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은 이루어진다

Part 1. ep 22. 두 통의 기도

by 오엉

졸업식 날이 왔다.


강당에 앉아서 아이들이 졸업장을 받는 모습을 지켜봤다. 한 명씩 이름이 불리고, 무대 위로 올라가고, 졸업장을 받고, 인사하고, 내려왔다. 학생마다 배경의 스크린에는 자기가 고른 장래희망과 명언이 떠 있었다.


메린이 이름이 불렸다. 김혜린.


무대 위로 올라가는 메린이를 봤다. 짧은 머리, 당당한 걸음걸이. 스크린에 뜬 장래희망은 '골키퍼'. 명언은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잃지 말자.'

카메라를 들어 찍었다.


소진이 이름이 불렸다. 박소진.

처연한 얼굴로 올라가는 소진이를 봤다. 중단발로 자른 머리, 예쁘게 화장을 하고 왔다. 스크린에 뜬 장래희망은 '바리스타'. 명언은 '꿈은 이루어진다.'

또 찍었다.


꿈은 이루어진다. 그 말을 소진이가 골랐다는 게, 가슴이 뭉클했다. 학교에서고 집에서고 맘붙이고 살질 못하던 애가. 수십개의 약을 털어먹고 아파트 옥상 문을 열던 애가. 바리스타라는 꿈을 가지고 있었구나. 그랬구나.


놀라움과 기특함과 미안함이 겹쳐, 눈물이 살짝 날 뻔 했다.

살아줘서 고마워. 졸업해줘서 고마워.








졸업식이 끝났다.


아이들이 삼삼오오 사진을 찍고 있었다. 부모님들과, 친구들과, 선생님들과. 나도 몇몇 아이들과 사진을 찍었다.


메린이가 왔다. 소진이도 왔다.


"쌤, 같이 사진 찍어요."


그 말이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사진 찍자고 안 해줬으면 아마 많이 서운했을 거다. 고맙고 아쉽고 기뻤다.


셋이 나란히 섰다. 소진이 어머님이 사진을 찍어주셨다. 다같이 웃는 얼굴로 찍었다.


품에서 편지 두 통을 꺼냈다. 미리 써둔 편지.


"이거. 너네 거."

메린이와 소진이가 의아한 얼굴로 받았다.


"지금 읽지 말고 나중에 읽어."

"네."

둘이 고개를 끄덕였다. 메린이는 어색하게 웃었고, 소진이는 처연하게 웃었다. 늘 그렇듯.


메린이는 졸업쯤 되니 메린이란 이름을 더 이상 쓰지 않았다. 어느새 카톡 이름도, 애들에게 불리는 이름도, 자기 이름 그대로 '혜린'이었다. 그게 좋았다. 혜린이가 혜린이로 살아가는 게.


아이들이 떠났다.


강당이 비었다.


나도 떠날 차례였다.









강당을 나왔다.


2019년의 이 두 아이들로 인해 나는 많이 괴로워하고 슬퍼하고 울고 기도했다.

우리 엄마는 침대맡에


메린이

소진이


라고 쓴 포스트잇을 붙여놓고 매일 기도했다. 그 애들때문에 자기 딸이 자꾸 우니까. 딸의 행복을 위해 그 아이들의 행복을 기도했다.


이 아이들 인생에 초등학교 6학년 시절은 언젠가는 잘 기억도 나지 않을 먼 과거가 되겠지만, 27살의 나에게는 어쩌면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되는 해였다. 나는 이 아이들 덕분에 새로운 목표를 꿈꾸게 됐다. 유학을 가야지. 교수가 되어야지. 전문상담교사라는 건 아무래도, 그만둬야지. 나도 꿈을 이뤄야지.


2년이었다.


긴 것 같기도 하고, 짧은 것 같기도 했다. 수많은 일이 있었고, 수많은 아이들이 있었다. 수많은 눈물이 있었다.


이제 떠난다.


부유한 학군으로. 배운 사람들의 동네로. 새로운 곳으로.


도망이었을까, 출발이었을까. 그때는 몰랐다. 지금도 잘 모르겠다.


그냥 일단은 살기 위해 떠났다.


내가 열심히 달려가며 종종 이 아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동안, 이 둘은 부디 나와의 일들은 점차 깨끗이 지우고 행복한 청소년기를 보내기를. 마음을 다해 기도했다.










부록1. 혜린에게



혜린, 안녕? 상담선생님이야.

혜린이가 졸업할 때쯤, 꼭 편지 한 장 써주고 싶다- 하고 나 혼자 생각했었는데, 한 한 달쯤은 쓸까 말까 고민하다가, 전해주지 못하더라도 쓰긴 쓰자 싶어서 펜을 들었어. 이 서프라이즈를 부디 기분 좋게 받아들여줬음 좋겠다.


혜린아. 메린아.


나는 이상하게도, 너를 떠올리면 마음 아픈 날이 많았어. 너에게서 나의 모습을 보기도, 내가 아끼던 다른 사람의 모습을 보기도 했던 것 같아. 나 혼자 그렇게 너와의 연결감을 느끼다 보니, 올 한 해 네가 겪었던 수많은 일들에 더 마음이 아팠던 것 같아.


겉으로는 무표정하게 아무렇지 않다고, 아무 생각도 아무 느낌도 안 든다고 하지만, 남몰래 뒤에서 누구보다 스스로를 자책하고 미워하고 우울해할까 봐, 나도 남몰래 뒤에서 네 생각을 참 많이 했어.


졸업하는 그날까지 너와의 상담을 이어가고 싶었지만, 원치 않는 상담을 계속하는 건 의미가 없을 것 같아서 종결했었지. 그날 나는 뭐랄까. 새장의 문을 연 느낌이었어. 사실은 '문을 열어도 날아가지 않겠지' 하는 오만한 생각을 했던 것 같아. 네가 정말 날아가버리고 나니, 참 공허하더라.


메린아. 시간이 좀 더 지나고 네가 나이를 좀 더 먹으면 우리가 좀 더 많은, 그리고 깊은 대화를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던 것 기억하니? 난 정말 그렇게 믿고 있어. 그리고 앞으로의 오랜 시간 동안, 그날을 기대하며 널 생각할 것 같아.


메린아. 그 누구보다도 널 많이 아끼고 생각하는 걸 알아줬음 좋겠다.


시간이 흘러 축구선수가 되든 다른 무엇이 되든, 혹 아무것도 안 되든, 그 어떤 모습이라도 네가 건강하고 행복하기만을 바랄게. 가끔씩 만나 사는 이야기 나누자. 안녕. 졸업 축하해!








부록2. 소진에게



소진, 안녕? 상담쌤이야.

힘들었던 2019도 가긴 가고, 졸업식도 오긴 온다 그치.

소진아.

어디다 마음을 둬야 할지 몰라 온몸에 가시가 송송 나 있으면서도, 나에겐 늘 사랑스러운 모습 보여줘서 고마워. 나에게 넌 정말 마음이 가는 예쁜 아이였어 소진아.

네가 졸업하고 나서도, 나는 너를 오래오래 기억할 것 같아.

네가 어디에서 누구와 무슨 일을 하든 나는 모르겠지만, 너를 떠올릴 때마다 네가 2019년보단 덜 괴롭고 더 행복하기를, 더 건강하기를 바랄게.

스무 살 되는 해에 연락 줘. 쌤이 술 사줄게. 졸업 축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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