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2. ep 20. 육일공 7
지난밤에 샤워실에서 머리를 감으면서는 '내가 여길 계속 다니는 게 맞는 걸까' 생각했고, 침대에 모로 누워서는 '아니 교장씩이나 되어서는', '아니 교감선생님도 진짜', '아니 그 거지새끼 한 명 때문에 하' 하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어. 아침에 출근해서는 다시 리셋. "그래 잊자 잊어!" 하며 새날을 시작하기로 다짐했지.
근데 그날 오전에, 교감선생님이 찾아오셨어.
"이오엉 선생님. 어제 실장님 연수 들었지? 뭐라고 하셨어?"
출장 가시느라 교직원 회의에 참석 못하신 교감선생님께서 내게 물으셨고, 나는 대충 예산 사용 적합하게 하라는 연수를 하셨다고 대답했어. 나에게 교감선생님은 이미 '육일공 사건을 교장선생님께 전달하지 말라고 입막음했던' '육일공을 두려워하는' '어쩌면 육일공의 뒷배를 봐주고 있을지도 모르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경계가 막심했지. 근데 교감선생님이 커피 한 잔만 달라고 하시더니 상담실에 자리를 잡고 앉으셨어.
"육일공에 대해 아는 것 좀 전부 말해 줘."
어제 연수를 듣고 어떤 선생님께서 교장실에 찾아가서는 '뒤에서 도둑질하고 있는 사람은 따로 있는데 왜 행정실장님이고 교장선생님이고 그 사람 하나 불러서 잡지 않으시고 우리 모두를 도둑 취급하고 욕보이시느냐'라고 따졌대. 나도 사서쌤도 학부모회 담당 선생님도 아닌, 주미언니도 교무부장님도 희경언니도 정미언니도 아닌 제3의 인물이었어. 수면 아래 있던 누군가의 등장이, 바로 교장실로 달려간 핵폭탄급이었다니, 이렇게 짜릿할 수가!
그 말씀에 교장선생님도 교감선생님을 불러 상황을 자세히 파악해 보라고 오더를 내리신 거지. 그래서 교감선생님이 오신 거였어. "얼마 전에 교무부장님이랑 4부장님이 다 말씀드리지 않으셨어요?" 했더니 교무부장님이랑 4부장님은 그냥 뭐 육일공이 품의에서 삥땅 좀 치고 급식을 몰래 먹는 것 같다-는 식으로 두루뭉술하게 말씀하셨대. 하. 역시 그런 거였어. 교무부장님이고 4부장님이고 그 성정들이, 남의 밑바닥을 낱낱이 까발릴 만한 성정이 못 된다는 걸 왜 몰랐을까. 이제 어떡해. 내 모든 사악함을 담아, 최대한 충격적이고 자극적이게 모든 악행을 알려드리는 수밖에.
나는 사서쌤과 삼다수로 '육일공'의 존재를 확인한 날의 얘기부터 시작해서 카누 때문에 듣게 된 스타벅스와 배스킨라빈스 영수증 얘기, 나이키 샌들이나 에어프라이기, 롱롱돈까스, 조선호텔 떡갈비랑 수제약과 이야기까지 거침없이 이어갔어. 급식을 돈 안 내고 먹는 거부터 아이들에게 "꼬우면 니들도 돈 내고 먹어."라고 한 것, 맘에 드는 남은 반찬은 락앤락에 싸가기도 하는데, 그 락앤락마저 학급운영비로 산 것 같다는 얘기까지. 늘 거기가 하이라이트였어. 교감선생님도 다른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대~단하다 진짜. 대~단해!" 하며 박수를 치셨지. 교무부장님이 찾던 커피머신이 어딨는지, 그녀가 한 달에 한 번씩 시키는 도미노피자를 먹은 애들이 있는지 없는지, 그가 도미노피자를 픽업하기 위해 출장비를 얼마씩 받아가는지까지 낱낱이 고했어. 내 인생 가장 사악하고 치졸한 10분이었던 것 같은데, 내 인생 가장 속 시원한 10분이기도 했어.
교감선생님의 반응을 보니 이제 뭔가 일을 해주실 것 같긴 했어. 근데 이전에도 한 번 무마된 적이 있잖아. 교장선생님도 처벌 의지가 없으시고. 그래서 난 좀 위험하더라도 배팅하기로 했어. 교감선생님을 도발하기로 결심한 거야.
