 있는 모든 무의식적인 방법으로 내가 지원하는 상담을 방해했다. “상담한다고 애 안 바뀌어요.”하며 내가 하겠다는 상담을 못하게 하는 게 나를 제일 괴롭게 했다. 연극치료 강사님을 무시하거나 들어오셔도 인사도 안 하고, 연극치료 때마다 애들을 혼내고, 연극치료에 VIP 학생이 참여하지 못하게 하는 등의 방해도 정말 괴로웠다. 그에 대한 반감이 날로 커져갈 때, 교장선생님은 한 달에 한 번씩 모여 회의를 하자고 하셨다. 교장선생님은 담임교사들의 이야기를 듣길 원하셨고, 그 모임을 꼭 내가 주최하길 원하셨다.


학기 초에 교장선생님이 시키신 일 하나를 매몰차게 거절한 적이 있었다. 내가 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고, 아닌 게 맞았고, 그래서 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그때부터 그분은 내게 직접 일을 지시하지 않으시고, 교감선생님이나 교무부장님을 통해 지시하셨다. 그때부터 교장선생님에 대한 반감도 커졌던 것 같다. ‘결국은 다 하게 만드는구나.’ 하면서.


이 학교에 와서 반감을 갖게 된 그 두 명을, 한 달에 한 번씩 만나야 한다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괴로웠는데 교장선생님이 어느 날 ‘간식을 준비하라.’고 하셨다. ‘선생님들 힘드시니까.’


이때 터졌던 것 같다.


그 부장님 힘드니까 한 달에 한 번 회의 열고 간식을 준비하라고? 그 반 지원하느라 개인상담에 외부연계에 강사섭외에 온갖 행정처리 다 하는 나는 안 힘들고? 애초에 내가 그 반 담임을 했으면 걔보단 나았겠다! 그리고 본인이 담임교사들 힘든 거 지원한다고 생색내고 싶은 걸 왜 나를 일 시켜? 내가 학생상담 담당자지 교사들 힘든 거 지원하는 복지산가?!??


머릿속에 온갖 생각이 올라왔다. 안 한다고 할까, 못 한다고 할까, 한 번만 해보고 말할까, 시작하기 전부터 싹을 잘라야 할까, 그냥 다 뒤집어엎고 미친년으로 찍혀서 살까, 그냥 눈 딱 감고 하면 될텐데 난 왜 그게 안될까.








간식을 준비하라는 말을 들은 게 어느 금요일.

월요일 출근 전 일요일에 밤새 한숨도 못 잤다.

어떤 스탠스를 취해야 할까, 생각하지 않으려 해도 온갖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상상 끝의 나는 이미 의원면직하고 유학을 떠나 있기도 했다.


출근한 아침부터 교감선생님을 찾아가서 내가 어떤 상태인지를 말씀드렸다. 그는 부장님에 대한 나의 마음에 공감하고 교장선생님이 시키신 일의 부당함에도 공감하며, 그러나 자신이 도와줄 수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교장선생님께도 찾아가지 말라고 하셨다.


그래서, 생애 처음으로 정신건강의학과에 방문하게 됐다.



예약도 없이 갔는데 운 좋게 진료를 볼 수 있게 됐다. 접수를 하고 사전설문으로 SCT(문장완성검사)와 우울/불안검사 등을 하면서, ‘와 이거 나도 다 쓰는 건데.’ 했다.


11번. 내가 늘 바라기는 _________________.


이 문항에 ‘다른 사람을 미워하지 않고 마음이 평안하기를 바란다.’고 적으면서 눈물이 났다.


눈물이 나서 놀랐다. ‘나 진짜 우울하구나.’ 짐작했다.


젊은 남자 의사 선생님이 어떻게 오시게 됐냐고 묻자마자 또 눈물이 났다. 이런 사람이 있고 저런 사람이 있고, 이런 일이 있었고 저런 일이 있었어요. 한 달에 한 번 회의 그게 뭐 어려운 일이라고 제가 이렇게 힘들어하는 걸까요? 눈물을 닦아가며 말했다.


