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과 지옥을 오갔던 열흘
내가 그와 함께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일련의 서운하셨을법한 일들에 대해 울면서 사과를 드리고 왔던 날, 우리 사이는 매우 긍정적이었다.
이해할 수 없고 모멸스러웠지만 나는 그와 함께할 미래를 그리며 다시 생각해달라 부탁드리고 왔었다. 어머니와 이야기를 마치고, 둘만 남게 되어 꾹 참았던 눈물을 터뜨리며 엉엉 울던 내게 너무 고생했다고, 자기 부탁 들어줘서 고맙다고, 앞으로는 자기만 믿으라고 했었다. 그는 내 옆에서 어머니가 지적하시는 부분들에 대해 논리적으로 차분하게 설득했다. 돈 문제라든지, 집 문제, 2세 계획 등등. 처음에는 자기가 평일에 반차를 내고 가면 내가 자길 조종한다고 생각해서 어머니가 더 안 좋아하실수도 있다고 했던 사람이었다(여기서 얘가 진짜 바보라는 걸 알았어야 했는데). 왜 갑자기 결혼반대하시는 지, 뭐 땜에 화나신줄도 모르는데 사과를 나 혼자 드리라는 거냐고, 화를 낸 덕에 같이 가게 됐기에 그런 말을 했던 것 치고는 그가 어머니를 잘 설득했다고 생각했다. 나를 혼자 전장으로 보내려 한 그가 야속했던 것은 잊고 어느새 든든한 아군같이 느껴졌다.
서로 마음을 다독이기 위해 그가 먼저 살고 있던 신혼집으로 돌아가서도 아직도 나올 눈물이 있는 게 신기하다고 서러움에 눈물을 줄줄 흘렸다. 그는 언제나처럼 나를 꼭 안아주었고, 잠시 눈을 붙였고, 저녁으로 짜장면과 탕수육을 시켜먹었다. 평소와 다름없는 데이트같았다. 고난을 함께 겪어낸 동지가 되었다고 생각했는지 그의 미소는 믿음직스러웠고 사랑은 건실하게 느껴졌다. 꽉 잡은 손이 영원할 줄 알았다.
그 후로 부모님이 마음을 돌리실 수 있게 좀 더 시간을 드리고, 설득할 시간을 가져보자고 했다. 동의했다. 그런데 그는 상반기 결산이 있는 7월이 가장 바쁜 달인지라 내내 야근을 했다. 야근하고 집에 오면 쓰러져 자기 바쁜 사람을, 태어나서 처음 부모님과 대립해보는 사람을 재촉하고 싶지 않았다. 아침에 안부 카톡을 한번 나눴고, 퇴근길의 전화를 기다렸다. 그런 내게 그는 ‘내가 얼른 해결해야 하는데 정신이 없어서 미안하다’고 말까지 했었다. 그가 안쓰러워서 더 말을 아꼈다. 그러다 갑자기 불안해졌다. 그는 자기 체력이 바닥이라 판단할 여력이 없다고 했다.
‘네가 판단할 게 뭐가 있어? 너는 설득을 하는 거잖아. 다른 입장이 있어?...’
약속한 주말이 다가옴에 나는 처음으로 재촉했다. 아무것도 못하고 기다리는 심정이 너무 불안하다고. 이번 주말에는 부모님 찾아뵙고 얘기 좀 나누고 알려달라고 했다. 그는 알겠다고 했으나 연락이 없었다. 토요일 저녁에는 원래 그와 내가 함께 참석하려던 그의 친구들과의 청첩 모임이 예정되어 있었다. 상황이 이러니 갈 맛이 안나서 그 혼자 가기로 했었지만 나는 몹시 불안해졌다. 도대체 왜 내게 부모님 상황을 말해주지 않는건데. 모임 전에 잠깐 만나자고, 얼굴 보고 얘기 좀 하자고 했지만 그는 매우 피곤한 목소리로 자기에게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했다.
