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1. ep 16. 교장, 아줌마
그 시기는 모든 게 뒤엉켜 있었다.
전에도 말했듯이 6학년에 일이 많이 터져서 추가 수업을 들어가고 있었다. 추가 '학급단위 집단상담'.
메린이네 반이었다. 거의 학급 붕괴 수준이었다.
한 학생이 학교폭력을 신고했다. 메린이와 반 친구들을 다 가해 학생으로 지목하면서. 담임선생님은 신규 교사라 메린이나 기 센 다른 애들을 잡지 못했는데, 피해 학생이라는 애가 저지르는 일들도 컨트롤을 못 했다. 집단따돌림 당한다고 주장하면서, 반 애들한테 우유를 던져서 터뜨리거나 책상을 발로 차서 넘어뜨리거나 애들한테 쌍욕을 하거나. 그런 일이 매일같이 터졌다. 가해자로 지목받은 애들은 '쟤가 진짜 가해자'라며 항의했지만, 담임선생님은 따돌림당한다고 느끼는 학생의 마음을 다독여주지도, 그 학생에게 물리적인 폭력을 당하고 있는 학생들의 억울함을 봐주지도 못했다.
메린이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고, 자해는 더 심해져 갔다. 매일같이 교육지원청에 자해 보고를 올렸다. 심지어 소진이 담임선생님 성희롱 신고 건도 그 시기였다. 성희롱, 학교폭력, 자해. 전부 한꺼번에 뒤덮여 있는 기간이었다. 나도 스트레스가 심했다. 매일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르는 채로 출근했다.
그런 어느 날, 교장선생님이 날 부르셨다. 소진이 담임선생님께 죄송하다고 사과한 그날.
작년에 내가 발령받을 때, 이분도 교장 승진해서 우리 학교로 오신 분이었다. 사실 둘이 별로 이야기 나눌 일은 많지 않았다. 나는 교감선생님하고 가깝게 지내며 소통했고, 교장선생님께는 교감선생님이 많은 일을 전달하셨으니까. 근데 학교 분위기가 너무 흉흉하고 일이 많이 터지니까 직접 부르셨나 보다.
교장실에 들어갔다. 이 일은 어떻게 되어가는지, 저 일은 어떻게 처리하고 있는지. 진행 상황을 파악하셨다. 뭘 이렇게 했으면 좋겠다, 뭘 저렇게 했으면 좋겠다. 업무 지시를 하셨다. 솔직히 잘 기억은 안 난다. 그냥 본인 안전을 위해 나를 최전방에 세우는 느낌. 네, 네, 알겠습니다. 속으로는 '내 역할이 그거지 뭐, 총알받이지 뭐.' 하면서 들었던 것 같다.
일 얘기가 끝나고 이제 나가려는데, 마지막에 그러시는 거다.
"자기야."
그분은 나를 그렇게 불렀다. 자기야. 처음엔 친근하게 느껴졌는데, 그날은 이상하게 거슬렸다.
"이화여대 나왔다며. 임용고시 수석했다며."
어디서 들으셨는지 모르겠다. 맞는 말이긴 했다.
"이대 나와서 결~국 학교 들어와서 이 고생할 거였으면, 나였으면 교대 갔다. 안 그래?"
그 말에 왜 그렇게 마음이 무너졌을까.
아무 말도 못 하고 잠깐 멈췄다. 머릿속이 하얘졌다가, 금방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교대가 뭐라고. 저놈의 교대지상주의. 교대 나와야 진짜 교사고, 비사범대나 교육대학원 나온 사람은 뭐 가짜 교사라는 건가. 지는 임용고시도 허벌이던 시절에 교사 됐으면서. 내가 임용고시 준비하면서 얼마나 공부했는데. 당신이 심리학을 알아? 상담을 알아? 자해하고 따돌림당하는 아이들의 마음을 어떻게 어루만져야 하는지 알아? 내가 배우고 실천하고 있는 게 교대 4년보다 못하다는 거야?
