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2. ep 10. 정환이네
지호의 어머니가 휴직을 결심하고 2학년 아들의 건강한 성장에 모든 것을 배팅한 그 해에, 1학년 신입생의 어머니 중에도 자신의 모든 것을 아들에게 배팅한 어머니가 있었어. 아이의 이름은 안정환. 누가 들어도 "어?" 할 법한 이름을 가진 이 아이는 자신의 이름을 말한 뒤 너무나 자연스럽게 덧붙였어. "유명한 축구선수 이름이래요. 저는 잘 모르는데 엄마아빠가 젊을 때 엄청 멋있었대요." 그래. 네 이름이 누구랑 똑같은지 아는지, 그 선수를 아는지 등등, 얼마나 많이 들어왔겠어. 8년 동안.
정환이의 문제는 '기분 조절'이었어. 천사 같은 얼굴로 교실에 들어와 담임선생님께 공수 두 손 모아 "안녕하세요 선생님~ 사랑합니다!" 하며 자리에 앉아 흥얼거리며 그림을 그리다가, 자기 맘에 안 드는 게 생기면 "야 이 씨발 년아 개 같은 년아"가 먼저 튀어나왔어. 정말 얼굴을 바꿔 낀 듯이, 그 조금 전의 천사 같고 뽀실한 얼굴은 온 데 간 데 없고, 욕지거리를 내뱉는 그 얼굴은 정말 거무튀튀하고 어두운 색을 띠었어. 더 좋지 않을 땐 악을 쓰며 욕을 하고 교실 바닥에 뒹굴었는데 그때의 정환이는 정말, '눈까리'가 돌아있었어. 거기서도 진정이 안 되면 교실 밖을 뛰쳐나가 집에 간다며 정문 밖으로 탈주하기 일쑤여서 배움터지킴이 선생님께 붙잡히곤 했지. 여든을 바라보며 머리 희끗한 배움터 지킴이 선생님도 8살 조그만 아이에게 "개새끼야 씨발 새끼야" 소리를 들으셔야 했어.
정환이의 또 다른 문제는 '짱구'에 완전히 꽂혀 있다는 거였는데, 가방도 짱구 가방, 가방에 달린 키링도 짱구 인형, 필통도 짱구 필통, 그 필통에 든 연필도 짱구 연필. 짱구 노트에 짱구 연필로 짱구를 그리는 데 심취해 있었지. 학교에 와서 하는 거라곤 짱구 그리기와 짱구 색칠하기밖에 없었어. 그걸 못하게 할 때마다 폭발했기 때문에 정환이의 짱구 사랑은 문제가 맞았어.
정년퇴직을 바라보시는 정환이의 담임선생님은 정환이의 첫 '폭발'이 있은 날부터 정환이를 바로 상담 의뢰하셨고, 정환이가 폭발할 기미가 보이면 바로 상담실로 보내셨어. 상담을 하기 위함이 아니고 '분리조치'였기 때문에 담임선생님은 어머니께 바로 연락을 하셨고, 그럼 어머님이 상담실로 정환이를 찾으러 오셨지. 그렇게 어머니를 거의 매일 만나며 얘기 나누다 보니, 정환이의 이러한 '행동 특성'이 아주 어릴 때부터 지속되어 온 거라는 걸 알게 됐어. 이런 모습은 당연히 하루 이틀의 모습이 아니었던 거지.
어린이집에 처음 다니기 시작했을 때부터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어린이집이고 유치원이고 몇 번이나 옮기셨는지 모르겠대. 짱구 그리게만 냅두면 아이가 천사인데,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학교에서 모두 '당연히', '응당' , '다같이' 해야 하는 교육 활동을 같이 하라고만 하면 발작이 시작된다는 거야. 수학 문제 같은 거 푸는 걸 보면 머리가 나쁘거나 지적장애가 있는 것도 아니고, 또 어떤 때는 시키는 대로 활동을 기분 좋게 할 때도 있어서, 얘 맘을 좀처럼 종잡을 수가 없다고 너무 답답하다고 하셨어.
