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면 땡큐고 안 되면 말고

Part 2. ep 15. 육일공 2

by 오엉

'아. 학교 돈으로 사는 거구나.'


그 생각이 스치자마자 나는 '띠용'한 표정으로 사서쌤을 바라봤어. 사서쌤이 눈썹을 꿈틀거리고 입을 삐죽이면서 "어~ 그니까~" 하셨어. 내 생각이 들렸나? 싶더라고. 그리곤 우리 둘 다 말이 없었지.


그렇게 이상한 일을 겪고 다음날이 됐어. 위클래스에 학부모상담용 커피가 똑 떨어진 거야. 카누를 좀 사야겠다- 싶었는데 학기 초에 행정실 계장님이 주셨던 전체 쪽지가 갑자기 떠올랐어. 아 뭐 커피를 사지 말라는 그런 말이 쓰여있었던 것 같단 말이지. 그래서 그날 점심시간에 급식실에서 같이 밥 먹는 선생님들께 여쭤봤어.


"우리 그때 계장님이 커피 같은 거 사지 말라고 했죠?"


대부분은 기억을 못 하셨는데, 학부모회를 담당하는 선생님께서 "아니야. 나두 어머니들꺼 사. 자기두 사두 돼." 하시는 거야. 그래서 "아니 그때 계장님이 전체쪽지로.." 하니까 선생님이 갑자기 나한테 다가오셔서는 내 귀에 속삭이셨어.


"그거 자기한테 하는 말 아니니까 자기는 사도 된다고."


어? 뭔가 좀 이상했어. 예사롭지 않은 말씀을 하시는 것 같다 싶더라고. 야-한 냄새가 났달까. 점심을 후딱 먹고 급식판을 정리하고 그 선생님께 따라붙었어. 아니 선생님 아까 그 말씀 뭐예요. 저한테 하는 말이 아니라면 전체쪽지로 누구한테 말하는 건데요. 왜 카누 사지 말라는 건데요-


"육일공~"


"육일공 사지 말라고 걔한테 보낸 거야 계장님이~"


또 육일공? "6학년 10반 쌤이요? 왜요??"


그 후로 학부모회 담당 선생님 입에서 나온 말은 충격적이었어. 아니 학급운영비로 학생 간식을 품의하더니 과자 몇 개 영수증이랑 '스타벅스 아이스 아메리카노' 커피 영수증을 내더라는 거야. 캡슐이요? 카누 같은 거요? 하니까 아니래. 스타벅스 직접 방문에서 테이크아웃한 커피 영수증이었대. 나도 모르게 "미친 거 아니야?" 소리가 절로 나왔어. 그래서 계장님이 '아이들 간식비로 선생님이 드신 커피는 못 사드린다.'라고 못 박았대. 그랬더니 "왜요?" 하더라는 거야. 계장님도 기가 차서 '당연히 안 되죠. 학생들 위해 내려오는 예산이고 선생님은 월급 받으시잖아요.' 하면서 응수했더니 뭐 별다른 말도 없이 영수증 가지고 가더래.


그러더니 다음엔 또 학생 간식 명목으로 제출한 영수증이 배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 파인트였대. 파인트 하나를 20명이 되는 애들하고 나눠먹었냐니까 그렇다면서 뻔뻔하게 들이밀더래. 그래서 진짜 울며 겨자 먹기로 계장님이 그걸 받아줬다는 거야. 그래서 계장님이 육일공만 보면 치를 떤다고.


아니 세상에 진짜. 나는 입을 다물 수가 없었어. 내가 처음 학교라는 곳에 들어왔을 때, 그때 내 고등학교 동창 예삐 있지. 첫 학교 애들을 '미래 없음'으로 설명했던 걔. 걔가 나한테 해준 말이 "오엉아. 학교 돈으로 사는 건 절대 연필 한 자루라도 집에 가져가면 안 돼." 였단 말야. 난 그래서 정말, 세금으로 받는 월급과 예산의 무서움과 무거움을 신규교사 시절부터 절실히 느끼면서, 학교 예산으로 사는 물건은 진짜 허투루 안 쓰려고 해왔어. 근데 뭐? 애들 돈으로 스벅을 사 마시고 배라 아이스크림을 퍼먹어? 미친 거 아냐?


