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우면 니들도 돈 내고 먹어

Part 2. ep 16. 육일공 3

by 오엉


"걔.. 급식도 돈 안 내고 먹어."



네? 뭐라고요..? 급식을.. 돈 안 내고 먹는다고요...? 어떻게.. 요...?



롱롱돈까스 조선호텔떡갈비에 정신이 몽롱해졌던 나는 문서등록대장 품의서에는 흔적조차 없던 '급식 삥땅' 이야기에 이번엔 정말 혼절할 지경이었어. 아니 돈을 안 냈는데 어떻게 먹지..? 내 상식으론 정말 이해가 안 갔어. 근데 사서선생님 말씀이. "우리 학교 교실 급식이잖아. 그냥 애들한테 오는 거 먹는 거지. 돈은 안 내고."



Gemini_Generated_Image_h2ljdgh2ljdgh2lj.png 이해를 위해 제작한 생성형 ai 이미지입니다.



그렇다. 이 학교는 교실마다 급식차가 배달된다. 담임선생님들은 교실에서 아이들과 함께 밥을 먹고, 비담임 교직원들만 교직원 식당에서 밥을 먹는다. 그러니 급식 신청을 안 하고, 돈을 안 내고, 그냥 애들하고 섞여서 먹어도, 아무도 모르는 거지. 아니 근데 사서선생님은 그걸 어떻게 아신 거지?


어떻게 아신 거냐고 확실하냐고 여쭤보니 이번엔 학생들로부터 알게 되셨다고 하셨어. 6학년 도서부 아이들 중 10반 애들이 자꾸 와서 "아 우리 선생님 급식 먹는 거 맞아요?? 아 맨날 식판 없고 반찬 없어!!" 하더라는 거야. 처음엔 별생각 없이 흘려듣고 말았는데, 하루는 게 중 똘똘한 아이가 사서선생님한테 진지하게 물어보더라는 거지.


"선생님. 우리 선생님 급식 드시는 건지 안 드시는 건지 진짜 알아봐 주시면 안 돼요? 우리는 다 무상급식이라 우리꺼는 인원 맞춰 오는 게 당연한데. 결석생 없는 날마다 식판이랑 수저랑 한 세트씩 모자라고 1개씩 주라는 특식 반찬도 1개씩 모자란단 말이에요. 아니 우리 반 선생님이 그냥 몰래 먹는 거면 그냥 드셔도 상관없는데요. 아니 자기가 우리꺼 몰래 먹는 거면 식판이랑 반찬은 좀 자기가 받아와야 되는 거 아니에요? 맨날 우리 시켜요 짜증 나게."


진짜 '와 똘똘하네..' 소리가 절로 나왔어. 아니 너무 말이 되잖아. 자기들은 무상급식이라 인원수 맞게 올 텐데.. 하나씩 모자라면 범인은 선생인 거잖아.. 와 진짜 소름 돋더라. 사서선생님도 걔 얘기를 들어보니 정말 '오오' 싶더래. 애한테는 '누가 급식 먹는지 안 먹는지 그런 거 몰라.' 하고 교실로 돌려보냈지만 사실 교직원 공유 문서에 급식 신청/미신청 명단이 있거든. 그래서 그날 바로 확인해 보셨다는 거야. 그랬더니 웬걸, 진짜 육일공은 미신청이었던 거지.


아니 우리는 뭐 바보라서 급식비 제 돈 주고 먹는 건가??!! 학교돈 삥땅 쳐서 자기 물건 사는 건 그냥 진짜 웃기는 년이다 정도였는데, 아니 급식비를 안 내고 급식을 먹는다니까 갑자기 열이 확 받더라? 누군 진짜 호구라서 한 끼당 6,000원씩, 1년에 100만 원씩 내고 그 드럽게 맛없는 급식 먹는 줄 아냐고!


거기서 더 가관인 건, 남는 반찬까지 락앤락에 싸간다는 거야. 급식을 싸가는 날이면 도서부 애들이고 6학년 10반 애들이고 달려와서 "우리 반 쌤 오늘도 반찬 싸갔어요." 하면서 말을 하는데, 자기 맘에 드는 반찬이 좀 남는 날이면 어김없이 급식당번한테 "기다려." 한 다음에 6학년 연구실에서 락앤락을 가져와서 싸가더래. 아니 그 말을 듣는데 갑자기 머릿속에서 연결이 파바박 되면서 "잠시만. 아니 걔 락앤락 세트로 샀던데 그것도 지가 쓰고 있었네???" 이 말이 튀어나오더라.


