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착한 아이예요.

Part 2. ep 5. 로봇, 윤지호 2

by 오엉



걔가 그럴 만도 했던 게, 아빠가 로봇 연구원이더라고. 아빠하고 로봇, 기계, 자동차 이런 얘기를 많이 해서 완전 로봇 박사, 자동차 박사였어. 뚜벅이인 내가 자동차에 대해 아는 거라곤 모닝, 아반떼, 이 정도였는데 지호는 주차장에 있는 모든 차의 차종이며, 회사며, 바퀴며, 엔진이며, 그런 걸 다 알았어.



그때 그 주차장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신기하다!'며 방방 뛰면 어깨가 하늘 높이 솟으며 "저는 다 알아요!" 하곤 했어. 나중에 내가 운전면허에 도전하게 됐는데, 그때도 지호는 자기가 더 신이 나서 자기가 아빠랑 하는 운전 게임 어플에서 운전을 얼마나 잘하는지 자랑도 했지.


엄마는 은행원이었는데, 커리어에 욕심이 많은 에너제틱한 사람이었어. 승진에 진심이셔서, '일과 아이가 5:5'라고 하셨지. 그래서 지호는 늘 할머니와 외할머니가 번갈아가며 돌봐주셨어. 친할머니는 아이가 너무 문제가 많다고, 지호 어미가 휴직을 하든지 일을 그만두든지 해서 애를 끼고 키우든지, <금쪽같은 내 새끼>에라도 내보내야 한다고 하셨는데, 어머니가 원치 않으셨어.


로봇 흉내 내는 게 뭐가 그렇게 큰 문제냐고?


지호의 문제는 '다르고', '이상하고'에 있지 않았어. '친구가 없고', '공격적'인 부분에 있었지. 선생님들한테 소리를 지르거나 애들을 자꾸 때리는 거야. 그 또래보다 10-20cm는 더 큰 키를 하고 말이야. 복도를 다닐 땐 일부러 허리를 수그리고 손을 등 쪽으로 올려 로켓처럼 빠르게 뛰어다녔는데, 그 속도가 어마어마해서 진짜 무서울 정도였어. 그리고 자기가 뭔가 잘못해서 친구들이 비난하면 핸드폰부터 꺼내서 '경찰에 신고한다'라고 협박하기 일쑤였지.


어머니께 여쭤보니 이미 4살 초반에 어린이집에서부터 연락이 오기 시작했대. 주변 아이들을 때린다고. 그래서 4살 반부터 오은영 센터도 다니고 감각치료, 놀이치료, 언어치료, 사회성 훈련 등등 안 해본 게 없으시다는 거야. 근데도 그 폭력성이 잡히지가 않는다고. 진짜 자기 아들한테 공감이라든지 사회성이라든지 뭐 그런 게 결여된 게 아닐까, 내 아들이 정말 다른 아이들과 좀 다른, '종'인 걸까, 하는 두려움에 어떤 날은 잠도 잘 오지 않는다고 하셨어. 진짜 내가 휴직을 안 해서, 일을 안 그만둬서 애가 더 나빠지는 걸까 하는 죄책감도 물론 갖고 계셨지. 설상가상으로 지금 부부관계가 너무 안 좋아서 이혼 얘기까지 나오고 있는데, 아이를 위해 둘 다 버티고 있다고까지 하셨어. 이 가족은 지금 여러모로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더라고.






지호는 어김없이 로봇으로 나타났고, 오늘 하루 어땠어? 밥은 맛있었어? 하는 내 일상적인 물음에 "검색 안 됨. 검색 안 됨.", "삐- 응답할 수 없습니다."같은 대답을 했어. 이날도 총 4개의 암호를 푼 뒤에야 로봇이 아닌 윤지호를 만날 수 있었지.


윤지호는 그날 아침에 보고 온 TV 프로그램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해줬는데, 거기에 자기 식으로 살을 붙여서 얘기하길 좋아했어. "거기 나온 토끼인형이 게임을 다운로드 받더라고요. 아침 9시 17분에 아이폰 13 mini 앱스토어에서요. 그리고 그 옆 돼지인형은 10월 12일 아침 10시 3분에 다운로드 받았대요." 하는 식이었지. 하여간 날짜나 시간 같은 숫자나 객관적인 명칭을 엄청 좋아했어. 그런 얘기들을 할 때 나는 틈만 나면 중간중간 "오 그래? 그때 누구랑 같이 봤어?", "오 엄마랑 같이 있었구나. 엄마는 어떤 분이셔?", "오 그 뉴스를 친구들도 봤으면 재밌어했겠다. 너희 반에 있는 친구 이름 하나만 알려줄래?"처럼 가족이나 친구들, 그러니까 '사람'에 대한 관심으로 유도했는데 그때마다 지호는 다시 로봇으로 변했어.


"모. 르. 겠. 어. 요."

