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다수만 마시는 여자

Part 2. ep 14. 육일공

by 오엉

이 학교에서도 많은 힘든 아이들을 만났지만, 그래도 애들은 대체로 예쁘고 순한 편이었거든. 첫 학교 열악한 학군의 그 아이들만큼 거칠거나 날 것 그대로의 느낌은 없었어. 오냐오냐 사랑받고 자라서 지멋대로 이긴 했어도, 대체로 어른 공경할 줄 알고 우울해도 적당히 우울할 줄 알았달까. 근데 문제는 어른들이었어. 1년 하고도 한 학기가 딱 지나니까, 이 학교에서 보고 듣고 만나는 어른들 중 너무 싫은 인간들이 생기기 시작하더라고.


그중 제일 '핫이슈'였던 사람이 바로 6학년 10반 선생님. 내가 이 학교 전입해 오던 해에 나랑 같이 들어오신 젊은 여자선생님인데, 첫눈에 봐도 '와 예쁘다' 소리가 나올 정도로 정~말 예쁜 분이었어. 키도 크고 늘씬하고 정말 서구적으로 눈에 띄게 예뻐서 길에서 지나가면 누구나 고개를 돌려 쳐다볼 정도였지. 아이들이랑 같이 현장체험학습으로 에버랜드나 민속촌에 갈 때면 다들 '연예인인가?'하고 웅성댔다니까 정말.


젊고 예쁘고 게다가 전입 동기이기까지 한 그 선생님이랑 친하게 지냈냐 하면 그건 아니었어. 나름대로는 그 선생님을 걸러내고 일부러 거리를 뒀었는데, 아주 짧은 시간 동안에도 그분이 내 마음속에서 탈락(?)할 만한 일이 여러 번 있었기 때문이야. 제일 기본적인 건 인사. 그분은 인사를 안 하기로 유명했어. 화려하고 차갑게 생긴 미녀에게 인사했다가 무시당한 선생님들이 한 둘이 아니었지. 나보다 한 살 어린 걸로 알고 있었는데, 같은 또래인 나는 물론이거니와 나이 지긋하신 부장님들께도 인사를 안 한다고 소문이 자자했어. 안 하기만 하면 괜찮게? 부장님들이 먼저 살갑게 인사하셔도 아예 무시하거나 고개만 '끄덕'하며 지가 인사를 받는다는 거야. 말이 되는 일이냐고. 사람과 사람 사이 가장 기본적인 매너가 인사라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용납하기 힘든 일이었지.


그리고 학부모 총회와 교직원 회의. 3월 중 학부모 총회 때 담임교사들 인사 시간에 오질 않더라고. 들리는 말에 의하면 조퇴나 병조퇴를 쓴 것도 아니고 학교에 있었는데 '그냥' 안 나왔다고 했어. 그리고 한 달에 한 번 있는 교직원 회의 때도 도통 오질 않더라고. 와도 아주 뒤늦게 와서 맨 뒤에 서있다가 일찍 나가는 식이었어. 다들 '워낙에 예쁘셔서' 얼굴 팔리는 게 싫은가 봐- 했지.


근데 또 일도 제대로 안 하는 거야. 4월에 전체 학부모 상담주간이 있는데 내가 담당자라 전체 학급 담임선생님들의 학부모상담 건수를 취합해서 결과 보고 하거든? 그래서 학부모 상담주간이 끝난 후 각 반 상담 건수와 퍼센트를 입력해서 제출해 달라고 했더니 제출기한이 다 지나도록 안 내는 거야. 다른 몇몇 선생님들처럼 상담주간 끝나고까지 상담을 좀 진행하시나 보다, 그래서 늦어지나 보다, 하고 기다리다가 나중에 연락을 드렸는데 글쎄 쪽지로 뭐라고 왔는지 알아?


안 했어도 제출해야 되나요?


아니. 전체 담임교사가 진행하는 학부모 상담주간에 왜 자기만 안 하는데. 아니 안 했다고 쳐. 제출기한이 지나서 다시 한번 제출해 달라고 했을 때도 씹어서 나중에 또 개별적으로 선생님만 안 내셨다, 상담 끝나셨으면 제출 부탁드린다, 했더니 띡 보내는 말이 '안 했어도 제출해야 되나요?'인 게 난 너무 상식 밖인 거야. 아 안 하셨구나 하고 그냥 내가 0명 처리해서 결과 보고 했으면 될 일을, 나도 저 사람 행태가 너무 어이없어서 '네. 안 하셨으면 0명 써서 제출하셔야죠.' 해버렸었어. 이후 교감선생님한테 6학년 10반 진짜 0건 했냐며 이걸 어떻게 결재하냐며 전화가 오긴 했는데, 뭐 내가 0건 했어? "안 하셨다는데 그럼 제가 어떡해요" 해버렸어 나도.


