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day

Part 1. ep 13. 메린이의 겨울

by 오엉


메린이를 처음 상담했을 때, 그 애가 말했다.


"인스타그램에 자해 계정이 따로 있어요."


보여달라고 하지 않았다. 아니, 못 했다. 그때는 그게 뭔지도 잘 몰랐다. 자해 계정이라는 게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메린이는 기본 계정만 보여줬다. 평범한 일상 사진들. 친구들과 찍은 셀카, 축구하는 모습, 급식 사진.

그리고 메린이는 상담실에 오지 않게 됐다.


나는 인스타그램에 들어갔다. 메린이 기본 계정의 팔로잉 목록을 뒤졌다. 이름이 비슷한 계정, 프로필 사진이 없는 계정, 팔로워가 적은 계정. 하나씩 들어가 봤다. 며칠을 그렇게 추적했다.


찾았다.


메린이의 자해 계정.







처음 그 계정에 들어갔을 때, 숨이 멎는 것 같았다. 피가 맺힌 팔뚝 사진. 칼날 사진. 붕대 감은 손목 사진. 그리고 글들.


'자해했는데 약국 가서 무슨 밴드를 살까요? 추천해 주세요.'

'피 잘 나오고 살 잘 찢어지는 칼 추천해 주세요.'

'녹슨 칼로 자해하면 파상풍 걸려요?'


12살짜리 아이가 쓴 글이었다. 밴드를 추천해 달라고, 칼을 추천해 달라고, 댓글로 부탁하는 글. 그 글 밑에는 진짜로 추천이 달려 있었다. 같은 또래로 보이는 아이들이, 자기가 쓰는 밴드 브랜드를, 자기가 쓰는 칼 종류를 알려주고 있었다.


세상에 이런 게 있구나. 이런 세계가 있구나.


메린이는 거기서 죽고 싶다고 썼다. 한 번이 아니었다. 매일같이 죽고 싶어 했다.


나의 버킷리스트

1. 팔 전체 긋기

2. 맘 편히 하루 동안 울기

3. 죽기 전에 떠나지 않은 지인들에게 편지 쓰기

4. 죽기 전에 행복해보기

5. 옥상에서 떨어져서 죽기


버킷리스트의 다섯 번째가 '옥상에서 떨어져서 죽기'인 아이. 그 앞에 '행복해보기'가 있었다. 죽기 전에 행복해보고 싶다는 아이. 행복해본 적 없는 아이.


메린이는 날짜를 세고 있었다.


'뒤지는 날 D-947.'


디데이가 있었다. 죽는 날을 정해놓고, 그날까지 카운트다운을 하고 있었다.


'그냥 좆같아서 1년 앞당겼어요.'


어느 날 갑자기 디데이가 줄어들었다. 1년이 훅 줄었다. 그다음엔 또 줄었다. D- 뒤에 붙은 숫자가 점점 작아졌다.


'2021년 8월 16일 자살 시도 성공하면 좋겠다.'


8월 16일. 메린이 생일이었다. 자기 생일에 죽겠다니.


겨울방학 내내 그 계정만 봤다. 매일 들어갔다. 새 글이 올라오면 읽었다. 읽고 또 읽었다.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댓글을 달 수도 없고, 연락할 수도 없고, 찾아갈 수도 없었다. 메린이는 나를 배신자로 여기고 있었으니까. 상담실에 오지 않았으니까.


그냥 지켜보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개학을 얼마 앞두지 않은 날. 새로운 글이 올라왔다.


'오늘은 자살 시도를 합니다. 2번째 시도니까 목 졸라 보려고요. 실패하면 반겨줘요. 11시에 시도해요.'








그 글을 본 날 밤, 잠을 잘 수가 없었다. 11시. 시계를 봤다. 11시 10분. 11시 30분. 12시. 새 글이 올라오지 않았다. 성공한 걸까. 실패한 걸까. 메린이는 지금 살아있는 걸까.


새벽이 되어서야 글이 올라왔다.


'자살 시도 실패했어요. 죄송해요. 살아있어서...'


살아있어서 죄송하다고. 12살짜리 아이가.


그 글을 보고 울었다. 안도감인지 슬픔인지 분노인지 모를 눈물이 났다. 살아있어 줘서 고맙다고, 죄송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할 수 없었다.


'나 진짜 무슨 일이 있어도 2019년이나 2020년 둘 다 자살 시도한다. 제발 성공하기를. 안 한다고 약속했는데 못 지킬 것 같아서 미안해. 형아.'


다음날 디데이는 2021년에서 2020년, 2019년으로 앞당겨졌다. 마음 아팠다.


그러나 형아라니. 메린이에게 누군가가 있었다. 자해하지 말라고, 죽지 말라고 약속을 받아낸 누군가. 메린이는 그 약속을 지키려고 버티고 있었다. 버티다가 못 버티겠다고, 미안하다고 쓰고 있었다.


잡아줄 사람을 원하는구나.


그걸 알았다. 겨울 내내 메린이 글을 읽으며, 그 애가 무너지기 직전이라는 걸 알았다. 동시에, 아직 손을 뻗으면 잡을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 누군가 잡아주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도.


그래서 새 학기가 시작되자마자 공개 사과를 한 거였다. 6학년 교실에 들어가서, 메린이가 보는 앞에서, 작년에 내가 잘못했다고 말했다.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한 번만 더 믿어달라고.


디데이가 점점 줄어들고 있었으니까.


그 애를 잡아야 했으니까.


메린이가 다시 상담실에 왔을 때, 나는 그 계정을 봤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지금도 하지 않았다. 아마 앞으로도 하지 않을 거다.


다만 그 겨울, 매일 밤 그 계정을 들여다보며 조마조마했던 그 시간들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새 글이 올라올 때마다 심장이 쿵 내려앉던 그 느낌을. '자살 시도 실패했어요'라는 글을 보고 울었던 그 새벽을. 그 애가 죽지 않기를 기도하며 혼자 키워간 깊은 사랑을.








메린아. 죽고 싶을 만큼 힘들었던 그 겨울에, 선생님이 같이 버텨주겠다고 말해주지 못한 게 내내 미안했어.

#말하면들어준다며 #상담해준다며 라는 해쉬태그를 발견했을 때 얼마나 눈물로 후회했는지 몰라.

근데 또 자해계를 보고 있다고 말하면 사라져 버릴까 봐 말도 못 하고 몰래 지켜봤어. 죽지 않기를 기도했어.

그 겨울을 버텨내고 살아줘서 고마워. 상담할 수 있게 해줘서 고마워. 진짜 고마워.



매거진의 이전글태초에 그녀들이 있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