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2. ep 7. 로봇, 윤지호 4
지호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으려는 노력을 하게 된 후로, 나는 개인상담 종결을 생각하고 있었어. 그런데 세상 일은 참 마음처럼 흘러가지 않고, 아이들의 성장은 참 좋아졌다가 나빠졌다가 널을 뛰더라.
그날은 소규모 집단상담의 마지막 회기였어. 지호를 포함해서 반에서 너무 말썽꾸러기 거나 친구 관계를 잘 맺지 못하는 아이들을 모아 8회기짜리 사회성 향상 집단상담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었거든. 나는 마지막 회기니까 즐겁게 마무리하자, 서로 배려하며 활동해 보자, 애들이랑 그렇게 다짐하고 시작해야지 하고 계획하고 있었어. 근데 지호가 처음부터 씩씩대며 들어왔어.
"A가 어제 저한테 욕했어요! 저한테 사과하라고 하세요!"
자초지종을 물어보니, C라는 친구가 어제 지호한테 "A가 너한테 '개새끼'라고 욕했다"는 말을 했대. A한테 물어보니 절대 그런 일 없다고 했어. 진실은 알 수 없지만, A는 그러지 않았다고 하고, 지호가 직접 들은 것도 아니고, C는 지금 이 자리에 없었으니까. A한테 사과하라고 강요하지는 못하겠다고 했어. 대신 욕은 나쁜 말이니 서로 사용하지 않기로 약속하게 하고 넘어갔지.
집단이 시작됐는데, 지호가 B한테 유독 가혹하게 굴기 시작했어. 자기가 그린 그림을 B한테만 안 보여주고, 놀잇감을 B만 못 쓰게 하고, B의 교재에 낙서를 잔뜩 하고. 결국 B가 눈물을 흘리며 활동하기를 거부했고, 지호가 사과했어. 근데 B가 마음을 추스르느라 한참을 활동 못 하고 있으니까 지호가 다시 "또 운대요, 또 운대요." 하며 놀리는 거야.
내가 지호를 밖으로 데리고 나왔어.
"지호야, 오늘 왜 그래?"
"A한테 사과 못 받아서요."
A한테 사과 못 받은 게 억울하고 기분 나쁜 마음은 공감해 줬어. 근데 그것 때문에 B를 괴롭히는 건 너무 불공평한 일이라고 말해줬더니, 지호도 이해한 것 같았어. 다시 한번 잘해보자고 함께 약속하고 상담실로 다시 들어갔어.
그랬더니 지호가 책상에 잔뜩 낙서를 하기 시작하더라.
3색 펜을 해부해서 바닥에 버리고, 지우개를 뜯어서 바닥에 버리고, 책상 아랫면에도 끊임없이 낙서하고. 거기까지는 '에유, 지호가 혼나서 분풀이하는구나' 하고 넘어갔는데, 이후로도 계속 다른 친구들한테 상처 주는 말을 하고 소리를 지르고 난리였어.
1:1로 이야기해 보면, 지호는 거의 모든 옳고 그름을 다 아는 아이거든. 근데 '나쁜 걸 알지만 해버리는' 게 반복적으로 문제가 됐어. 아는 것을 행하는 능력, 그러니까 실행기능이 약한 거야. 실행기능 중 하나인 억제능력은 STOP & THINK로 표현할 수 있는데, 지호는 THINK는 가능한데 그전 단계인 STOP을 힘겨워했어.
나는 더 이상 안 되겠다 싶어서 아이들에게 활동지를 하라고 시켜두고 조용히 어머니께 전화를 했어. 오늘의 모습은 어머님이 보고 들으셔야 할 것 같다고. 어머님이 오케이 하셨고, 나는 다른 아이들이 최대한 나오지 않는 각도에서 지호를 촬영하기 시작했어. 물론 지호 모르게.
그날 밤, 나는 지호 어머님께 그 영상들을 보내며 긴 메일을 썼어. STOP & THINK 이야기를 했지. 지호는 THINK는 가능한데 STOP이 안 된다고, 조심스럽지만, 충동조절 약물을 통해 STOP을 가능하게 해 주시면 아이도 좀 더 편안하게 학교생활할 수 있을 것 같다고. 그리고 지호의 공격성이 어린 시절 소외 경험에서 비롯된 것 같다고, 그 공격행위가 생존본능, 사랑받고 소속되고자 하는 욕구에서 비롯된 것 같아 참 안쓰럽다고.
다음날 어머님이 바로 전화를 주셔서 영상과 음성 자료를 보고 너무 놀랐다고, 지호가 그 정도로 산만하고 충동적이고 친구들에게 공격적인지 몰랐다고, 한 번 학교로 찾아오시겠다고 하셨어. 그리고 며칠 뒤, 드디어 어머님을 만날 수 있었지.