그뿐만이 아니었어. 학급운영비에 '학생 보상' 명목으로 품의 올리는 명목들에 아이들 물건을 잔뜩 사고, 거기에 교묘하게 '나이키 샌들', '스탠리 텀블러', '칫솔 살균기', '동전파스', '세탁세제' 등을 집어넣는다는 거야. 행정실장님은 협조니까 관리자분들께 맡기자 하며 결재하고, 교감선생님 교장선생님은 품의 목록까지 자세히 보지 않으시니까 그냥 결재하고. 그러고 나면 이제 계장님이 11번가든 G마켓이든 육일공이 장바구니에 담아놓은 걸 사줘야 하는데, 교묘하게 넣어놓은 '어른용 물건'들을 발견할 때마다 꼭지가 돈다는 거야. 전화해서 '이건 못 사드립니다.' 하면 '왜요?', '아 그럼 빼주세요.' 식으로 나오니까. 되면 땡큐고 안 되면 말고. 딱 그거였대.


스벅이랑 배라도 진짜 충격인데 나이키 샌들.. 세탁세제.. 까지 들으니 진짜 정신이 몽롱하더라. '아니 어떻게. 아니 어떻게 그런 교사가 있을 수가 있지..? 간이 커도 진짜 너무 크다.. 아니 근데 도대체 언제부터 그런 거지? 계장님 쪽지가 온 게 벌써 학기 초였고, 지금은 벌써 2학긴데..' 맞장구인지 혼잣말인지 모를 말을 작게 흘리니까 학부모회 담당 선생님 말씀이, "작년에 쌤이랑 그쌤 같이 들어왔잖아, 그때부터 처음부터 그랬대. 처음부터. 그래서 계장님 작년부터 진짜 엄청 고생하셨어."








학부모회쌤이랑 잠깐의 비밀스러운 산책을 마치고 나는 바로 컴퓨터 앞에 앉아서 그 선생님의 품의 내역을 검색해 봤어. 2020년 3월 10일. 전입 오자마자 처음으로 올린 품의가 학생 간식. 항목명은 '프롬잇 프로틴칩'.



와. 운동 열심히 한다고 소문이 자자하더니 프로틴칩까지. 대~단하다 진짜.


프로틴칩이 성공하자 그녀는 더욱 대담해졌어. 요리수업을 한다며 신라면 안성탕면 짜파게티 롱롱돈까스 조선호텔떡갈비 노엣지피자 카놀라유 등을 거침없이 샀지. 락앤락도 종류별로 한 20개 되는 세트를 샀어. 남은 음식을 아이들에게 싸서 보내주는 용이면 동일 사이즈로 20개를 사면 되는데 작은 반찬용 100ml부터 300ml, 500ml, 국용 900ml까지 다양하게도 들어있더라. 그뿐이게? 5월엔 그 당시 되게 유행하던 수제약과 선물세트도 사더라. 나도 진짜 먹어보고 싶었는데. 대단한 난년이었어. 아 두 달마다 삼다수 사는 것도 빼먹지 말아야지.


그녀가 올렸던 품의서들을 하나하나 다 보고 나니까 내 손이 다 떨리더라. 도대체 어떻게 이렇게 간도 크게 살아갈 수 있을까. 나는 대단한 비밀을 파헤친 탐정에 빙의해서 사서쌤한테 달려갔어. 아니아니 쌤. 삼다수뿐만이 아니에요- 신라면 짜파게티 롱롱돈까스 조선호텔떡갈비!!! 내가 토해내듯 말을 쏟아내자 사서쌤이 웃음을 터뜨리셨어. "이제 봤어? 난 걔가 품의 올릴 때마다 맨날 봐. 롱롱돈까스 궁금해서 먹어봤는데 맛있더라."


와. 이 학교 사람들.. 나만 빼고 다 알고 있던 건가?


살짝 어안이 벙벙해있는데 사서쌤이 더 놀라운 걸 알려주겠노라며 목소리를 낮추셨어.



"걔.. 급식도 돈 안 내고 먹어."











매거진의 이전글삼다수만 마시는 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