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1. ep 15. 신고
소진이랑 윤아가 상담실에 와서 자기들끼리 화장하고 핸드폰하고 그러고 있었다. 어쩌다가 대화를 들어보니 담임 욕을 신랄하게 하고 있길래 넌지시 말했다.
"다른 선생님 있는 데서 담임 선생님 욕하지 마라."
그랬더니 윤아가 말했다.
"우리 담탱이는 욕해도 돼요. 담탱이가 소진이 성희롱했어요."
뭐?
했더니 소진이가 진짜라고 했다.
담임선생님이 자기보고 '몸 파는 년'이라고 했다고.
전에 말했듯이 소진이는 늘 가디건이든 남방이든 흘려 입어서 한쪽 어깨를 드러내놓고 다녔다. 여름에 속에 나시를 입고 어깨를 드러내놓고 있었는데, 담임선생님이 그 옷차림을 지적하면서 말했다는 거다.
"니가 몸 파는 년이야? 너 몸 파세요?"
애들 다 있는 데서. 한두 번이 아니라고. 다른 증인들도 데려올 수 있다고.
아니 뭐 내가 판사도 아니고 다른 증인들까지야 필요 없는데. 교사가 학생을 성희롱하면 문제가 좀 크다. 게다가 바로 오늘이나 어제 있었던 일도 아니고, 여름에 있었던 일이었다. 애들은 정확한 날짜나 시간도 기억 못 했다.
솔직히 '하씨, 내가 이걸 왜 들어가지고'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뭐 어떡해. 들은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잖아. 또 교무실 가야지.
교감선생님께 말씀드렸더니 한숨부터 푹 쉬시더라.
'몸 파는 년'이라고 했을 것 같진 않은데, 아이들 기억이 그렇다면 신고는 해야겠지. 뭐 어떡하겠냐고.
나도 딱 그 입장이었다. 그분이 진짜로 아이한테 그런 말을 하셨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아이들 입으로 그런 말을 들은 이상 신고의무가 있기에 그걸 이행할 수밖에 없는.
그렇게 찝찝하게 아동학대 신고가 들어갔다.
교감선생님은 내 신원을 보호해 주시겠다고 했지만, 소진이 담임선생님은 결국 내가 출처임을 알게 됐다. 경찰이 말했는지 교감선생님이 말했는지 모르겠다. 알고 싶지도 않다. 그냥 그분이 나만 보면 엄청 노려보시길래, 그래서 그냥 '아, 알았구나' 싶었다.
며칠간 경찰이 학교를 왔다 갔다 하고, 소진이를 상담실에서 만나 조사하고 그러셨다. 아마 6학년 연구실에서 그 선생님도 조사하셨겠지. 조사가 어떻게 흘러갔는지, 결과가 어떻게 나왔는지, 그런 건 난 모른다. 기밀 사항이라. 아마 다른 선생님들은 이런 일이 있었다는 것도 모를 거다.
근데 교감선생님이 중간에 날 불러서 말씀해 주셨다. '몸 파세요?'라고 한 게 아니고, 바자회 시간에 '뭐 파세요?'라고 한 거라더라고.
소진이 말을 전부 믿을 수 없었던 것처럼, 그분의 말도 전부 믿어지지는 않았지만. 네. 그렇군요. 정도로 대답했던 것 같다. 교감선생님도 말씀을 아끼셨다. 응. 그렇대.
6학년 선생님들은 다 알았다.
6학년이 그해의 기피 학년이었다. 기존 교사들 중에 희망자가 없어서 전입 교사와 신규 교사를 모조리 6학년에 몰아넣었다. 그래서 6학년 선생님들이 엄청 고생을 하셨고, 어떻게 새로운 사람들을 다 6학년에 몰아넣을 수 있냐고 학교 욕을 오지게 하면서 엄청 끈끈해지셨다. 전우애로 뭉친 학년. 그들끼리는 모든 걸 공유했나 보다.
아마 내가 역적이 되어 있었겠지.
6학년에 문제가 많아서, 6학년 수업을 추가적으로 들어가는 때가 많았다. 연강하다 보면 수업 사이 쉬는 시간엔 상담실로 가지 못하고 6학년 연구실에 있었는데, 그때 느꼈다. 다 아는구나. 다들 예전 같지 않게 나한테 되게 냉랭하게 구셨다.
그러다가 어느 쉬는 시간에 내가 연구실로 들어갔고, 소진이 담임선생님도 들어왔다. 연구실에 계시던 다른 선생님들은 나가시더라. 그래서 둘만 남게 됐다.
내가 인사했는데 쳐다보지도 않으셨다.
다시 선생님, 하고 불렀다. 역시 대답을 안 하셨다.
"선생님... 죄송해요."
내가 그랬다. 모르겠다. 사실 죄송할 건 없었는데, 죄송하다고 해야 될 것 같았다.
"아뇨. 선생님도 해야 할 일을 하신 건데요."
그분이 대답하셨다. 그러고는 등을 딱 돌리셨다. 의자에 앉아서 다리를 다른 의자에 척 올리시더니 핸드폰을 하셨다. '이제 너랑 얘기 안 해.' 뭐 그런 느낌.
더는 그 공간에 같이 있을 수 없을 것 같아서 나도 나왔다. 나오는데 눈물이 좀 날 것 같아서 꾹 참았다. 교무실 밖 복도에서 놀던 6학년 아이들이 "에? 상담쌤 울어요?"하며 다가왔고, 나는 하품을 했다고 핑계를 댔다. "그런 거 캐치하지마!" 괜히 애들에게 심술도 부렸다.
왜 내가 사과를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왜 저 사람한테 저자세로 자리를 비켜줘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그냥 좀 다 억울해서. 근데 또 한편으로는 나 때문에 저 사람이 곤경에 처하게 된 게 미안하기도 해서. 만약 사실이 아니라면 얼마나 억울하고 곤란했을지. 평생 학생들을 만나야 하는 사람인데, 학생 때문에 얼마나 상처받았을지.
사실이 아니길 바라는 마음으로 죄송해했다.
그 이후로 그분과 더 대화를 나눈 적은 없다. 그때는 미움받는다는 생각에 내 억울함이 컸는데, 이제 와 생각해 보니 그분에게도 너무 큰일이었을 것 같아 미안하다. 물론 진짜 소진이한테 그딴 말을 했으면 그건 그가 치러야 할 죗값이기에 미안한 마음도 없겠지만.
누가 진실을 말한 건지. 진실이 어디에 있는지. 그걸 모르는 게 내 한계라.
상담교사의 일이 늘 그렇다. 진위 여부를 가리는 게 일이 아니라 내담자의 세계에서 내담자가 진실이라고 믿는 것을 같이 경험하는 일이라, 늘 이렇게 어려운 상황이 생기는 것 같다.
소진이가 느낀 수치심과 모멸감은 진짜였을 거다. 그 선생님이 느낀 불쾌함과 억울함도 진짜였을 거다. 둘 다 진심인데, 둘 다 진실일 수는 없는.
그 사이에서 저는 소진이의 진심을 함께 겪어줄 수밖에 없었어요. 아시잖아요. 그 애가 얼마나 위태로웠는지. 죄송해요. 죄송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