그렇게 답답한 마음으로, 어머니는 매일 같이 '논문'과 '외국서적'을 찾아보셨어. 그렇게 수백, 수천 개의 논문을 찾아보고 제 아들에게 직접 내리신 진단명이 바로 순환감정 장애(cyclothymic disorder), 즉 경미한 정도의 '조울증'이었어. 짱구에 너무 집착해서 자폐스펙트럼인가 하고 그쪽도 열심히 공부하셨으나 상동행동 등 다른 주요한 증상이 나타나지 않아 자폐는 아닌 것 같고, 적대적 반항장애나 품행장애 쪽인가 하고 그쪽을 공부해 봐도 평소 기분 좋을 때의 특성이 거기엔 못 미치고.
평소엔 굉장히 젠틀하고 예의 바른 동시에 의기양양하고 기분이 고양되어 있거든. 일상생활에 지장을 주거나 입원이 필요할 정도로 심한 조증 삽화는 당연히 아니지만, 자기가 그린 짱구 캐릭터로 박물관을 만들어서 억만장자가 될 거라는 둥, 오늘은 기분이 좋아서 1교시만에 짱구를 100개를 그렸다는 둥 자신만만하게 하는 얘기를 들어보면 정말.. 미약한 경조증 삽화 정도는 되려나 싶기도 했어. 그리고는 일순간에 급격히 기분이 변화해 우울 삽화로 들어가 '반항' 및 '폭발'이 일어난다는 거지. 그게 어머니의 논리였어. 그래서 어머니는 '어린이 조울증'에 대한 논문이나 서적이 너무 부족하다고 답답해하셨지. 기분장애를 다룬 논문 중 소아/청소년에 대한 부분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다 형광펜을 쳐서 나에게 가져오시곤 했어. 이런 상담프로그램을 적용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이런 교육이 정환이에게 좋지 않을까요?
물론 어머님의 학구열과 아들에 대한 사랑은 나를 감동시켰어. 나도 어머님이 가져오시는 자료를 함께 열심히 보고 공부하고, 아이 상담 시간에 적용해보기도 했어. 저는 학교에서 이렇게 해볼게요, 어머님은 댁에서 이렇게 해보세요, 하면서 아이에 대한 교육과 양육의 방향을 일치시키고, 어머니와 담임선생님과 나 이렇게 셋이 완전 공조하며 아이의 폭발을 잠재우려 노력했지. 좋아지기도 하는 것 같고 나아지기도 하는 것 같고, 아이랑 합이 맞아지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러다가도 아이가 폭발하면 또 함께 무너지는 것 같고. 아이를 데리러 온 어머님과 손 붙잡고 '아 요즘 좋았는데요, 그쵸.'하며 서로의 아쉬움을 위로하고, 또다시 잘해보자고 서로를 격려하고, 그렇게 어머님과 나는 합이 잘 맞는 동료가 되어 함께 아이를 키우고 있었어.
근데 늘, 내 마음속에 가장 크게 자리한 찝찝한 부분은 해소가 되질 않았어.
왜 병원에 데려가서 진짜 진단, 진짜 치료를 받지 않으시는 걸까?
어머니께 권하지 않은 게 아니거든. 담임선생님 말씀 전해 듣고 어머님을 처음 만났을 때도, 정환이를 일주일에 4-5번씩 만나게 된 때에도, 같이 논문이랑 외국 서적을 형광펜 칠하며 공부하던 그때에도, 난 계속 병원 진단 및 치료를 권했어. 그럴 리 없겠지만 경제적으로 부담될까 걱정하시는 거라면 교육청 치료비 예산을 신청해 드릴 수 있다고. 제대로 종합심리검사도 받아보고 진단도 받아보고 아이에게 맞는 치료를 해보자고.
하지만 어머니는 끝내 원치 않으셨어. 의사 앞에 내 아이를 데려가는 대신, 의사가 내 아이에 대해 병명을 진단하는 대신, 그걸 막을 수 있다면 다른 그 무엇이라도 할 수 있다는 식이셨지. 그러니까 실제로 매일같이 학교에 아이를 데려다주고, 담임선생님 전화가 올까 아무 데도 못 가고 집에서 내내 공부만 하셨지. 전화하면 바로 튀어오시고, 바로 데려가시고. 아이를 위해 뭐든 하셨어. 병원 진단 빼고는 뭐든.
