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보다 낯선

Part 2. ep 2. 부유한 학군

by 오엉


새 학교 얘기를 좀 해볼까.


출근길 풍경부터 달라졌지. 버스정류장에 내려 아파트 단지로 들어가야 학교가 나왔어. 첫 학교는 우리 집 빌라에서 나와 학교 정문으로 들어가는 길까지 보이는 집이라곤 모두 빌라뿐이었는데, '초품아',라는 걸 처음 직접 보게 된 거야.


우리 동네엔 그렇게 대단지 아파트도 없고, 그렇게 높은 아파트도 없는데, 출근을 하려고 그 아파트 단지에 들어가는 것만으로도 뭐랄까, 자신 있어지면서도 초라해졌어. '내가 이 아파트 사람인 줄 알겠지?' 그런 생각에 어깨가 펴졌는데, 나는 알잖아. 내가 그 아파트 사람이 아니라는 걸. 그 사실이 날 초라하게 만들었어.


애들도 우리 동네 애들이랑 너무 다르더라. 첫 발령받은 내 모교에서 2년간 봤던 애들의 얼굴과는 너무도 달랐어. 이 동네 애들은 얼굴에서 기름이 좔좔 흐르더라. 말 그대로 기름이 좔좔 흘렀어. 뭘 먹이는지, 뭘 바르는지, 푸석하고 거칠었던 첫 학교 아이들 얼굴과는 달리 뽀얗고 촉촉하고 윤기가 돌았어. 아이들의 기름진 뺨을 보면서 난 처음 절망했던 것 같아. 빈부격차란 게 이런 거구나. 그 동네 애들은 어떡하지. 내 후배들 어떡해. 그런 생각이 들면서, 나는 어떻게 보이려나 그런 걸 신경 쓰면서 초조해했던 것 같아. 나도, 내 동네 사람처럼 보이진 않을까. 그런 걸 두려워했어.


여기 애들은 손도 더럽지가 않더라. 게 중에 칠칠치 못한 애들은 꼭 손에 클레이나 슬라임이나 사인펜 등이 묻어 있긴 했지만, 첫 학교 애들처럼 손톱이 시커먼 애들은 없었어. 그 애들은 꼭 운동장에서 흙을 가지고 놀고, 동네의 온갖 것을 만지고, 코를 파고, 옷에 슥슥 묻히는 게 전부였지. 물론 물로 손도 씻었을 테고, 샤워도 했을 텐데, 꼭 손톱 밑에 까만 때가 껴있었어. 샤워를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잘 안 씻어서 냄새가 났었거든. 특히 머리 안 감은 냄새. 5, 6학년 수업을 들어갈 때면 교실에 들어가자마자 창문부터 다 열라고 시켰었어. 정수리 냄새 호르몬 냄새가 섞여서 정말 숨이 안 쉬어질 지경이었거든. 그 애들의 집에는 샤워하라고, 머리 감으라고, 손톱 때 빠지게 꼼꼼히 씻으라고 말해주는 부모님들이 안 계셨던 것 같아. 여기랑은 다르게.


아무튼 '부유한 학군'에 오니까 다른 게 정말 많긴 하더라. 거친 뺨과 까만 손톱에 가난이 묻어있는 아이들을 보다가, 남부러울 것 없는 대기업 아빠, 연구원 엄마를 둔 아이들을 만나니 참 다른 게 많았어. 비타민 캔디 하나에도 목숨 걸던 그 애들과는 달리, 초콜릿을 줘도 "저는 페레로로쉐만 먹어요." 하는 애들에 내가 민망해하는 날이 많았어.


이곳에 전문상담교사가 왜 필요하다는 걸까?


교감선생님은 나만 보면 '작년에', '작년에' 하시면서 조급해하셨어. 작년에 5학년이었던 학생 한 명이 반에 적응 못 하고 학교폭력을 계속 일으켜서 담임선생님, 교감선생님 속을 엄청 끓였나 봐. 그래서 교장선생님을 엄청 설득해서 상담교사를 꼭 받자고 신청하신 거였어.


근데 코로나로 인해 그해 대부분을 원격수업으로 보내고, 나는 그 애가 누군지 얼굴도 못 보고 졸업을 해버렸으니, 참 사람 일은 알다가도 모르는 것 같아.


개학 후 상황으로 돌아가보자. 애들이 오지 않았어. 코로나가 막 퍼지기 시작해서 원격수업으로 돌리고 돌봄 교실 애들만 학교에 왔거든. 첫 학교는 애들이 500명쯤 됐었는데 이 학교는 1,000명이 넘었어. 한 학년 당 열 반이 넘게 있으려니 학교도 무지 컸지. 그 거대한 학교에, 20-30명의 학생들만 두 세 교실에 모여 있고, 나머지는 모두 선생님들 뿐이었어. 교실마다 띄엄띄엄, 한 칸에 한 명씩 들어있는 교사들.


천국이었지.


하루에 상담을 6-7개씩 하던 내가, 그 천국에 있으려니, 이상하게 또 초조하고 조급해지더라? 개버릇 남 못준다고, 내 존재의 가치를 자꾸 증명해야 할 것 같았어. 교감선생님이 자꾸 찾아와서 그 초롱초롱한 큰 눈으로 나를 바라보셨거든. 수천만 원 들여서 상담실을 예쁘게(정말 예쁘게) 만들어놨는데, 상담교사가 와서 놀고 있으니, 못내 계속 아쉬우셨던 것 같아. 그래서 상담실이 생겼다는 안내문과 기념품을 제작해서 각 집으로 보내고, 비대면 상담을 위한 카카오톡 채널도 개설하고, 온라인 설문으로 신청을 받아 학부모 화상 상담도 하고 별 짓을 다했어. 그래도 대면상담에 대한 '목마름'은 어쩔 수가 없더라.


나는 돌봄 교실 아이들을 관찰하기 시작했어. 어쩔 수 없는 본능 같은 거였던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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