생각할 시간을 달라니. 그는 이 결혼을 재고하자고 했다. 너무 황망해서 전화기를 붙잡고 울고 화냈다. 어떻게 그렇게 결론이 날 수가 있냐고. 부탁 한번만 들어달라고 해서 사과 말씀도 드리고 왔고, 기다리라 하더니, 이제와서 네가 나보고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하냐고. 그는 자기가 결혼을 원하는 지 모르겠다고 이야기했다. 어머니만 그러신 게 아니라 아버지도 반대를 하신다고. 그리고 자기 자신이 부모님을 설득하지 못하는 건 자기가 결혼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자신이 결혼 생활에 잘 어울리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피곤하다고, 일이 힘들다고 해서 꾹 참고 믿었는데 혼자서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을 줄이야. 내게 미안해 하는 기색 없이 피로가 쌓인 날카로운 말투에 깊은 배신감을 느꼈다. 나는 벌벌 떨리는 목소리로 네가 얼마나 멍청이같은 말을 하고 있는지 네 친구들 만나서 이야기해보라고 했다. 그 친구들 중에 멀쩡한 놈들 있다면 너 욕해주겠지, 하며.
차에 가서 울다가, 무너질 것 같은 기분에 친구에게 전화해서 그의 소중한 주말을 눈물로 괴롭히다가, 그가 없는 신혼집에 갔다. 그가 첫 데이트때 건네준 종이 장미 꽃다발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의 첫 데이트는 부대 안, 첫 면회였다. 선물 준비했다고 해서 기대하게 해놓고 종이 꽃다발이라 민망하다고 건네줬다. 서른 송이도 넘는 분홍색 장미꽃 한 다발이었다. 여자친구에게 첫 선물로 꽃다발을 주고 싶었는데 겨울에 군인이 꽃을 어디서 구할 수도 없어서 만들었다고. 요즘 누가 이런거 좋아하겠냐고, 쓸데없는 노력한다고 주변에서 놀려대서, 내가 좋아할 지 확신은 못했지만 몇 날 며칠을 꼬박 꽃만 접었다고. 나는 그 선물을 엄청 좋아했다. 열 다섯도 아니고 스물 다섯에 받은 종이 장미 꽃다발을 동네방네 자랑했다. 카카오톡 프로필에도 올렸고, 페이스북에도 이거 보라며 자랑했다. 친구였던 시절에는 피곤하면 술자리에서 나가서 혼자 말도 없이 집에 가버리던 인간이라 이기적이라고 손가락질도 했었는데, 그랬던 인간이 남들한테 비웃음 사면서까지 날 위해 이걸 접고 앉아있다니. 그가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결혼 촬영때도 이 꽃다발을 가져가서 그의 손에 들려 사진도 찍었다. 그랬던 꽃다발. 너무나 원망스러워졌다. 그렇게 해놓고, 그때도 확신이 있어서 한 것 아니잖아.
빈 신혼집에서 울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밤 그에게서 연락이 왔다. 상처줘서 미안하다고, 다시 잘 설득해보겠다 했다. 네가 하는 아픈 말들에 흘렸던 모든 눈물에도 냉정하더니, 친구들이 무슨 말을 했기에 다시 의견을 번복하냐고 물었다.
‘퇴근하고 집에 왔는데 네가 있으면 어떨 것 같냐고 하더라고. 그건 좋을 것 같았어.’
생각보다 너무나 단순해서 어이없었지만 결혼생활에 있어 중요한 부분이었다. 우리는 지속적으로 부부이되 개인으로서의 자유와 독립된 시간의 보장에 대해 이야기해왔었다. 이렇게 퇴근해서 저녁 먹고, 야구 보고, 설거지하고, 치우고. 잠들기 전까지는 아마 우린 다른 공간에서 각자의 생활을 하고, 밤에는 다시 침실에서 만나겠지. 일련의 합의도 되어 있었고, 시뮬레이션도 수차례 했다. 나는 공부하다가 늦어지면 서재에서 잘 수도 있어. 내가 뒤늦게 침실에 들어가서 네가 깨는건 싫어, 잠깐 깨도 좋으니 들어와서 같이 자라는 등등. 그래서 더는 묻지 않았다. 그 질문 하나만으로도 마음이 돌아온다는 것에 충분했다. 그가 결혼생활 자체에 대한 불안은 해소했다고 생각했다. 알겠다고, 일요일에 부모님과 이야기를 더 해보겠다고 했다. 그렇게 반나절이 지나 만났을 때, 그는 울것 같은 표정으로 내게 헤어짐을 말하는 편지를 건넸다. 결혼식까지 한 달 남은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