결국 정환이는 2년 뒤에 <금쪽같은 내 새끼>에 나오더라. 내가 그 학교를 떠난 후에도 아이의 돌발행동과 폭언/폭력은 계속되었다고 해. 상담선생님은 늘 교실을 탈출한 아이를 잡으로 뛰어다니셨고, 어머니는 아이가 2학년, 3학년, 4학년이 될 때까지도 늘 학교를 오가셨다고 하더라고. 평소엔 일하는 기분이 들어서 <금쪽같은 내 새끼>를 안 보는데, 정환이 편은 참 궁금하더라. 도대체 내가 놓친 게 뭐였을까. 도대체 아버님은 어떤 분이실까. 도대체, 어떤 집이길래 아이가 그렇게 됐을까.
내 핸드폰 화면 안에 나타난 정환이는 2년 새 키가 많이 컸고, 여전히 짱구를 좋아했어. 처음 본 정환이의 집 내부는 온통 짱구 인형으로 가득 차 있더라고. 아직도 짱구에 빠져있다니, 못말려 정말. 근데 내가 진짜 놀랐던 건, 정환이가 아빠에게 폭언과 폭력을 일삼고 있었다는 점이야. 나는 아버님이 엄하신가, 아버님이 욕을 많이 쓰시나, 아버님이 아이를 너무 잡아서 학교에서 아이가 폭발하나, 그런 가설을 가지고 있었는데, 아버님은 너무 스윗하고 약한, 늙은 남자였어. 정환이는 정년을 앞둔 담임선생님과 70대 배움터지킴이 선생님께 그랬듯이, 집에서는 제 아빠에게 "개새끼야, 씨발 새끼야"를 외치고 있었어. 이제는 좀 커서, "나도 하기 싫은데 욕이 나온다고요!", "나도 이러고 싶지 않다고요!" 하는 변명까지 곁들여가며.
아빠를 발로 차고 아빠 얼굴을 밀치고 아빠에게 욕을 퍼붓는 아들을 바라보며, 미소 띤 얼굴로 부드럽게 '정환아 마음 아픈 일이 있어서 그래?' 묻는 어머님을 보는데 처참한 기분이었어. 훈육 방법을 배워온 아버님이 아이의 공격 행동을 제압하며 아이에게 엄하게 이야기하자 아이가 비겁하게 "씨발 존나 입냄새 난다고!" 하면서 발악을 했는데, 어머님은 아버님 밑에 깔린 아이가 혹여나 아플까 "자기야 애기 다리! 정환이 다리!!" 하며 참견을 하고 아버님 얼굴에 마스크를 씌워주시더라. 정환이가 입냄새 맡으며 괴로워하니까 마스크라도 쓰라고.
아. 내가 왜 어머님의 '훈육 부재'를 알아채지 못했을까.
기분장애 아동 양육을 위해 마음을 읽어주는 대화를 열심히 연습하고 계시다던 어머님께, 왜 마음을 읽어주시기 전에 '안 되는 건 안 된다'를 가르치셔야 한다고 말씀드리지 못했을까. 왜 그때 나라도 남을 때리는 건 안 된다고 가르치지 못해서, 아버님이 그 1학년 아기에게 맞다 맞다, 4학년이 되어 힘이 세진 아이에게 맞는 게 이제는 좀 정말 아파서 못 참겠다고, 방송에 이름이고 얼굴이고 다 까발려져도 어쩔 수 없겠다고 생각하시게 만들었을까. 왜 그때 아버님을 모셔서 얘기 나눠보지 못했을까 참 죄송스럽더라.
부부가 합을 맞춰 훈육하고 양육하는 '솔루션'은 갈 길이 멀어 보였지만, 아이의 충동 조절 능력은 약간의 ADHD 약물로도 바로 많이 좋아졌어. 그때 어머님이 아이의 진단명으로 기분장애 계열의 순환감정 장애를 선택하셨을 때 정신 차리시라고, 병원 가서 제대로 진단받고 약물치료 시작하자고 단호하게 말씀드릴걸. '선택'이라는 단어 하나로 어머님의 모든 노력이 평가절하되는 느낌이라 죄송하지만, 어머님이 본인의 아드님을 자폐도 품행장애도 ADHD도 아닌, 그나마 가장 마일드하고 수용가능한 정도의 '기분장애'로 셀프 진단 하셨듯, 나도 그냥 그건 어머님의 가장 비겁한 '선택'이었다고, 셀프 진단 하고 죄송해할게.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몇 년을 같이 개고생 한 거냐고 도대체. 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