"삐빅- 검색되지 않습니다."

"알 수 없음."


내가 겨우 구슬려서 친구 이름 하나를 얻어내도, 그걸 좀 써달라고 하면 보이지도 않을 정도의 작은 크기로 적었지.


그러던 어느 날 지호가 또 반 친구를 신고한 거야. 친구와 다툼이 있었는데 바로 화장실로 튀어가 117에 학교폭력으로 신고했대. 담임선생님이 한숨을 쉬며 나에게 말씀하셨고, 나는 지호한테 그 얘기를 물어볼 수밖에 없었어. 처음엔 '알 수 없음'만 기계적으로 되풀이될 뿐이었지. 그러다가 내가 "자꾸 친구들을 신고하면 친구들은 지호랑 놀기 불안할 것 같아. 자기도 신고당할까 봐. 그러다가 친구들이 ‘우리 쟤 빼고 놀자’하면 어떡해?" 하자 지호가 갑자기 소리 질렀어.


"아니!!!! 걔네 맨날 그런다고요!!! 걔네 다 신고해야 된다고요!!!!"


지호가 4년도 더 된 어린이집 얘기를 시작했어.


2016년에 은하별어린이집에서 김은별선생님이 맨날 나만 빼고 바깥놀이 나갔다고요. 그래서 나만 맨날 원장실에서 원장선생님하고 둘이 있었다고요. 원장선생님은 나한테 맨날 생각하는 의자에 앉아있으라고 하고! 나는 잘못한 것도 없는데!! 친구들은 맨날 김은별선생님한테 내가 뭐 잘못했다고 하고! "우리 쟤 빼고 산책 가요."하고! 자기들끼리는 기쁘다, 신나다, 즐겁다 표정 짓고!! 저도 쫓아가려고 나가면 문을 막 닫았어요. 그때 현대아파트 112동이었는데 저는 사람들 지나다니는 것만 구경하고 그랬다고요. 산책도 못했다고요!!!!


로봇이 아닌 윤지호의 이야기가 이렇게 줄줄 나온 건 처음이었어. 감정카드로 아이의 마음을 읽어보니 '외로운', '심심한'이 나왔어. 마음을 읽어주자 이야기가 이어졌어.


그래서 엄마한테 전화해서 제발 빨리 데리러 와달라고 소리치고 울었는데 엄마가 오다가 저만 빼고 산책하는 걸 본 거예요. 그래서 엄마가 선생님을 신고했어요. 2017년 1월에요. 그래서 엄마가 친구들도 다 혼내줬어요. 소리 지르고 무섭게 혼내줬어요. (넌 어땠어?) 기분이 좋았어요. 그리고 경찰차가 와서 친구들이랑 선생님을 감옥에 데려갔어요. 6개월 전에 이제 다 반성하고 뉘우쳐서 다시 집으로 보내줬대요.


거짓과 진실이 섞여있을 이 이야기를 들으니 어린이집에서의 지호가 얼마나 외롭고 심심하고 억울하고 분했을지 느껴지더라고. 얼마나 엄마가 데리러 와주기를 바랐을지, 얼마나 엄마가 자기만 안 놀아주는 친구들과 선생님을 혼내주길 바랐을지, 얼마나, 얼마나 경찰 아저씨들이, 자기를 안 놀아준 친구들과 선생님을, 자기를 안 놀아준 죄로 3년씩이나 감옥에 가둬두고, 그 애들과 선생님이 반성하고 뉘우치게 만들어주길 바랐을지. 그게 처절하게 느껴지더라고.


친구 이름은 모른다고, 검색되지 않는다고, 응답할 수 없다고 말하던 로봇의 마음속에는 친구들과 함께하고 싶은 마음만이 가득했던 거였어. 그래서 친구들이 놀이에 끼워주지 않으면 잡아끌거나 발로 차거나 물건을 던지던 거였고, 그래서 친구들이 자기한테 뭐라고 하면 112이며 117 운운하는 거였어. 경찰아저씨가 다시 우리를 친하게 만들어주길 원하니까. 자기 혼자서는 어떻게 다시 친하게 어울릴 수 있는지 모르니까.


"나한테 잘못하면 바로 핸드폰 꺼내서 신고해요. 근데 전 착한 아이예요."

"친구들이 신고하지 말라고 전화 끄라고 하면 그냥 꺼요. 그냥 신고하는 척이에요. 장난치는 거예요."


지호는 아직 마음속에 자기는 착한 아이라는 표상을 가지고 있었어. 경찰에 신고하는 것도 다 친구들과 어울리기 위한 장난이었지. 다른 아이들은 장난으로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걸 눈치 못 채는 게 이 로봇의 유일한 에러.


‘친구들과 같이 놀고 싶은 착한 아이’

그걸 난 아주 조금씩, 이 로봇 아이가 스스로 알아차릴 수 있도록 도와주면 되는 거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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