그 말들을 입 밖으로 낼 순 없었다.
"저는 전공 살려서 일 잘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냥 그렇게 대답했다. 나름대로는 그분의 의견에 굽히지도 않고, 과잉 반응하지도 않고, 나름의 자존심을 지킨 말이라고 생각했다. 목소리가 떨리지 않게 힘을 줬다.
그분이 뭐라고 대답했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아마 별말 안 하셨을 거다. 그냥 그래, 수고해, 정도.
인사하고 교장실을 나왔다. 복도를 걸었다. 상담실까지 한참을 걸어야 했다. 걷는 동안 괜찮았다.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상담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문을 닫았다.
그제서야 눈물이 났다.
눈물은 어느새 서러움의 통곡이 되어 있었다.
그날이 내가 교사되고 처음으로 운 날이었다.
자해하는 아이 만날 때도 안 울었다. 아동학대 신고할 때도 안 울었다. 학교폭력 처리하면서 욕먹을 때도 안 울었다. 동료 교사한테 냉랭하게 외면당할 때도 안 울었다. 오늘 성희롱 담임 선생님한테 잘못한 것도 없이 사과하고, 그 사람의 차가운 말에 마음 다쳤을 때도 안 울었다. 꾹 참았다.
근데 그 한마디에 울었다. 이대 나와서 학교 들어와서 이 고생할 거였으면, 나였으면 교대 갔다.
왜 그랬을까. 아마 그동안 쌓인 게 한꺼번에 터진 것 같다. 매일 힘들게 일하는데, 인정은커녕 저런 말을 듣는구나. 이 학교에서 내가 뭘 하고 있는 건가. 교대 갔으면 이런 취급은 안 당했을까. 바보 같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러다 내 마음을 알아차렸다.
맞다. 나 학교 들어오기 싫었지. 나도 내가 이대 나와서 이까짓 학교에서 일하고 있는 거 싫지.
교수가 되고 싶었다. 심리학을 가르치는 교수가 되고 싶었는데, 초등학교에서 애들이나 상담하는 상담교사 나부랭이가 됐다. '애들이나 상담하는 상담교사 나부랭이'. 그게 내가 내 일을 생각하는 수식어다. 그 자격지심을 교장이 건드렸다.
그 교장선생님은 그 후로도 이 학교를 열악한 학군이라고 엄청 무시하셨다. 맨날 자기 지역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셨다. 여기 아이들이, 여기 학부모들이, 여기 환경이 어쩌고 저쩌고. 그렇게 말씀하시면서도 정작 힘든 일은 다 우리한테 떠넘기셨다.
다음 해에 그분은 원하시던 대로 자기 지역 다른 학교로 가셨다.
근데 웃긴 건, 이후에 뭔 일만 생기면 나한테 전화하셨다는 것. 이런 일이 생겼는데 어떻게 처리해야 되냐고. 뭘 하면 되냐고. 위기 학생이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하냐고.
그때 나를 그렇게 무시하고 아니꼽게 보셨으면서. 상담교사 나부랭이한테 뭘 물으세요.
처음 몇 번은 대답해 드렸다. 그래도 선배 교장선생님이시니까. 일 터졌을 때 어떻게 해야 되냐고 물으시는 것까진 뭐, 대답해 드릴 수 있었다. 근데 어느 순간부터 선을 넘으셨다. 이 자료를 만들어 달라. 저걸 알아봐 달라.
제가 언제까지 아줌마 부하 직원인 줄 아시는 거예요 정말.
어차피 퇴직하실 때까지 지역 겹칠 일도 없겠다, 차단했다. 저는 원치 않는 상담교사 나부랭이로 살아가는 제 마음을 지키기에도 하루하루가 급급하답니다. 그쪽도 새 총알받이 마련하시고 알아서 잘 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