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2. ep 11. 가영이
가영이는 조용하고 반항적인 아이였어. 좀 모순적인 두 수식어를 가지고 있지? 아직 학교 선생님들한테 미움받을 용기까진 없으면서, 집에선 제 엄마를 쥐고 흔들었어. 그래서 코로나가 끝나고 모두 다시 학교로 돌아온 후에도, 자꾸만 학교에 나오지 않았어. 담임선생님이 어머니께 전화해도 어머니는 가영이를 설득하거나 학교에 끌고 가실 힘이 없었지. 그저 담임선생님께 "애가 맨날 새벽까지 핸드폰 하다가 늦게 일어나서요..", "근데 깨우면 너무 무섭게 반항하니까..", "정말 무슨 일 날까 봐 제가 쟤를 어떻게를 못해요 선생님.." 하며 답답한 소리를 하실 뿐이었어.
그렇게 하루 결석하고 학교 나오고, 이틀 결석하고 학교 나오고, 그러기를 반복하다가 어느 날엔 3일이 넘게 안 나와버린 거야. 근데 초등학교에선 무단결석이 3일을 넘으면 가정방문을 해야 하거든. 아이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확인을 해야 된대. 담임선생님은 학교엔 온 아이들 수업을 하셔야 했고, 나랑 교감선생님이 가정방문을 하기로 했어. 아파트단지에 있는 학교였어서 그런지, 집이 참 가깝더라. 학교 정문을 빠져나온 지 5분이 안 됐는데 가영이 집에 도착했어. 그리고 또 5분도 안 되어 나왔어. 가영이가 문을 열어주지 않았거든.
어머니는 집까지 찾아온 교감선생님과 나를 보고 쩔쩔 매시며 땀을 흘리셨지만, 아무리 불러도 가영이는 걸어 잠근 방문을 열어주지 않았어. "아 지금 일어났다고!!" 하며 엄마한테 짜증 내는 소리만 들릴 뿐. 우리한테는 뭐 가세요, 마세요, 기다리세요, 안녕하세요, 조차 없었어. 그냥 우리가 없는 듯이, 하지만 우리가 와서 굉장히 짜증이 많이 난 걸 엄마에게는 풀어야겠다는 듯이, 그렇게 엄마한테 소리치고 쿵쿵거렸어. 그래서 교감선생님이 학교로 돌아가자고 하시더라고. 아이의 생사를 확인했으니, 오늘은 이만 가자고.
그렇게 별 소득 없이 돌아온 다음 날, 가영이는 또 학교에 안 나왔어. 그래서 교감선생님이랑 내가 또 갔어. 5분 걸려 도착했고, 이번엔 10분 뒤에 나왔어. 가영이가 방 밖으로 나와줬거든. 교감선생님도 나도 그날 가영이를 처음 봤어. 너무 귀엽고 예쁜 6학년 여자애였어. 보자마자 나도 모르게 환한 웃음이 나오더라.
가영아 안녕. 이렇게 보니까 너무 좋다. 나와줘서 고마워. 잘 잤어?
가영이는 잘 자진 못했다고 고개를 저었어. 그래도 기분은 괜찮아 보였어. 수줍음과 기분 좋음이 공존하는 애매한 미소를 짓고 있었는데, 그게 너무 귀여웠어. 저런 귀여운 꼬마 녀석이 제 엄마를 그렇게 힘들게 했다니, 어제 그렇게 소리를 질러댔다니, 참 믿기지가 않아서 웃음이 나오더라.
그날은 가영이를 학교에 데려가지 못했어. 대신 내일은 꼭 나오겠다는 다짐을 받고 헤어졌지. 하지만 가영이는 다음 날도 학교에 오지 않았어. 그래서 교감선생님과 내가 또 갔어. 5분 걸려 도착했고, 1시간 뒤에 나왔어. 내가 가영이 방에서 첫 상담을 시작했거든.
가영이는 친구들이 무섭다고 했어. 친한 무리가 있다가도 늘 결국 자기만 소외되고, 친한 친구가 생겼다가도 늘 다른 친구가 와서 그 친구를 뺏어간다고. 그래서 어느새 자기는 이 큰 학교에서 외톨이가 되었다고. 현지, 지영이, 은채, 연서, 시원이, 혜경이... 가영이가 유치원 다니던 시절부터 6학년에 올라오기까지 거쳐왔던 수많은 여자아이들의 이름이 줄줄이 나왔어. 대하드라마가 순식간에 지나갔지. 얘는 다 기억하고 있었어. 그 애들이 자기를 어떻게 버렸는지. 그 상처들이 너무 크고 너무 많고 너무 곪아서 더 이상 학교에 있을 자신이 없어진 거였어. 또 버려지고 또 상처받을까 봐 집에서, 자기 방에서, 자기를 지키고 있는 거였어.
새로운 친구를 만들어보자고, 친구는 또 생긴다고, 아무리 힘들어도 학교는 나와야 된다고, 그런 말은 하지 않았어. 나는 그냥 그 아이가 겪었을 아픔과 괴로움에 집중했어. 얼마나 아팠니, 얼마나 외로웠니, 얼마나 서러웠니. 나는 그 애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아픔을 함께 겪어보려고 했을 뿐인데, 그 애는 내 위로에 용기를 얻었나 봐. 나는 아무 말도 안 했는데 "그래도 내일은 가볼게요." 하더라고. 나로서는 땡큐였지.
"매일 저희 집에 오는 거 귀찮으실 것 같아서요.."
마음이 여리고 착한 아이였어.
그렇게 가영이는 학교에 나왔어. 한 11시쯤 왔지만 그래도 왔지. 심지어 9시쯤 어머님이 상담실로 전화를 주셨어. "지금 일어났는데, 오늘은 정말 간대요.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그래서 그날부턴 가정방문을 안 할 수 있었어.
학교에 와서는 수업 중인 교실에 들어가지 못하고 상담실에 있다가 쉬는 시간에 조용히 스르륵 들어갔어. 조용히 수업을 듣는 척 공상을 하거나 그림을 그리다가, 또 그곳에 있는 게 못 견디게 힘들어지면 쉬는 시간을 맞춰 조용히 교실을 빠져나왔어. 그럴 땐 상담실에도 오지 않고 자기 맘대로 학교 안 구석구석을 돌아다녔어. 워낙에 좀 자유로운 영혼이었던 것 같아.
그 조용하고도 자유로운 영혼의 마음속에 어떤 장난꾸러기가 들어있는 건지, 어떤 반항아가 들어있는 건지, 가영이는 학교 구석구석에 예술활동을 시작했어.
가영이가 없어졌다고 담임선생님께 연락이 오면 내가 찾으러 돌아다녔거든. 분명히 하얗게 비어있던 옥상 가는 계단 벽면에 스마일이 그려져 있었어. 다음날엔 좀 더 큰 스마일이 하나 더, 다음날엔 더 큰 스마일이 하나 더.
난 얘가 너무 웃기더라. 처음엔 그냥 모른 척했는데, 마지막에 그린 스마일이 너무 커서 그날은 웃음을 참지 못하고 말했어. "너지?" 그랬더니 아니래. "아니구나~ 알았어. 누가 한 건진 몰라도 진짜 그림 한 번 시원하다, 그치?" 그랬더니 가영이가 웃었어.
다음날엔 이런 낙서를 해놨더라.
어제의 내 말에 대답하듯이 헤헷^^ 하고 웃어놓은 그 낙서가 정말 너무 귀여웠어.
과감한 범행 후 일단 부정.
하지만 인정과 칭찬엔 수줍은 화답.
저 낙서를 보는데 내가 다 만족스럽더라.
헤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