사서선생님은 폭주기관차처럼 말을 멈추지 않으셨어. "엊그제 순살치킨 나왔잖아. 산더미처럼 받더래. 그래서 애들이 '아 선생님 쪼금만 가져가세요!! 저희도 먹어야 돼요!!' 하면서 울상을 지었다나 봐. 그랬더니 육일공이 뭐라고 했게? '꼬우면 니들도 돈 내고 먹어.' 했다는 거야~! 아니 지도 돈 안 내면서~!!!"


와. 진짜 그 말씀까지 듣는데 정말 정신이 아찔하더라. 급식비를 안 내고 애들 급식을 훔쳐먹으면서, 애들한테는 "니들도 돈 내고 먹어." 같은 빻은 소리를 하며 반찬을 제일 먼저 제일 많이 푸고, 남는 반찬은 집으로 싸가는데, 그 담아가는 통도 애들 학급운영비로 산 락앤락이라고? 진짜 미치는 거야. 진짜.






나는 이 사실을 절대 혼자만 알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어. 소문이라도 내서 아주 창피를 당하게 해야지, 급식비도 뱉어내게 해야지, 그런 다짐을 했어. 그래서 먼저 학부모회 담당 선생님을 찾아갔지. 은근한 스몰토크 끝에 롱롱돈까스, 급식 삥땅 얘기를 했어. 그랬더니 선생님께서 '이미 다 알고 있었다'라고 하시는 거야. 품의는 자기도 찾아봤고, 급식은 영양사쌤이 의심스럽다고 하셨었는데 그 반 보결 들어가 보니 애들이 "선생님 먼저 푸세요. 저희 반은 선생님이 먼저 푸셔야 애들 풀 수 있어요." 하길래 아셨대. 나는 이제 거기에 반찬 담아가는 거랑 그 반찬을 담아가는 락앤락 얘기를 덧붙였지. 그랬더니 선생님은 다른 얘기를 덧붙이셨어.


"협의실에 있던 커피머신 어디 갔는 줄 알아? 그 반에 있어."


아. 커피머신. 우리 학교엔 2대의 커피머신이 있거든. 한 대는 본관 2층 협의실에 있고, 한 대는 별관 1층 협의실에 있었어. 이 학교 처음 온 해엔 막 교장선생님도 커피머신 자랑을 하시면서 학교 돈으로 캡슐도 넉넉하게 사둘 테니 선생님들 언제든지 커피 드시고 싶으시면 협의실에서 커피 내려드시라고 그러셨거든. 그래서 작년 초엔 정말 요긴하게 썼는데, 관리하는 사람 없이 식음료 기계를 공유하게 되면 어떻게 되는지 알지?


찌꺼기 통은 꽉 차서 커피 캡슐이 더 이상 안 들어가고, 물거름망은 커피찌꺼기랑 물이랑 물때가 가득.. 그래도 '공짜 캡슐'이 있을 때는 커피 마시고 싶은 사람들 중 '운 나쁜' 사람이 알아서 다 치우고 커피 내려 마시곤 했는데, 1년 치 커피 예산을 다 쓰셨는지 2학기엔 캡슐이 더 이상 제공되지 않았어. 그러고 나니 다들 발길을 끊었지. 그렇게 모두의 머릿속에서 커피머신이 사라졌었는데, 겨울방학이 지나고 새학기가 되자 진짜 커피머신도 사라진 거야. 그래서 교무부장님이 전체 교직원 회의 때 커피머신의 행방을 아시는 분은 제보해 달라고, 다시 협의회실로 갖다 놔달라고 하셨었어. 근데 그게, 육일공의 교실에 있다고?


커피머신까지 듣고 나니 진짜.. 너무 열받더라. 학부모회 선생님께 그래서 교무부장님한테 제보하셨냐고 여쭤보니 못하셨대. 그걸 어떻게 말하냐고 하시더라. 어떻게 말하긴 사실대로 말하면 되지. 공익제보자는 원래 보호받아야 하는 법이라고. 나쁜 짓을 저지른 사람이 죗값을 받아야지 그걸 제보한 사람은 피해받아서는 안 된다고.


나는 내가 제보하기로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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