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고하지 마. 너만 다쳐.

Part 2. ep 18. 육일공 5

by 오엉

'할 수 있는 조치 없음.'


교감선생님이 내리신 결론의 이유는 이랬어. 며칠 동안 6학년 교실이 있는 곳 복도를 순시하셨고, 점심시간에 육일공이 뭔가 먹는 모습을 보긴 했는데, 책상에 있는 게 급식판인지 아닌지 제대로 보지 못하셨대. 교묘하게 책상 위가 잘 안 보이게 가로막혀 있다나. 아무튼 본인이 싸 온 도시락일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말씀이셨어. 그렇다고 애들 다 밥 먹고 있는 교실로 들어가 "육일공 선생님 지금 급식 드시는 건가요?" 하실 수도 없는 노릇이라고. 아무리 그래도 학생들 앞에서 교사의 권위는 지켜줘야 하니까. 품의는 확인해 보셨는데, 애매한 품목이 많긴 하지만 요리수업 명목으로 산 식품들인데 어쩔 수 있겠냐는 말씀. 주의를 주기도 애매하다는 입장이셨어. 그냥 앞으론 품의가 올라오면 본인이 좀 더 주의 깊게 살펴보시겠다는 말씀을 끝으로 교감선생님의 이야기는 끝이 났대. 아아. 덧붙이신 말씀은 "이 결론을 이 사안을 아는 선생님들께 전달해라. 그리고 교장선생님께는 말씀드리지 마라."


아니 복도 순시까지 가셨으면 교실은 왜 못 들어가시며, 왜 책상 위에 놓인 게 급식판인지 도시락인지 못 보시며, 왜 그녀를 불러다 놓고 "급식비 안 내고 급식 드시나요?" 묻지를 못하시는 건지. 그리고 품의 내역이 뭐가 그렇게 애매하시다는 건지. 또 교장선생님께는 도대체 왜 전달하지 말라는 건지. 우리는 진짜 교감선생님을 이해할 수 없었어. 그리고 "와 진짜 교감선생님이 육일공 무서워하네." 소리가 나오더라고. '나 같아도 쟤처럼 기고만장하게 살겠다.' 싶더라고.


"제가 그냥 신고할까 봐요."


답답한 마음에 그런 소리가 그냥 나왔어. 맡은 일도 제대로 안 하는 부하직원을, 일 못한다고 혼내달라는 것도 아니고 나쁜 짓을 하고 있어서 혼내달라는데 왜 그걸 안 해주시냐고 왜. 왜 성실하게 자기 몫의 일 하고 자기 몫의 밥값 내며 사는 착한 사람들 등신 만드는 데 동참하시냐고 왜. 육일공에 대한 분노는 일순간 교감선생님한테 향하기도 했어.


"교감선생님이 진짜 육일공 무서워하시는 건가 봐요. 아니면 뒷배를 봐주는 거든지.

우리 학교에 방송국 차나 교육청 감사 뜨면 그냥 제가 신고한 줄 아세요."


공익제보든지 국민신문고든지 방송국이든지, 저 육일공이 어떻게 되든지 말든지, 결재라인에 있는 교감이고 교장이고 뭐 잡혀가든지 말든지, 난 이제 모르겠다고, 난 그냥 이제 수틀리면 바로 제보 때릴 거라고, 그렇게 주미언니 앞에서 쎈 척을 했어. 그랬더니 주미언니가 그러더라.


"이오엉. 하지 마. 신고하지 마. 너만 다쳐."


“제가 왜 다쳐요, 저는 잘못한 것도 없는데.”


“네 마음만 다친다고. 신고하지 마. 그런 거 하지 마.“


그 말을 듣는데 갑자기 울컥하더라. 육일공이 제멋대로 사는 게 내 인생에 무슨 그렇게 큰 피해를 줬다고, 걔가 삼다수를 학교돈으로 마시든 피자를 학교돈으로 먹든 급식을 돈 내고 먹든 안 내고 먹든, 내가 살던 내 인생 하고는 하등 상관도 없는데, 내가 왜 나서서 열내고 기분 나빠 하고 교감선생님을 미워하고 의심하고 또 혼자 상처받고 있었을까. 갑자기 모든 게 다 의미 없어지는 느낌이랄까. 아니, 모든 불타오르던 감정이 한순간에 사그라지고 천천한 연기만 피어오르는 차분한 느낌이었어. 그래. 그 사람이 떳떳하지 못한 삶을 사는 건 내 떳떳한 삶과는 관련이 없다. 그 사람의 잘못된 삶이 내 삶에 피해 주게 만들지 말자.


“그냥 그렇게 살게 둬.”


주미언니의 말에, 나는 그동안 가졌던 모든 신고 의지를 내려놨어.








근데 일이 풀리려면 어떻게든 풀린다고, 신고하고 싶어도 육일공이 찾아와 해코지할까 봐 아무 액션도 취하지 못한 채 끙끙대고만 있는 나에게 누군가 다가왔어. 정미언니, 행정 계장님이었어.


