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1. ep 12. 소진
다음은 소진이.
5학년 때는 분명 존재감이 없었는데, 6학년이 되고 나서 급부상한 아이였다.
메린이가 축구하는 동안, 스탠드에 앉아서 기다리는 여자아이들 무리가 있었다. 서로의 파우치를 구경하고, 화장을 하고, 셀카를 찍는. 학교에서 딱 그 나잇대의 사춘기 여자아이들이 할 법한 일들을 하는 무리. 소진이는 그중 한 명이었다.
그런데 다른 여자애들하고는 한 끗이 달랐달까.
긴 머리는 하늘거렸고, 눈은 어쩐지 슬픔에 차 있었다. 늘 춥게 입었고, 큰 카디건이나 셔츠를 한쪽 어깨가 드러나게 흘러내리고 다녔다.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에 나온 임수정 같은 이미지였달까. 그 나잇대의 여자아이들에게서는 보이지 않는 처연함이 있었다.
소진이는 집을 싫어했다. 학교를 싫어했다. 아빠를 특히 싫어했고, 담임선생님을 특히 싫어했다.
담임선생님은 그해 새로 전입 오신 분이었다. 나보다 서너 살 많은 남자 선생님. 엄하고 무서웠다. 소진이는 아마 그분에게서 아버지의 모습을 봤을 거다.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도망칠 곳이 없었던 거다.
그래서 생긴 문제가 '학탈'이었다. 학교 탈출.
5월이었나 6월이었나, 교감선생님한테서 전화가 왔다. 소진이가 없어졌다고, 같이 좀 찾아달라고. 그때는 여자 화장실에 숨어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때 이후로 몇 번의 '교실 탈출'이 있었다. 수업 중에 슬쩍 나가서 어딘가에 숨어 있는 것. 그때마다 찾아내서 물어보면 대답은 비슷했다.
"수업 듣기 싫어요."
"담임이 싫어요."
"학교에 있기 싫어요."
그날그날의 불만 사항들을 충분히 들어주고, 공감해 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업 시간에 무단으로 탈출하면 안 된다고 타이르고. 그런 것밖에는 할 수가 없었다. 아이를 의자에 묶어놓을 수는 없는 거니까.
그런 대응이 너무 나이스했던 걸까.
10월이 되고, 또 한 번의 교실 탈출이 생겼다. 근데 이번엔 아무리 온 학교를 뒤져봐도 아이가 보이지 않았다. 교감선생님께서 혹시 학교 밖으로 나간 거 아니냐며 CCTV를 한번 확인해 보자고 하셨다. 행정실에 가서 CCTV를 돌려봤다. 맙소사. 이번엔 학교 밖으로 나갔더라.
교실 탈출이 아니라 학교 탈출. 이건 말이 달라진다. 아이 안전 보호를 위해 경찰에 연락하고, 학교 인원 몇 명으로 대응팀을 꾸려서 나가서 찾아야 한다. 교감선생님은 본인이 경찰에 연락하고 대응팀을 꾸리겠다고 하셨다. 나한테는 얼른 담임선생님한테 가서 말씀드리고 같이 내려오라고 했다.
그래서 그 반으로 갔다.
똑똑.
앞문을 두드렸다. 아무 반응이 없었다. 수업 중이시니 노크 소리를 못 들으셨나 보다 싶어서 다시 두드렸다.
선생님이 말씀을 멈추신 그 타이밍에, 똑똑똑.
여전히 문 쪽을 쳐다보지도 않으셨다. 오히려 아이들만 의아한 눈으로 앞문을 쳐다봤다.
다시 똑똑똑, 노크를 하고 앞문을 살짝 열었다.
"저 선생님—"
'수업 중에 죄송합니다'라는 말씀을 드리려는 찰나였다.
"지금 수업하는데 뭐 하시는 겁니까?!"
그 선생님이 나를 노려보셨다.
수업 중인 거 안다. 아는데, 본인 반 학생 한 명이 지금 교실 탈출 상태인 거 본인도 알 거 아닌가. 지금 본인 반 학생 대신 찾아주러 쎄빠지게 뛰어다니다가, 그 아이가 심지어 학교 밖으로 나갔다는 심각한 상황을 알리러 온 건데. 나를 도끼눈을 뜨고 나무랄 일인가.
"아, 수업 중에 죄송합니다. 급하게 드려야 될 말씀이 있어서요."
잠깐 복도로 나와 달라는 눈짓을 했다. 그분이 말했다.
"그냥 거기서 말씀하세요."
본인은 여태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은 채로.
"소진이가 학교 밖으로 나갔어요. 교감선생님이 찾으러 가야 한다고 모셔오라고 하시네요."
"학교 밖으로 나갔든 어디로 나갔든 알아서 찾으세요. 난 상관 안 합니다."
그러더니 나한테서 시선을 거두고는, 다 들리는 소리로 중얼거렸다.
"지금 수업하는데 뭐 하자는 거야 진짜."
그때의 모멸감. 혐오감.
그에게 받은 데미지가 너무 컸어서, 몇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그 눈빛과 그 대사가 잊히지 않는 걸 거다. '수업도 안 하는 게.' '수업 안 하는 네가 찾아오면 되겠네.' '수업.' '수업.' 비담임 교사이자 비교과 교사로서의 열등감이 얹힌 해석이겠지만, 나는 그렇게 들렸다. 그래서 모멸감이 느껴졌다.
'너는 걔가 안 소중해? 소진이는 네 반 학생도 아니야?' '예수님도 한 마리 양을 찾기 위해 99마리 양 떼를 두고 떠나는 게 더 가치 있다고 하셨어, 알아?' 머릿속에서 독실한 크리스천이라는 그를 향한 비난이 쏟아졌다. 이건 그에 대한 혐오감. '소진아. 네가 치를 떨 만하다, 이 인간.' 그런 생각을 했다.
결국 그는 오지 않았다. 교감선생님이 꾸린 대응팀 몇 명이서 학교 밖을 순찰했다. 나는 소진이와 소진이 어머님께 계속 연락을 했다.
그날 대응팀이 아이를 찾았는지, 아이가 내 연락에 응답했는지, 아니면 아이가 집으로 왔다고 어머님께 얘기를 들었는지. 이상하게도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담임이라는 인간과의 장면이 너무 강렬해서, 다른 건 다 휘발된 것 같다.
아무튼 그날 이후 소진이와 나는 강렬한 공감대를 형성하게 됐다.
"쌤. 제 말 맞죠? 제가 말했죠? 살벌하다 했죠?"
"어 그니까. 나도 알겠더라. 살벌하더라."
그렇게 깊은 관계가 시작됐다.
슬프고도 아름다운 1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