의사 선생님은 내 부모님은 어떤 분들이신지도 묻고, 생애초기기억도 묻고, 친구관계는 어떤지 학창 시절엔 어떤 학생이었는지, 이전 직장들에선 비슷한 일은 없었는지 등등 아주 다양한 질문들을 던져주셨다.


내가 상담에서 하는 질문들을 정신과 의사도 하는 줄 몰랐다고, 원래 이렇게 다양한 질문들을 하시냐고 여쭤봤다. 그는 “오엉씨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어서요.”라고 했다.


성실하게 대답하는 동안 그도 나도 알게 됐다.


- 많은 이들에게 상냥하지만 불의나 부당함을 참지 못하는 것은 엄마를 닮았다.


- 교감선생님/장학사님/실장님 정도까지는 내 할 말을 하지만, 그 윗급(교장선생님/과장님)에게는 권위에 대한 복종 의식이 분명히 있다.


- 그러나 그런 직급의 사람들이더라도, 인격모독을 하거나 터무니없는 갑질을 했다면 분명 되받아쳤을 것이다. 하지만 ‘일’이라는 포장으로 감싸 혼란을 겪었다.


- 부장님의 무의식적인 생각(상담의 성공이 곧 본인의 학급경영/생활지도 실패을 의미한다는 것)이 함정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가 회의 자리에서 그런 말을 한다는 것은 곧 내 능력부족으로 비칠 거라는 것. 그게 또 죽기보다 싫었다.


- 이 학교에 있던 내 전임자가 나보다 후배였다는 이유로, 나는 그녀가 거절하지 못했던 많은 일들을 거절하려는 다짐과 함께 일을 시작했었다. 그런 내 태도는 분명 교장선생님께도 보였으리라. 이건 내가 오만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게 하는 구슬들을 의사 선생님과 함께 꿰면서, 내가 왜 그렇게 힘들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 이해하게 됐다. 내 힘듦을 내가 인정해 주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래 힘들 수밖에 없었겠다. 힘들었지. 스스로를 이해해 주자 눈물이 그쳤다.


나를 충분히 이해해주고 나니, 타인에 대한 이해도 열렸다. 그래 그 부장님은 매일 호통치고 고함치고 얼마나 힘들겠어. 자기가 몇 개월 해도 안 됐는데 내가 바로 성공해버릴까 봐 얼마나 불안했겠어. 교장선생님은 충분히 시킬 수 있는 일을 시키신 거야. 모두를 돕고 싶으시겠지. 그리고 이 학교에서 그 일에 제격인 사람은 내가 생각해 봐도 나밖에 없지.


부장님을 이해하고, 교장선생님의 권위를 인정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회의도 그냥 별 거 아닌 일 중 하나로 진행할 수 있을 것 같아졌다.








의사 선생님이 주신 항불안제와 안정제는 하루 먹어보고는 다음날까지 하루종일 너무 몽롱해서 먹지 않았다. 출근길에 운전하는데 ‘와 이거 위험하다.’ 싶었다. 다음날 저녁을 먹고서야 머릿속 안개가 걷히는 느낌이 들어서 그 후론 먹지 않았다. 먹지는 않지만 언제 또 잠을 못 자게 될지 몰라 서랍 한켠에 두었다.


한 달 동안 [인간관계론]을 읽으며 마음을 수양했다. 내가 가진 것에 감사하고, 그들에 대한 분노를 연민과 관심으로 바꾸고, 부장님께는 인간관계론의 방법들을 실천하고 교장님께는 적당히 거리를 두는 방식을 선택했다. 각자의 위치에서 얼마나 고생일까에 초점을 맞춰 관심을 표현하니 나를 대하는 그들의 얼굴도 달라졌다. 웃어주는 얼굴이 마주하고 있는 내 얼굴도 웃고 있다.


한 달 정도 지난 오늘, 드디어 약을 버렸다.

이젠 약이 없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 연재를 이어갈 수 있게 격려해준 주소니 에스리에게 감사합니다..하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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