이어지는 일화는 체육대회. 5월 어린이날 즈음해서 체육대회를 했는데 반마다 달리기 시합이 있었거든. 담임선생님이 출발선에서 호각을 불어주면 50m쯤 떨어진, 나랑 사서선생님이 결승선 리본을 들고 있는 곳까지 달리는 거지. 5명의 아이들이 모두 결승선을 통과하면 교감선생님이 그 아이들을 스탠드에 앉히시고, 정리가 되면 출발선에서 대기하던 다음 순서 5명이 출발했지. 유치원 민들레반 채송화반 아이들부터 초등학교 1학년, 2학년 순서대로 6학년 9반까지. 모든 반이 그렇게 했어. 근데 마지막 6학년 10반. 그 선생님은 아이들이 결승선까지 다 도달하기도 전에 뒷순서 5명을 출발시켰어. 나랑 사서선생님, 교감선생님이 연달아 오는 아이들을 정리하느라 진땀 뺀 것도 진땀 뺀 거지만, 앞순서에서 뒤처지는 아이와 뒷순서에서 치고 나오는 아이가 서로 뒤엉켜 위험했다고. 그걸 보면서도 어떻게 계속 그렇게 진행할 수가 있는지 난 정말 그 사람의 품성에 계속 의문이 들더라. 어떻게 생겨먹은 인간인거지 도대체? 하고 말야.


위클래스가 6학년 10반 바로 아래층 교실이었는데 매일같이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아이들 혼내셔서 진짜 매일 귀가 아팠던 건 말할 거리도 못 돼. 애들이 상담실에 와서 "우리 선생님이 씨발이라고 했어요!", "선생님이 저보고 이 새끼라고 했어요!" 하던 것도. 애들이 "우리 선생님이 선생님 되지 말래요. 월에 240만 원밖에 못 번대요!"하던 것도. 수업시간에 스팸전화가 오면 아이들한테 직접 보여주시면서 "보이스피싱 전화는 이렇게 상대하는 거야. 에벱ㅂㅂ베ㅔ베베ㅔ"하신다던 것도 말야. 아무리 애들 말은 전부 믿을 건 못 된다고 쳐도 말야.






아무튼 그런 모종의 이유들로 나는 그분을 혼자 멀리하고 있었는데 말야. 그분은 특이하게도 학교로 삼다수를 많이 시키셨어. 본관 1층에 택배 받는 곳이 있었는데 거기에 삼다수 2L짜리가 12개, 24개씩 와있곤 했거든. 내 택배 찾으러 갔다가 보면 늘 삼다수에 그 선생님 이름이 쓰여있었어. 자취를 하신다더니 삼다수 드시나 보네. 그냥 그러고 말았지.



삼다수.jpg



근데 어느 날 점심을 먹고 사서선생님이랑 소화시킬 겸 산책을 하다가 본관 1층에서 삼다수를 또 본거야. 나도 모르게 "어 또 삼다수" 했어. 그랬더니 사서선생님이 "육일공(6-10)?" 하시더라고. 내가 "오 선생님도 아세요?" 하니까 사서선생님은 또 "당연하지. 모르는 사람이 어딨어. 저거 맨날 집으로 들고 가잖아." 하면서 이상한 표정을 지으시더라고.


뭐지? 사서쌤 말씀이 좀 이상했는데, 생각해 보니 진짜 이상하더라고? 학교엔 학생들용 음수기도 있고 교사용 정수기도 있으니까 당연히 삼다수가 필요 없는데. 삼다수 2L짜리는 정말 가정에서 쓰는 거잖아. 그럼 당연히 집으로 시킬 텐데 뭐 하러 번거롭고 무겁게 학교로 시키겠어? 갑자기 머릿속에 뉴런들이 파바박 이동하면서 한 가지 생각이 스쳤어.




'아. 학교 돈으로 사는 거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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