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을 돌아보며
아빠. 아빠가 없는 1년이 그새 지나버렸어. 어제 미리 아빠 있는 데 갔다왔는데 사실 난 또 눈물이 날뻔했지 뭐야. 나만 슬픈건 아니겠지만 엄마나 동생은 그렇지 않은것 같아서 혹시나 내 눈물로 울음바다 만들까봐 조마조마했잖아. 나는 아빠가 잘 아는 것처럼 센 척만 잘하나봐. 아빠가 지난 여름에 내 친구(아빠가 쓰는 표현이지 내 남자친구를 내 친구라고 불렀지)한테 그랬잖아. 얘가 보기에는 거칠어도 안그렇다구. 아빠는 나를 모르는 듯 잘 알고 있었나봐. 난 지금 쓰면서도 또 눈물이 난다 바보같이.
눈을 굳이 감지 않아도 그 날이 떠올라. 혼자 있을 시간이 많아서 그런가 사실 되게 자주 문득문득 떠올라. 잊어버릴것 같지만 사실 잊혀지지가 않아. 그리고 지금 이렇게만 써도 눈물이 나는데 아직도 그 순간을 글로 남길 자신이 없어. 언젠가는 조금 더 마음이 다져지면 그때는 기록할거야. 아빠의 마지막 순간을 잊지 않을테니까. 그래도 아빠... 나 그래도 잘했지? 아빠가 봤다면 잘했다고 할거라 생각해. 지금 이렇게 뒤늦게 혼자 (누구 표현대로) 질질 짜고 있지만 그때, 아빠가 가는 순간에 나까지 그랬어봐. 우리 집이 어땠겠어. 안그래? 그니까 봐주기야.
아홉수 신경쓰일까봐 작년에 아빠 한국 나이로 환갑 맞았다고 호들갑 떨었었는데 올해 들어서 황금개띠의 해라고 해서 좀 신경쓰여. 우리 집 개띠도 이제 만으로 환갑 되는건데... 자꾸 이른 나이에 갔다고 하는 사람들 짜증나는거 있지. 누가 모르나. 제일 억울한건 아빠일텐데 말이야. 아빠가 혀 차면서 비상금 모아뒀던 날들 아깝다고 할때 웃긴 했지만 참 서글펐어. 그래서 나는 아직 젊긴 하지만... 아빠가 이런 말 하면 싫어하겠지만... 난 너무 악착같이 모으기보다는 쓸건 쓰고 살려고 하하하하하. 동시에 건강도 챙기려고 하니까 걱정은 말구. 병원도 혼자 잘 다니고, 이젠 다이어트도 할거야. 운동 할게, 운동. 나도 이제 서른이라구. 책임지면서 살도록 할게.
그리고 울 아빠 소원이 내 결혼이 아니어서 정말 고마운거 있지. 나를 위해서 그런거라고 말하는 으른들도 있지만 솔직히 내 생각에 아빠는 정말로 내가 서둘러 결혼하길 바라진 않은 것 같아서 고마워. 아빠는 내가 어렸을때부터 하고싶은 걸 하고 살면 된다고 했으니까. 자매들 사이에 외동 아들이자 장남의 무게가 아빠의 평생을 짓눌렀던 걸 너무 늦게 알았어. 아빠도 사실은 그놈의 가부장제의 희생자였던 것을... 사실 남은 사람들은 암이라는 것도 아빠의 그런 스트레스에서 오지 않았나 생각해. 그래서 아빠가 나에게 굳이 장녀라는 이름을, 언니라는 의미를 부여하면서 키우지 않았던 것 같아. 그냥 나는 나대로 살라고 놔줘서 고마워 아빠. 엄마는 나를 아직도 언니, 언니 운운하면서 쫌 서운하게 하기도 하지만 어쩔수 없지. 나는 아직도 철든 듯 철없이 될대로 되라! 괜찮다! 하며 살고있어. 물론 돈벌이 어찌할지 가끔 생각하면 걱정이긴 하지만 내가 뭔들 못하겠어? 그리고 단 돈 백만원만 벌어도 도둑질 아니면 떳떳하니 된거라고 말해주던 아빠의 명언(그 때와 지금은 다르다고? 이미 늦었어)을 받들어서 걱정없이 하고픈 일 하면서 잘 살도록 할게. 그리고 말은 이리 해도 엄마에게, 똥개에게 필요할때는 힘이 되는 든든한 맏딸, 언니 역할은 할게. 걱정마셔. 원래 우리는 터치 안하는 부녀였잖아? 히히.
