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팔과 도깨비
작년 이맘때는 응답하라1988, 지금은 도깨비. 연말 티비엔의 드라마 라인업이 참 신기하다. 어쩜 이렇게 마침맞을까.
작년의 경우 나는 1989년생이니까 공감하기 어려울 것 같아 첫 회부터 챙겨보지는 않았었다. 그런데 내가 아니라 엄마와 아빠가 흥미를 갖고 보시더라. 주인공은 고딩이지만 아빠와 엄마가 결혼을 한 그런 날들이니까. 그래서 드라마 대사만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던 시대상, 내게는 낯설지만 부모님껜 익숙하고도 아련한 추억인 것들에 대해 엄마 아빠의 상세한 설명과 함께 웬일로 우리 가족이 모두 모여 앉아 드라마라는 것을 함께 봤다. 투병때문에 휴직한 아빠를 비롯해 백수가 된 나, 아빠 전담 간호사 동생, 그리고 엄마까지.
덕선이 어머니가 건강검진을 받고 암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눈물짓던 에피소드랑 덕선이 아버지의 명예퇴직편이 제일 고비였다. 전자는 아마 내 기억에 그건 나랑 동생만 봤던것 같은데... 드라마일뿐지만 그래도 건강하다는 결과가 얼마나 부러웠던지 모르겠다. 그리고 거진 30년을 한 직장에서 일하고선 정년 퇴직을 앞두고 휴직하게 된 우리 아빠 기분이 어땠을지. 자식들이 해주는 명패를 받는 동일 아저씨 마음같을까, 하는 그런 안타까움과 미안함 그리고 아빠에 대한 고마움.
그래도 '저거 기억나?' 또는 '에이 무슨 말도 안돼'라는 추임새들이 넘쳐나던 응팔 시청기. 녹음이라도 해둘걸 싶을 정도로 부모님의 추억을 공유할 수 있었던 뭉클하면서도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지난 겨울에 응팔을 보면서 가족애에 대해 생각하고, 암이라는 놈이 찾아왔지만 이렇게라도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음에 감사했다면, 올해는 도깨비. 죽지 못하는 도깨비와 저승사자가 나와서 자꾸 죽음을 얘기한다. 참 어쩜 이렇게 마침맞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승사자가 망자를 저승으로 보내는 모습을 이렇게 보게 될 줄이야. 이번엔 공유랑 이동욱 보느라 우리 집 여자 셋이서만 보고 있지만 저승이가 열심히 일하는 장면 나올때면 다같이 입이 조금 마르긴 한다. 저승이 만나면 저렇게 계단 걸어서 하늘로 올라갈 수 있겠지... 그런 생각. 티비엔 아무튼 나에게는 너무 절묘한 주제와 타이밍의 드라마를 보여주고 있어서 뜨끔한다.
그나저나 아빠 상태가 오늘 갑자기 너무 안좋아지셨다. 항암 중단한지는 사실 거의 3주 넘어가는데 갑자기 손발에 힘을 잘 못줘서 병원에 영양제 맞으러 가는데 너무 고생하셨다. 돌아오는 길에는 진통제도 받았나 의심스러울만큼의 섬망 증세... 여차저차 조금 안정 찾고 이제 주무시는데 내일은 어제 무슨 일 있었냐는듯이 그저께만 같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속상하고 신경쓰여서 미치겠지만 나는 얼른 페이퍼 끝내자. 조금만 더 버티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