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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PAULE Dec 20. 2016

스물 일곱의 퇴사 이야기

1년 6개월간의 구직 생활, 1년 6개월간의 회사 생활.

어느덧 대학원 2학기를 마무리하고 있고, 퇴사 2년차를 맞이했다 하하. 프로 직장인사이에서 1.5년간의 회사 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대학원에 가버린 스물 일곱살 여자의 이야기는 상당히 아마추어스러워 보인다. 그럼에도 이 글을 쓰는 것은 퇴사를 한창 고민하던 시절에 가장 도움이 되었던 것은 내 또래 퇴사자들의 블로그 글이었기 때문이다. 마의 3년을 겪기 전이고, 서른이 채 되지도 않은 사회 초년생의 퇴사와 대학원 진학(해외도 아니고 국내 사회과학계열 대학원...)에 관한 경험과 이러저러한 잡담은 어떤 이에게는 분명 작게나마 도움이 되리라. 깔끔하게 정리하고 싶지만 어느새 일 년이 넘어버렸기에 퇴사 이야기는 생각나는대로 뒤죽박죽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그래도 처음은 퇴사를 고한지 며칠 되지 않았던 2015년 10월 초에 남겼던 아래 일기로 시작해 본다.




"이번 겨울 계획을 논하기 전에 드릴 말씀이... 있어요. 저 퇴사하고 싶습니다."


분명히 쏟아질 비난이 두렵지만 담담했었는데, 저 말을 끝내고 나는 또 바보같이 울었다. 당혹스러움과 배신감에 얼굴이 빨개져서 최악의 퇴사라고 비난(절대 최악의 케이스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나는 일단 매우 후려쳐졌다)하는 팀장님 앞에서 나는 이를 악물고 울었다. 미리 대리님들께 말씀드렸을 때는 생각보다 나 자신이 너무 차분했어서, 이번에도 괜찮을거라 생각했는데. 이 정도면 참을만 하다고 여기며 살아왔었는데, 당신이 사실 나를 많이 힘들게 했나보다.


첫째로 이 회사가 맞지 않는 이유를 말씀 드리는 동안, 그녀는 나의 입사 면접을 보던 그 때와 같이 쉬지 않고 내 이야기에 질문을 했다. 그녀의 쉴 새 없는 반박과 변명은, 이 작은 팀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는 수습 떼는 순간 이미 훤했던 내겐 통할 리가 없었다. 네가 그렇게 생각했다면 오산이라는 그녀에게 나는 더는 할 말이 없었다. 이 조직의 수많은 장점을 맹점으로 만드는 단 하나의 치명적인 단점을 더는 견디고 싶지 않았다. 여기에선 5년이 지나도, 10년이 지나도 이 조직에서 내 목소리가 영원히 내 목소리일 수 없다. 간접적으로 꿈을 갖지 않기를 권하는 조직에서 더 이상의 시간을 버티는 게 무의미했다.


둘째로 퇴사 후의 계획을 말씀 드리는 동안, 그녀는 업체 미팅 시 가격을 네고하던 사람처럼 당당하게 모든 걸 다 아는 듯 말하며 내 미래의 값을 깎아내렸다. 미래를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아 돈을 버는 여정이라고 풀이한다면, 그녀 말처럼 내 미래는 사실 미래라고 부를 수도 없다. 그러나 미래라는 것을 언제나 내 안에서 나를 끌어당기는 것을 찾아가는 여정이라고 풀이한다면, 퇴사를 한 후의 내 계획은 비로소 미래 그 자체가 된다. '자존심만 세운 주제에 네가 나가서 그 일 해먹고 살 수 있겠어?' 항상 자신만만한 그녀가 가격을 무지막지하게 후려칠 때, 옆에 앉은 나는 감히 아무 말도 하지 못했었다. 그러나 꼴에 자존심은 있어서 내 미래를 후려치는 것은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대꾸했다. 하나, 우선 사회학은 인문학이 아니라 사회 과학이다. 당신의 전공처럼 말이다. 둘, 그래서 그렇게 걱정하시는 것보다 어찌 저찌 벌어 먹고 살 수 있는 길이 있다(배수진치고 우기기 시전). 셋, 회사 다닌다고 결혼하는 것도 아닌데(당신 모습을 보라!) 공부한다고 결혼 못하지 않는다(그리고 난 아직 결혼 생각이 없다!). 넷, 현재로서는 미래 배우자 후보로 유력한 남자친구가, 그리고 내 가족이 나서서 응원하는 길이다. 마지막, 당신도 봤겠지만 괴로워하던 내 양심에게(몸이나 머리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 양심에겐) 비로소 산소를 공급해줄 수 있는 그 것이란 말입니다.


그녀는 내게 마음 바뀔 일이 없냐고 물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리님들을 불러 오라고 하며 나를 내보냈고, 새로운 형태의 충원을 위해 현재 맡은 업무를 아주 세세하게 정리해 최대한 빠르게 보고하라고 했다. 새로운 형태의 충원이라는 것은 내 전임자 3명도 2년을 못 버티고 나갔다는 점에 기인한다. 내가 입사할 수 있었던 것은 전임자의 퇴사 때문이었는데 전임자는 1년 5개월을 버텼고, 그 전전임자는 6개월을 간신히 넘겼고, 그전전전임자는 1년 6개월을 버텼다고 한다. 내가 하던 업무는 상하반기로 나뉘어져서 일 년에 두 타임이 돌아갔다. 2014년 9월 입사해서 맞이한 그 해 겨울은 처음이니까 (매우 당혹스러우나) 참았고, 2015년 여름은 두 번째니까 혹시나 다를까 해서 참았지만 1년을 돌아보며 나는 이 일을 몇 번이고 더 치르고 버텨낼 이유를 찾지 못했다.


여튼 추석이 되기 전 나는 퇴사를 고했고, 당연히 전임자처럼 워드에 남기게 될 줄 알았던 인수인계서는 요란한 보고 지시 때문에 엑셀에 300개가 넘는 행(!)으로 정리됐다.(물론 추가 워드 자료 작성은 필요할 것이다.) 최대한 빨리 내놓으라고 으름장을 놓았던 그녀인데, 열흘이 지난 지금도 아직 퇴사일자나 인수인계 체계는 감감무소식이다. 월요일에도 얘기가 없으면 내가 먼저 최종 일자를 이를 예정이다. 주말에는 내 대학시절을 채워준 소중한 친구의 결혼식(내 생애 첫 친구 결혼이다!)에 가고, 오랜만에 만난 동기들과 시덥잖은 수다 좀 떨고, 기어코 불꽃놀이를 보고싶으시다는 남자친구의 계획에 응해주고, 텝스를 보고, 학업계획서를 마무리 할 계획이다. 좋으다. 주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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