어머니는 한동안 너무 감사하다, 지호가 상담선생님을 참 좋아한다, 아참 이번에 제가 은행에서 영업왕으로 뽑혀서 여행을 다녀왔다, 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시더니, 한참을 말씀을 못 하셨어. 뭔가 할 말이 있는 눈치인데, 입이 안 떨어지시는 것 같았어. 나는 기다렸어.
"그런데 선생님, 저... 사실 드릴 말씀이 있어요."
어머님이 조심스럽게 입을 여셨어.
"그 메일에 써주신 STOP & THINK 그거요.. 그거 지호만 어려워하는 게 아닌 것 같아요.."
무슨 말씀이신가 했더니, 어머님이 본인 얘기를 시작하셨어.
"제가 주식 단타 때문에 이혼당할 위기거든요.. 이혼 얘기 나왔다는 거.. 그거 지호 때문에 힘들어서가 아니고 제가 자꾸 주식으로 돈을 날려먹어서 그런 거예요.. 올해 주식 단타에 빠졌는데, 계속 돈 까먹고 까먹고.. 근데 잃을 거 알면서도 이상하게 자꾸 손이 가요. 하면 안 되는 거 아는데, 자꾸 해요.. 애아빠 몰래 대출까지 받았다가 걸려서 이혼 얘기 나온 거예요. 진짜 은행원이라는 사람이.. 저도 쪽팔리고 남들이 알까 무섭기도 한데.. 갚으려고 또 하고, 또 잃고, 또 대출받고.. 저도 미치겠어요.."
"또 대출받은 거 남편한테 들키면 진짜 이혼이에요. 아는데.. 아는데 멈출 수가 없어요. 저도 저를 모르겠어요. 왜 이러는지."
어머님이 떨리는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셨어.
"선생님이 편지에 쓰신 거 읽으면서, 'THINK는 가능한데 STOP이 안 된다'는 말이 자꾸 눈에 밟히더라고요. 분명 지호 얘기를 써주신 건데, 제 얘기 같아서.."
어머니는 결국 눈물을 흘리셨고, 나는 조용히 듣고 있었어.
"지호가.. 절 닮은 걸까요..?"
그 물음에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랐어. 근데 솔직히, 그 순간 생각이 들더라. '아, 엄마 피였구나.'
충동을 멈추지 못하는 것. 하면 안 되는 줄 알면서 하는 것. 해버리고 후회하고 해 버리고 반성하고, 다시는 하지 말자고 다짐하면서도 또 스스로를 제어하지 못하는 그 답답함. 그게 어디서 온 건지 알 것 같았어. 어머님께 나는 의사가 아니라 진단을 내릴 수 없지만, 스스로 조절이 안 된다고 느끼신다면, 전문가 상담을 받아보시는 게 좋겠다고 권유했고, 어머님은 고개를 그렇게 해보겠다며 끄덕이셨어. 어머님은 가정을 지키기 위해 승진시험을 포기하고 휴직을 하겠다고 하셨어. 아이랑 엄마랑, 충동조절을 위한 치료를 제대로 받아보시겠다고.
일에 얼마나 진심이신 분인지 아니까, 그 결심이 더 무겁게 느껴졌어. 무거운 결심은 상황을 심각하게 바라보고 계시다는 거겠지. 그럴 때 엄마들의 마음은 늘 '죄책감'으로 연결되니까, 나는 어머님을 위한 한마디를 덧붙였어.
"지호 얘기 하나만 더 드리자면요. 물론 영상에서 보신 지호는 참 못되고 친구들에게 가혹하긴 했지만요, 지호가 요즘 많이 달라지고 있는 건 맞아요. 아직 친구 마음을 잘 모르긴 하지만, 알려고 노력은 해요. 어머님이 좀 힘드시더라도, 지호 앞에서는 버텨주세요. 엄마가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줘야 아이가 안심하고 성장할 수 있어요. 지호는 잘 클 거예요."
어머님이 또 우셨어.
"선생님, 정말... 지호도 잘 클까요..?"
"그럼요. 잘 클 거예요."
나는 2년 전 첫 학교 멘토쌤께 들은 말을, 두 번째 학교에서 지호 엄마에게 그대로 하고 있었어. 그 말을 하는데 나도 눈물이 나서, 어머님이랑 둘이 같이 휴지로 눈물을 찍어내다가, 겨우 같이 웃었어.
"선생님 덕분에 지호가 많이 좋아졌다고, 담임선생님이 그러시더라고요. 감사해요."
"지호가 좋아진 건 지호가 노력한 거예요. 저는 그냥 옆에서 암호나 풀어준 거고요."
"저도 이제 같이 암호 풀게요."
어머님이 웃으셨고, 나도 웃었어.
그 뒤로 어머님은 병원에 다니기 시작하셨어. 주식 앱은 삭제하셨다고 하시더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