내가 행정실 주무관님 중 희경언니랑은 친하거든. 첫 발령받았던 학교에서도 같이 일했었는데, 두 번째 학교에 와서 1년 일하고 나니 희경언니도 여기로 발령받아 온 거야. 그래서 희경언니랑은 만나서 종종 육일공 얘기를 했었어. 아니 그런 걸 산다면서요? 하면 희경언니는 행정실에서 목격한 더 실제적이고 자극적인 일화들을 알려줬지. 근데 내가 교감선생님의 결론과 입장을 희경언니한테 전달하자, 희경언니는 정미 계장님한테 전달한 거야. 그날 정미언니는 처음으로 상담실을 찾아왔어.


"선생님. 육일공이 한 짓들 아시죠?"


나는 올 것이 왔다 싶었어. 고개를 끄덕거리자 정미언니는 1년 반 동안 겪었던 수모를 모두 쏟아내기 시작했지. 프로틴칩으로 시작해 삼다수, 롱롱돈까스, 조선호텔떡갈비 등 식료품은 애교였고 스벅 아메리카노나 배스킨라빈스 파인트 아이스크림뿐만 아니라 트레이더스에서 장 본 영수증까지도 그냥 툭하면 청구했대. 누가 봐도 그냥 '자기 장 본 물품' 영수증을 안 받아준다고 하면 '왜 안 되냐'며 따지고 들어 그때마다 진짜 골치 아팠다는 거야.


그게 다가 아니야. 나이키 샌들, 동전파스, 칫솔살균기 등 작은 물품들 뿐만 아니라 LED 시계며 에어프라이기, 최고급 주물 프라이팬 세트 등 소형가전도 그 수가 엄청났어. 교장교감선생님 결재가 다 났으니 사주긴 사줘야겠는데, 이게 다 교실이 아니라 육일공 집으로 갈 것 같았다는 거야. 그래서 고심 끝에 방학 전 소형 비품들 재고 확인한다고 그동안 샀던 소형 가전들 연구실에 다 갖다 놓으라고 했대. 우리는 사실 소형 가전 살 일이 없어서 그런 일이 있었는지도 몰랐어. 암튼, 육일공을 향한 메시지였는데, 역시나 안 가져놨다는 거야. 왜 없냐고 물었더니 '시계는 고장 나서 버렸고, 에어프라이기는 애들이 옮기다가 떨어트려서 망가져서 버렸고, 프라이팬 세트는 요리수업 후 잠깐 집에 가져가서 썼는데 가져오겠다'고 했대. 근데 프라이팬 아직도 안 갖다 놨다고 말씀하시면서 막 부들부들 떠시더라. 너무 열받아서.


도미노 피자 있지? 그것도 맨날 1.5km 이상 거리에 있는 지점에 방문픽업으로 주문해서 그걸 가지러 꼭 '출장'달고 다녀왔다는 거야. 어떤 날은 3시 30분에 카드 받아가지고 나가서 카드 반납 안 한 적도 있대. 무슨 말이겠냐고. 4시 30분 퇴근인데 언제 피자 픽업해서 학교 돌아와서 애들하고 회의했겠냐고. 그 사람이 퍽도 그랬겠다고. 피자 가지고 집으로 간 거 아니겠냐고. 누가 애들 피자 시키는 걸 픽업으로 주문해서 출장비까지 받아 처먹냐고 노발대발하셨어.



이해를 위해 제작한 생성형ai 이미지입니다.



출장비 얘기에 어질어질했는데, 그래도 말씀은 드려야 할 것 같아서 "교무부장님이 애들 불러서 확인하셨는데 피자 먹은 애가 한 명도 없대요." 했더니 "악!!! 그럴 줄 알았어 진짜!!!" 하면서 머리를 뜯으시더라고. 그동안 내가 그 인간 때문에 혼자 열받고 속 끓였던 건 계장님에 비하면 새발의 피였겠구나 싶더라.


정미언니도 수차례 신고하려고 했는데, 그때마다 결재라인에 있는 행정실장님이 마음에 걸렸대. 그리고 교감선생님과 교장선생님. 그냥 교사들을 믿고 품의 올리는 걸 다 결재해 주시는 것뿐인데, 그걸 악용해서 자기 잇속 채우는 육일공만 처벌받으면 되는 건데, 행정 감사 신고하면 결국 결재라인의 관리자들까지 다 피해를 볼 수 있으니까 말이야.


근데 교감선생님의 결론을 듣고 이건 정말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이젠 정말 자기가 나서야 될 때가 된 것 같다고 하셨어. 나는 정미언니의 등장에, 천군만마를 얻은 것 같았어.


희미한 연기 속 숨어있던 불씨를 발견한 느낌이었지. 불은 다시 타오를 준비를 마쳤어.

떳떳하지 못한 네 삶 자체가, 떳떳하고 성실하게 잘 살고 있는 우리 삶에 피해다 이것아. 우린 피해복구를 원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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