"저는 다 알고도 아무 조치 못 취한다고 하시는 줄 알고 좀 실망했어요. 그래서 정말, 그분 말씀처럼, 교감선생님이 그분 무서워하시나 보다 생각했어요."
교감선생님의 눈이 똥그래졌어.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걜 왜 무서워해?"
나는 육일공이 무용담처럼 하고 다닌 이야기를 전달했고, 교감선생님의 입에서는 "이 미친년이!" 하는 욕설이 튀어나왔어.
'됐다.'
난 그렇게 생각했어. '이제 됐다.'
교감선생님은 나에게 모든 이야기를 들으시고는 행정실장님과 계장님을 따로 또 부르셨대. 계장님은 그동안 육일공이 올린 모든 품의서를 인쇄해서 교육용이 아닌 것으로 추정되는 모든 항목에 형광펜을 쳐서 가져가셨고, 실장님은 육일공이 식품이 든 아이스박스나 삼다수, 피자 등을 가지고 주차장으로 가는 모습이 찍힌 CCTV 화면을 인쇄해 가셨대. CCTV 자료가 있었다니? 나도 계장님도 몰랐는데, 실장님은 말없이 다 준비하고 계셨던 거야. 어쩜 그런 조용한 영웅이 다 있냐고.
그렇게 모든 자료는 교장선생님께까지 전달됐고, 심각성을 느끼신 교장선생님은 교감선생님께 사안처리를 지휘하셨어. 교감선생님은 육일공을 불러 급식을 돈 안 내고 먹는지, 학생자치회 아이들 명목으로 산 도미노피자를 집에 가져간 적이 있는지, 학급 요리수업 명목으로 산 식품들을 가지고 정말 요리수업을 했는지 등등을 다 물어보셨다고 해. 육일공은 본인은 급식을 먹은 적이 없다, 도미노피자는 아이들이 남긴 걸 가지고 간 거다, 요리수업 하고 남은 식품을 가져간 거다, 등등의 변명을 늘어놓다가, 교감선생님이 "애들이 다 말하고 다녀 선생님."하고 한 마디 하시자 고개를 떨구고 아무 말을 못 했다고 해. 그간 자기 입으로 들어가고 자기 집으로 가져간 것들에 대해 사유서를 작성하고, 소형 가전들은 다시 학교에 반납하기로 하고, 재발방지 서약서를 써오라고 하는 말씀에, 알겠다고 죄송하다고 했다더라고.
그동안의 급식비도 환수하지 않으셨고, 그동안 해쳐먹은 식품들 잡동사니들 비용도 환수하지 않으셨어. 아쉽긴 했지만 그 비용을 하나하나 따지기가 애매하고, 그렇게 학교 예산에 추가금이 들어오면 정말 결재라인에 있는 분들이 감사에서 책임을 피하지 못하게 될 거라는 사실에 우리도 마음을 접었지. 하지만 우리로서는 그 돈의 총합보다 그녀의 '죄송합니다' 한 마디가 더 값비싸다고 생각해. 그녀가 잘못을 인정하고 죄송하다고 다시는 안 그러겠다고 말하는 게 우리에겐 중요했어. 그게 우리가 얻은 '정신적 피해'에 대한 '최고의 보상'이었어.
교감선생님이 며칠 후 나한테 따로 오셔서 말씀해 주신 게 있는데, 학기 끝나기 전에 2년 동안의 학생자치회 아이들 모두 모아서 도미노피자 파티를 해주라고 하셨다더라고. 물론 사비로. 육일공이 뻔뻔스럽게 "왜 제 돈으로 사요 그걸?" 하길래, "그동안 학교 돈으로 선생님 믿고 사준 피자가 몇 판인데, 나중에 학부모들이 알고 민원 넣고 감사 넣으면 뭐라고 할래? 그래도 한 번은 먹여야 할 거 아니야." 하셨대. 육일공은 알겠다고 했다더라고.
그 얘기를 듣는데 너무 웃음이 나오더라. 너무 웃기더라. 너무 기분 좋더라. 내가 도미노 피자를 먹는 것도 아닌데 내가 다 배부르더라. 진짜 인생은, 사필귀정이야 정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