논문을 못 쓰고있는 이유로 아빠 핑계를 대면 안되겠지만 자꾸 생각이 나서 그런것도 있어. 논문과 취업 사이 갈팡질팡해했던 날들도 다... 이해해주기야. 아맞다, 나 논문 다 쓰지도 못했는데 지역가입자 의료보험비 너무 비싸다고 생각하면서 급 취업 준비하다가 스무살 시절 떠올랐었어. 내가 학교 적응 못하고 재수할까 고민하니까 아빠가 지금 학교에서도 1등 못하는데 재수해서 거기 대학 가봤자 뭐하냐고 했잖아. 결국 서류부터 탈락해서 논문에 정진할 수 있게 됐긴 한데 뭐. 아무튼 딱 헛물 켜던 내 모습에 아빠 말이 생각나더라.
아빠 나 꿈 크게 꿀거야. 내가 중학생때 영어 엄청 좋아하게 되면서 국제회의 동시통역사 하고싶다니까 왜 남의 말을 통역해주냐, 니가 직접 영어로 회의하면 된다고 그랬잖아 아빠가. 그 말이 그 중학생한테도 되게 충격적이었다 아빠. 그런데 왜 그런지 나는 모르겠고, 아빠도 좀 안타까울수는 있겠지만... 나는 어느 순간부터 자신감이 모자란 사람으로 살아왔어. 그치만 아빠는 날 그렇게 키우려고 하지 않았던 것 알아. 나 얼마 전에 새로운 꿈도 생겼어. 대통령은 안될것 같아서 그동안 계속 어디 장관 할거라 그랬잖아. 근데 그건 약간 운이 좋을 경우 도착할 최종 보스전이고, 그 전에 좀 더 현실적인...(?) 그런 꿈이 생겼어. 나 OECD 가려고. 딱히 뜻이 있다기보다는 구글맵으로 파리 구경하다가 발견했는데 갑자기 내가 왜 못가나 싶더라고? 자신감 충만하지? 그러니까 논문 열심히 잘 얼른 완성할게. 사실 어제 갈때는 까만 책 들고 갈 수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이번 아빠 생일에 가져가게 되어버렸다. 2학기 마무리하는 그 때, 그니까 벌써 재작년 겨울에 내가 페이퍼 쓰기 힘들다고 궁시렁궁시렁 아빠한테 어리광부리니까 아빠가 웃으면서 그랬지. 페이퍼 쓰기 어렵다고. 아마 아빠가 지금도 있었다면 논문 쓰기 어렵다고 피식 또 웃었겠지 아빠는. 아무튼 이번 아빠 생일엔 진짜 레알 꼭!!! 가져갈게요. 그니까 기다려주기야 알았지?
아빠. 보고싶다. 우리 그렇게 엄청 친하고 친구같은 부녀지간은 아니었는데. 아빠에게 화나고, 서운했던적도 너무 많았는데. 엄마한테 아빠 아프던 모습이 마지막이래도 그 시절 자꾸 떠올리면 안된다고, 아빠 건강하던 시절 떠올리라고 말한 것도 나고, 너무 미화하지 말라구 입 삐죽거린것도 난데 내가 자꾸 그러고 있다. 그래서 이렇게 구구절절 한번 편지를 써봤어. 처음 커서 대고 쓰기 시작할때부터 눈물이 그렁그렁했는데 그냥 내 근황토크 하다 보니까 눈물 쏙 들어갔다.
아빠. 아빠는 정말 알고 떠난걸까? 타이밍의 귀재였어. 아빠다웠어. 어떻게 딱 엄마랑 내가 아빠 누울 자리 알아보고(나중에 엄마도 같이 들어갈거니까 흠) 큰 돈 뽝 쓰고 온날, 온 가족들이 다 모여있던 그 순간 그렇게 헤어질 수 있었을까. 아빠 가기 전날 밤에 내 친구가 집에 왔다가 아빠랑 인사도 했잖아. 사실 그 순간 이후 아빠가 가기 전에 눈을 맞춰보지 못했던 것 같아서... 내 친구가 밤에 들러서 작은 불빛에 의지해서 아빠와 함께 인사를 나눴던 그 순간이 나는 참 고마워. 돌아보면 어찌 그렇게 하나하나, 다 준비가 되고 인사를 하고 갔는지 모르겠지만 아빠는 정말 아빠답게 책임을 다하고 간 것 같아. 나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해. 비록 그렇게 미리 알려달라던 공인인증서 비밀번호를 안 알려줘서... 전화번호를 회사 번호로 해놔서 우리가 그 이후로 쬐끔 당황해하긴 했지만. 아빠가 뭐 그렇게 알려주고 싶었겠어? 이해할게 그건.
아빠. 내 앞날이 아무튼 어찌 펼쳐질 지 모르겠지만... 얼마 전에도 친구랑 대판 싸우고 그랬지만... 자신감 갖고 잘 살게. 나 아빠 딸이야. 질질 안짜고 하고싶은 것 하고 내 삶만큼은 책임지면서 잘 살게. 고마워 아빠. 다음에 또 편지할게.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