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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PAULE Aug 04. 2016

죽음과 함께 잘도 사는 날들

암은 죽음이라는 놈을 제 지인이라고 소개했다.


아버지의 폐암 4기 진단을 들은 지 겨우 8개월. 그 사이에 얼마나 많이 상상했는지 모른다. 무슨 상상이냐면, 아버지가 세상에 더는 없는 순간. 당신을 보내는 식을 치러야 하는 그런 상상을 해 보았다. 구체적으로는, 그 순간이 온다면 나는 누구에게 연락을 해야 하는가, 누가 와 줄 것인가, 동창들을 통해 소식을 듣게 될텐데, 절교한 옛 친구도 올까. 온다면 나는 몇 년만에 어떻게 어정쩡하게 인사를 해야 할 것인가-와 같은 아주 쓸데없고 자잘한 상상의 나래를 펼쳐 보았다. 예끼, 아버지가 그래도 아직 열심히 투병중이신데 불순한 망상을 하다니! 아버지가 떠나는 상상을 하는 내가 불효녀인가? 나야말로 제일 알고 싶지 않은 순간이다. 그렇지만 암은 죽음이라는 놈을 제 지인이라고 내게 소개한다.

  
'아, 얘 언제 봤었지? 얘는 죽음이라고 해. 나랑은 좀 친해. 멀리 떨어져 있을 때도 많지만 하하. 너한테 일부러 소개하려던건 아닌데...그냥 우연히 이렇게 만나게 된 김에 통성명이나 하자구.'


사실 암의 진행 시기에 따라 다르지만 이미 여러 곳에 전이가 되어 있고 따라서 수술은 불가능한 4기를 선고받은 이상 필연적으로 끝을 생각해보게 되는  같다.  186cm 몸무게 90kg 육박하던 건장했던 아버지가 뼈와 가죽만 남은 육신으로 누워있는 모습을 보는 것에서부터 부작용이 심해지는 이상 항암 치료가 어떤 의미를 갖는  생각해보라는 사람들의 이야기, 아빠가 있는 병실  커튼 너머의 스물 여덟   또래 남자가  사이에 세상을 떠나는  까지... 나는 죽음이라는 것을 생각하지 않을  없다. 특히나 나는 쓸데없이 자기 방어 기제가 매우 높다. 상처받기 싫어서, 좌절하기 싫어서 무슨 일을 하든 미리 최악의 시나리오를 그려 보는  습관이 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누구보다 죽음이라는 놈의 신상을 털듯 그를 분석하고, 숨죽여 그의 일거수 일투족을 관찰하곤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런 내게 죽음에 대해 너무 쉽게 이야기한다. 그것도 내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특히 그 원인이 암이라면, 사람들은 참 전문가같이 군다. 할 말이 너무 많아. 그래 뭐, 그만큼 유병자도 많고, 암으로 죽는 사람들을 많이 보기 때문이겠지만.


종종 불가피하게 아버지의 투병 사실을 고해야 하는 때가 오는데, 나는 그럼 간략하게 아빠의 병세를 이야기한다. 무슨 암 몇 기시고요, 이러저러해요. 이 정도면 대강 알아 들었을테니 별 말 하지 말고 가만히 입을 다물어 달라고. 그러나 내 의도와 달리 어른들은 안됐다는 표정으로 이런 저런 진단을 내리고, 내게 조언을 한다. 대화를 많이 하고, 동영상도 찍고, 녹음도 하라는 등등. 아주 무난하고도 어른인 본인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조언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땡! 아니다. 이유는 간단하다. 누가 되었든 나와 내 아버지의 마지막 순간을 멋대로 상상해서 입에 올리지 않으면 좋겠다. 함께 살아가면서도 혹시 모를 이별을 스스로 준비하는 마음을 안다면, 그런 건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말이다. 녹음이니, 녹화니 하며 마지막이 아쉽지 않게 준비해두라는 소리는 오히려 상처를 헤집어 놓을 뿐이다. 말기 암 투병중인 가족에게는 더더군다나 그렇다.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이미 수 만번 울고, 밀어 내면서 결국엔 스스로 각인하고 있는 것들이니까.


그러니 혹여나 암 투병중인 환자의 가족에게 마지막에 대해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다면 그냥 가만히 있는 게 좋겠다. 우리는 이미 누구보다 죽음과 함께 잘 살고 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는 당신에게 드리는 개인적인 팁 tip>

암 투병중인 가족에게 함부로 마지막과 관련된 이야기는 하지 마세요. 구체적으로 사진, 동영상 등을 남겨놓으라는 이야기에서부터 뭉뚱그려서 그냥 잘 준비하라는 말까지. 그들은 이미 잘 알고 있어요. 확인사살은 필요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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