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 도망

Part 1. ep 21. 교감선생님께

by 오엉

내신을 써야 했다.


내신이란 건, 다른 학교로 가고 싶을 때 쓰는 거다. 아주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한 학교에 2년 근무하면 쓸 수 있게 된다. (한 학교에 5년까지 있을 수 있다.) 전문상담교사 t.o. 가 있는 학교 중 희망 학교를 적어서 내면, 그 학교로 내신을 쓴 사람 중 점수가 가장 높은 사람이 가게 된다. 보통은 그런 시스템으로 하는데, 나의 경우엔 경쟁자가 없었다. 내가 근무하는 시에서 내가 첫 번째 전문상담교사였기 때문에. 내가 언제 어딜 쓰든, 나보다 점수가 높은 사람이 없었다. 가뿐한 마음이었다.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다.'


희망지로 쓸 수 있는 학교는 여러 곳이었다. 그중 가장 부유한 학군을 골랐다. 이곳의 가난과 무식, 무지함이 만드는 무례함과 무책임함이 질려서. '배운 사람'들의 동네는 어떨지, 그걸 경험하고 싶었다. 그만두기 전에.


내신 서류를 들고 교무실에 갔다. 교감선생님께 드렸다.

서류를 받아 드시더니 한참을 보셨다. 그러고는 나를 올려다보셨다.


"이오엉. 진짜 갈 거야?"

그 눈빛에 마음이 무너졌다.


교감선생님은 내게 첫 직장 상사 그 이상의 의미였다. 이 철저한 교대중심주의 사회에서, 비담임으로서 비교과교사로서 고군분투하는 나를 '알아준' 분이다. 내 가능성을, 내 잠재력을, 내 '존재'를 알아주고 지지해 주신 분이다. 그의 존재가 내게는 너무나 컸다.


교감선생님은 늘 내게 유학 준비를 하라고 하셨다. "이오엉, 너는 학교에 있을 인재가 아니다. 너는 더 큰 물로 가야 된다." 하면서 늘 나를 응원해 주셨다. 본인이 지켜줄 테니 여기서 유학 준비 하라고, 너는 전문상담교사로 커리어를 끝내기는 아깝다고. 유학 갔다가 한국으로 돌아와서 교수하라고, 늘 그렇게 말씀하셨다. 그렇게 나를 믿어주셨다.


발령 첫해부터 2년 동안, 메린이 자해할 때도, 소진이 학교 탈출할 때도, 성희롱 신고할 때도, 학교폭력 터질 때도, 늘 내게 '잘한다', '대단하다', '역시 이오엉이다' 해주셨다. 힘들 때마다 교감선생님한테 가서 이 꽉 물고 눈물 참으며 얘기하면, 늘 '네 맘 다 알아. 너 고생했어. 잘했어.' 하는 눈빛으로 나를 울리셨다. 그분이 없었으면 나는 1년도 못 버텼을 거다.


그런 분 앞에서, 도망간다는 서류를 내밀고 있었다.


"네. 죄송해요."

결국 또 눈물이 났다.


교감선생님은 아실 거다. 왜 내가 가려고 하는지.

나를 힘들게 하셨던 교장선생님께서도 내신을 쓰셔서, 그분 가시고 나면 나도 사실 살 만하긴 할 거였다. 그 분 눈치 안 보고 일할 수 있으니까. 교감선생님이랑 나랑은 손발이 맞으니까.


그치만 교장이고 뭐고, 교장이 가든 말든, 그 애들이 무서워서 도망가야만 했다.

그 까만 단추 같은 눈. 중학교 교복 입고 찾아올 그 애들. 졸업해도 끝이 아니라는 공포. 그게 나를 자꾸 벼랑 끝으로 밀어냈다.


"알았어. 잘 생각한 거야."

교감선생님이 서류를 받아 드시며 말씀하셨다.


"더 큰 물로 가야지. 여기 있을 애가 아니야."

그 말씀에 또 울컥했다. 또 잘했다니. 더 큰 물이라니.

도망가는 건데. 그냥 무서워서 도망가는 건데. 그렇게 말씀해 주시다니.


"연락하고 지내자. 유학 가면 알려주고."


"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교무실을 나오면서 눈물을 훔쳤다.


죄송했다.

나를 그렇게 믿어주셨는데, 결국 도망가는 것 같아서.

2년 동안 함께 싸워주셨는데, 나 혼자 전장을 떠나는 것 같아서.


그렇지만 나를 지켜야 했다.

부유한 학군. 배운 사람들의 동네.

거기서 다시 시작하자. 거기서 버티면서 유학 준비 마무리하자. 그리고 진짜로 떠나자.

그렇게 마음먹었다.

가자, 도망.







교감선생님께.


교감선생님 안녕하세요. 상담교사 이오엉이에요. 이곳을 떠나면서 교감선생님과는 정말.. 찐한(?) 이별을 하고 싶었는데.. 코로나19로 인해 송별회도 할 수 없게 되어 편지로나마 제 마음을 전하려고요.


가볍게 감사드리자면 지난 2년간 늘 해피하고 편안한 분위기로 맞이해 주셔서 감사해요. 좋지 않은 상황들에서도 교감선생님과 이야기 나누면 웃음으로 승화시킬 수 있었어요.


무겁게 감사드리자면.. 사실 진짜 감사한 게 너무 많아서 눈물 날 것 같아요.

언제나 열정 넘치게 시작할 줄만 알지 유종의 미를 잘 거두지 못하는 편인데 제가 벌이는 모든 일을 애정 어린 눈으로 응원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제가 해낸 작은 사소한 것들을 크게 인정해 주시고 제가 가진 별 거 아닌 능력들을 상담교사로서의 큰 강점으로 봐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가끔은 학교라는 공간, 초등학교라는 일터에서 전문상담교사 혹은 인간 이오엉이 어떤 의미인 걸까 고민이 많았는데, 교감선생님께서 격려해 주실 때마다 '그래도 내가 쓸모 있는 일꾼이긴 하구나' 했어요.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저의 진로와 미래까지 관심 있게 응원해 주신 것도 너무 감사드려요. 언젠가 세상에 나올 제 연구물 혹은 출판물에 꼭 감사인사 실을게요.


교감선생님 퇴직하시기 전에 꼭 다시 한번 같은 학교에서 근무하게 되기를 기도하며 편지 줄이겠습니다. 건강 조심하시고, 부디 별일 없는 2020년 보내세요.


2020. 3. 9. 이오엉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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