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학생이고, 난 선생이야

Part 1. ep 18. 상담실에서

by 오엉


겨울이 되고 있었다.


상황이 나아지는 것도 없이, 매일매일 자해, 학교폭력, 신고, 교육청 보고, 수업, 상담. 그런 것들이 반복됐다. 나도 병들어가고 있었던 것 같다.


애들 보기가 싫어지더라.


애들이라 함은, 방과 후마다 운동장 스탠드에서 상담실로 거처를 옮긴 그 애들이다. 메린이 축구 끝나길 기다리며 파우치를 뒤지고 놀던. 소진이, 윤아, 우정이, 지연이, 혜리, 시현이. 한두 명 빠지고 바뀌는 날도 있었고, 메린이와 남자애들도 춥다며 축구를 안 하고 상담실에 와서 노는 날도 있었다. 내가 퇴근하는 시간까지 계속 있었다.


나는 일도 많고 걔네가 싸지른 똥 치우느라 바빠 죽겠는데.

'걔네가 싸지른 똥'이라니. 그렇게 표현하면 안 되는데. 그때 그렇게 생각이 들었나 보다. 이런.

걔네가 뭐가 그렇게 재밌고 행복한지, 웃고 떠드는 소리가 시끄럽고, 신경 거슬렸다.


어느 날은 메린이와 여자애들만 있던 날이었다. 걔네가 자꾸 뭘 먹었다. 조그만 사탕 같은 걸 까서 돌아가면서 물로 삼켜내는 듯한 모습. 그러면서 키득댔다. 그냥 뭐 문방구에서 사 온 불량식품 같은 걸 먹나 보다 했다. 자꾸 내 눈치를 보면서 몰래 먹고 키득대고 하길래 그냥 흐린 눈 했다.


신경 쓰고 싶지도 않았다.


근데 그다음, '사혈'이라는 단어가 귀에 들어왔다.


"난 컷팅해 봤어."

"뭘로 해?"

"나 커터칼."

"야, 칼로 하면 안 돼. 도루코 면도칼로 해야 돼."

"너 도루코 단면이야 양면이야?"

"나 양면."

"야, 너넨 컷팅밖에 안 해 봤지? 난 사혈도 해 봤어."

"사혈이 뭐야?"

"너 사혈도 몰라?"



"주사기로 피 뽑는 거잖아."








이것들이 진짜.


상담실에서 자해 얘기를 한다고? 하면서 애들 쪽을 쳐다봤다. 노려봤겠지. 걔네가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고 누워 있는 그 매트에 각종 약상자가 버려져 있더라. 두통약, 진통제, 생리통약.


아까 까먹는 불량식품인 줄 알았던 게, 약물 자해를 한 거였다.


가지가지한다 진짜.


당장 걔네한테 상담실에서 자해할 거면 꺼지라고, 다신 오지 말고, 나가서 자해하든지 죽든지 맘대로 하라고, 온갖 지랄을 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그게 걔네가 원하는 내 반응일 것 같아서. 아픈 사람 있는지 물어봤자 자기들 아프다고 진짜라고 할 게 뻔해서. 묻지도 않았다.


그냥 정색한 얼굴로 말했다.


"다시는 상담실에서 약물 자해 하지 마라."


자해한 학생에게 뭐가 그렇게 속상하고 힘들어서 자해를 했는지 묻는 매뉴얼 따위는 이제 걔네한테 해당하지 않았다. 걔네한테 자해는 유행이고 과시였다. 자기들이 이 학교에서 얼마나 잘 나가는지 보여주는 퍼포먼스였다.


그게 소름 끼치게 짜증 났다. 너무 스트레스받았다.








그 당시에 나는 퇴근할 때마다 차에 치여 죽고 싶었다. 죽는 것까진 아니더라도 입원 정돈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걔네가 보기 싫어서. 출근하기 싫어서. 학교에 가면 또 무슨 일이 터질까 봐 무서워서.


그래서 상담을 다니기 시작했다.

나 안 되겠다. 상담 가야겠다, 하고.


상담선생님이 상담 다니는 게 이상하다고? 원래 정신과 의사들도 다 상담 다닌다. 정신 이상 환자들 상대하는 사람이 상담 안 다니고 일상생활 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상담선생님한테 메린이, 소진이, 그 외 아이들 얘기를 꺼내는데 눈물이 나더라.


너무 오랫동안 걔네들한테 시달려 왔다. 매일같이 자해, 자해, 자해. 메린이 인스타그램을 염탐하며 눈물 흘리던 게 지난겨울인데, 1년 새 걔가 너무 싫어졌다.


왜 자해를 계속해? 왜 애들한테 퍼뜨려? 왜 그걸 자랑이라고 말하고 다녀? 자해 얘기를 하면서 키득대는 모습도 너무 싫어 죽겠는데 상담실에서 약을 먹어? 다 같이 돌려 먹어? 나를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나를 무시하는 거야???


진짜 날것의 생각 모두를 털어놓으며 펑펑 울었다. 걔네가 너무 싫다고, 진짜 너무 싫다고 하면서 울었다.

상담선생님이 한참 내 얘기를 들으시더니, 내 말도 눈물도 잦아들자 조용히 말씀하셨다.


"선생님은, 지금 상담선생님이 아니라 또래 애들한테 괴롭힘 당하는 어린 여자애 같아요."







하.


그 말에 또 마음이 무너지더라. 그땐 소리 없는 눈물이 흘렀다.


그렇구나. 나는 그 아이들에게 선생이 아니라 그냥 얕잡아 볼 수 있는 또래 같았구나. 내가 뭔가 잘못하기를, 한참 잘못해오고 있었구나.


그날의 깨달음. 교사로 바로 서야 한다는 인식. 처절한 자기반성과 굳은 다짐.


나는 다음 날부터 그 애들을 방과 후에 상담실에서 받아주지 않았다. 너네도 알 거야. 그랬더니 걔네가 순순히 받아들이더라. 항의도 안 하고, 투정도 안 부리고. 그냥 알겠다고 하고 나갔다.


그게 더 허탈했다. 아, 진작 이렇게 할걸.


나는 얘네와 친구가 아니다. 나는 학생들과 친구가 아니다.


그때부터 내가 늘 되뇌는 말이다. 친하게 지낼 순 있어도, 경계를 세워야 한다는 것.


넌 학생이고, 난 선생이야.


그게 중요하다는 걸 너무 늦게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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