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의 대표적인 놀이
추석의 대표적인 놀이, 강강술래.
강강술래는 1966년 2월 15일 국가무형문화재(지정 당시의 명칭은 중요무형문화재) 제8호로 지정되었으며, 2009년도에는 유네스코UNESCO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현재는 진도와 해남에 각각 보존회가 있으며, 활발한 전승활동을 하고 있다. 그러나 과거의 전승 지역은 거의 호남 전역이었으며, 부분적이기는 하지만 호남 인근의 경상남도와 충청남도 일원에서도 즐겼던 춤.
강강술래의 유래는 확실하지 않다. 거의 모든 민속무용이나 놀이가 그렇듯이 정확한 기원이나 역사를 알기 어렵다. 다만 여러 기록이나 구전을 통해서 그 형성과 전승의 일말을 살필 수 있을 뿐이다. 강강술래의 기원에 대해크게 두 가지 설이 있는데, 하나는 마한시대의 세시풍속에서 기원했다는 설이고, 다른 하나는 이순신 장군이 명량해전의 승리를 위해서 창안했다는 설이다.
마한시대에는 농사가 시작되는 5월과 농사를 마친 10월에 귀신에게 제사를 모시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술을 마시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춤과 노래를 즐겼다고 한다. 이때 여러 사람이 서로 따르면서 손발을 맞춰 땅을 높고 낮게 밟으면서 춤을 추었는데 중국의 탁무鐸舞와 비슷하다고 하였다. 중국의 탁무가 악기를 가지고 노는 춤이라는 점에서 우리나라 농악의 기원을 탁무에서 찾기도 하지만, 여러 사람이 함께 추었던 군무라는 점과 또 풍년을 기원하던 마한시대의 세시풍속을 강강술래의 고대적 형태로 보기도 한다. 또 여기에 고대에 남녀가 서로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축제로서 부가적 성격을 가졌을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한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李舜臣)이 전술의 하나로 만들었다는 구전이 있는가 하면 민간어원적으로 해석해서 오랑캐 또는 왜구의 내침(來侵)과 관련시켜 설명하는 사람도 있다. 명량해전을 앞두고 이순신 장군이 우리의 군사가 많고 또 사기가 충천해 있다는 것을 왜군에게 과시하기 위해서 사람들을 동원해서 전라남도 진도를 비롯해서 목포, 해남, 강진 바닷가에서 집단적으로 강강술래를 추도록 했다는 전설이 전하고 있다. 여기에 착안하여 강강수월래强羌水越來, 즉 강한 오랑캐가 물을 건너온다는 후렴이 생겼다는 주장도 함께 한다. 그러나 이순신 장군은 강강술래 외에도 노적봉, 쌀뜨물, 쇠사슬 등을 화소話素로 하는 전쟁 전설에 등장하는 주인공이다. 이들은 모두 전설의 역사화를 통해서 민중이 전쟁영웅의 이미지를 서사적으로 형상화하는 전형적 방법으로 꼽힌다. 전해 오는 전설이나 풍속을 특정한 인물에 부회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들은 믿을 만한 근거가 없다.
강강술래는 전승 현장에 따라 강강수월래, 광광술래, 광광수월래로도 부르는데, 그 중 강강수월래라고 부르는 것을 취해서 강한 오랑캐가 물을 건너온다는 뜻으로 강강수월래(强羌水越來)라고 풀이하는 일도 있다. 하지만 이런 해석은 한문의 기본적인 문법마저도 어기는 견강부회에 불과하다. 강강월수래(强羌越水來)가 아닌 다음에는 믿을 바가 못 되는 것이다. 또는 고대의 국중대회나 마한의 농공시필기에 집단적으로 추었던 원시가무(原始歌舞, ballad dance)와 연계시키기도 하고, 생성과 번식을 위한 짝짓기의 구혼 행위로서 남녀가 공동으로 연희하는 공동의례의 굿판에서 추는 춤이라는 사람도 있다.
민속은 자연발생적이거나 또는 문화 전파에 의해 수용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정확한 연대기적 편년을 제시하기는 사실상 쉽지 않다. 뿐만 아니라 오랜 전승 과정을 겪는 사이, 기능이나 성격의 복합 또는 굴절이 일어나기 때문에 그 발생론적 기원을 제대로 파악하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강강술래를 즐기는 때는 주로 추석날 밤이었다. 그러나 특정되지는 않았으며, 적극적이고 즐거움이 많은 마을에서는 대보름, 유두, 백중과 같이 보름달이 뜨는 명절날 밤에도 여성들이 모여 강강술래를 즐겼다고 한다. 즉, 보름달이 뜬 밤, 밝은 달빛 아래에서 젊은 여성들이 즐기던 세시풍속의 하나였다. 예전에 여성들의 놀이가 많지 않았고, 또 평소에 젊은 여성들의 외부 출입이 자유롭지 못했던 사회적 상황에서 강강술래판은 일종의 해방 공간과 같았다. 노인들의 기억을 더듬어 보면 강강술래를 즐기고 나면 다음날 문지방을 넘기 어려울 정도로 다리가 붓고 목이 쉬어 말을 할 수 없을 정도 였다고 한다.
1960년대 후반 이농 현상이 가속화되면서 강강술래도 농촌에서 급속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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