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2. ep 21. 콤플렉스
학교폭력 상담은 늘 복잡해. 피해자도, 가해자도, 그 사이에서 중심 잡으려는 학교도 다 힘들어. 근데 그 사건은 시작부터 소문이 자자했어. 피해 학생 어머니가 교장실에 찾아가서 한 판 뒤집었다느니, 말로만 듣던 "내가 누군지 알아?!!"를 시전 했다느니 그런 이야기들. 저학년 학폭 사안이라 사안 자체의 심각성은 분명 크지 않았는데, 학부모 난이도가 높아 학교는 바짝 긴장하고 있었어. 그러던 중 나한테 피해학생 상담 의뢰가 온 거야. 나는 당연히 '오케이'. 그게 내 일이니까.
근데 바로 상담을 시작할 순 없었어. 아이 대신 어머니가 오셨거든. 곱게 '우리 아이 상담 부탁드립니다' 하고 동의서 쓰러 오신 거면 좋았으련만, 내 아들 상담 맡길 만한 상담자인지 아닌지 본인이 먼저 보겠다며 오신 것 같아. 아이 상담 전에 위클래스가 어떤지 보러 오시겠다는 말씀에, '정말 세심하시다'고 생각했던 내가 너무 나이브했지. 그건 내 '면접'이었어.
위클래스 문이 열리고 그 어머니가 들어오셨어.
딱 봐도 단아하고 우아했어. 고급스럽고 세련됐어. 흐트러짐 없는 장발 웨이브 머리에 브라운 계열 치마 정장을 차려입고, 팔에는 명품 가방. 진짜 높은 하이힐을 신으셨는데 난 그렇게 높은 하이힐이 그렇게 고급스러운 건 또 처음 봤네. 원래라면 신발을 벗고 들어오셔야 하는데, 그분께는 차마 신발을 벗으라는 말씀을 드릴 수가 없었어. 너무 그 하이힐까지가 패션의 완성인 것 같아서.
학부모 상담 수십 번 했지만 이렇게 '풀세팅'하고 오신 분은 없었어. 이러실 줄 알았으면 나도 좀 차려입고 올 걸. 나는 평소처럼 캐주얼한 니트에 청바지 차림이었어. 뒤늦은 후회를 마음속으로 삼키고 나는 인사를 드렸어.
"아이 상담을 맡게 될 전문상담교사 이오엉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인자하고 부드러운 미소, 하지만 내가 이 방의 주인이다- 라는 당당함을 담아 소개를 했어. 어머니는 고개를 살짝 끄덕하시더니,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셨어. 그리고 싱긋 웃으며 꺼내신 첫마디.
"조카 있으세요?"
어..? 조카요? 갑자기?
나는 갑자기 무방비하게 잽은 맞은 복서처럼 어버버거렸어.
"조카.. 요? 조카.. 있는데.. 그건 왜.. 물어보세요..?"
어머님이 또 나를 바라보며 싱긋 웃으시더라.
"아이는 없으실 것 같아서요."
아.
그 말이었구나.
"아.. 조카를 일찍 봐서 초등학생..입니다."
어안이 벙벙한 채로 대답했는데, 어머니는 내 대답을 바란 게 아니었어.
나이가 어려서 결혼해서 애가 있을 것 같지는 않고, 조카라도 있니? 조카가 초등학생이나 됐니?
애도 안 키워본 네가 초등학생 상담을 할 수나 있겠니?
그냥 그 말씀을 하고자 하셨던 거였어. 내 대답은 가뿐히 무시하고 다음 질문을 하셨거든.
"대학원은 어디 나오셨어요? 석사? 박사?"
석사니? 박사니? 이름도 모르는 데 나온 건 아니겠지?
아니 설마, 학사졸로 우리 아들을 상담한다는 건 아니겠지?
질문 두 개에 그 모든 뜻이 담겨 있었어. 두 번째 질문까지, 그녀가 나를 얼마나 무시하는지 단번에 알게 해 주더라.
근데 어쩜 좋아. 나는 진짜로 애 안 키워 봤고, 학사졸 전문상담교사잖아.
"아.. 가톨릭대 아동상담학과.. 에서 석사.. 재학 중입니다."
학사졸 콤플렉스를 치료하려 열심히 다니고 있는 대학원이, 그때만큼 창피할 때가 없더라.
아직도 석사졸이 아니라니. 아직도 재학 중이라니. '완전 무시당하겠다.'
그래서 괜히 묻지도 않으신 전공까지 보태 말했어.
그녀가 던진 두 마디에, 내가 보탠 생각까지. 나는 완전히 무너졌어. 내가 여기서 아무리 좋은 말을 해도, 이 어머니 눈에는 '어리고 경험 없는 애'로밖에 안 보이겠다는 생각이었어. 이미 게임은 끝났구나.
이후 아이 요즘 상태는 어떤지, 아이 상담을 어떻게 진행할 계획인지, 뭐 그런 걸 묻고 안내하고 했는데, 이미 멘탈은 붕괴된 후였어. 무슨 이야기를 더 했는지는 기억도 잘 안 나. 형식적인 인사를 나누고 어머니는 돌아가셨고, 며칠 후 담임선생님을 통해 전달받았어. "그 어머니, 학교 상담 안 하고 사설 상담기관에 보내겠다고 하시네요."
나는 '어머님 면접'에서 탈락한 거야.
그날까진 난 정말 그 어떤 시험과 면접에서도 탈락한 적이 없었는데 말야. 공식적인 면접도 아니지만, 나한테는 '생애 첫 탈락'이 크게 다가오더라. '아. 진짜 탈락했다.'
뭐, 사설기관 가시면 석사 박사 선생님들 많으시니까요. 상담 잘~ 받으세요.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는데도, 두고두고 억울하더라.
애 키워봐야만 애 상담할 수 있냐. 석사 박사 나와야만 애 상담할 수 있냐.
진짜 누구보다 애기 마음에 가장 가까이에 닿은 채로 버텨주며 상담할 수 있는데.
학력이 뭔데. 출산 경험이 뭔데. 그게 아이 마음을 읽는 능력이랑 무슨 상관인데.
그날 저녁 퇴근하고 거울 보는데, 문득 그 어머니 눈에 비친 내가 보이더라.
어리고, 작고, 별 볼 일 없어 보였어.
그 동네 학부모님들은 그렇게 나를, 작아지게 하더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