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폴 사르트르
“주의는 절대로 명령을 하지 않아. 절대로, 아무 말도 안 하지. 필요한지 안 한 지는 우리들이 결정하는 걸세”
한 달 전쯤 반려견을 품에서 떠나보냈다. 떠나보내기 이주 전, 문제없다고 생각했던 반려견의 건강이 갑자기 좋지 않아 큰 걱정 없이 병원에 데리고 갔다가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믿기지 않았고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완치라는 게 없다는 신장병의 치료를 감당하기엔 현실적으로 힘든 일이었다. 치료는 연명의 의미일 뿐이니 그냥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소중히 보내는 걸 조심스럽게 권하는 수의사의 말이 위로로 느껴졌다.
죄책감이 들었다. 최선을 다해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을 늘려볼 생각보다 앞 선 때가 왔구나 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저 벌써 그럴 때가 왔구나 하고 얼마 안 남았을 이별을 받아들인 생각 때문이었다. 작고 작은 아픈 이 아이에게 내가 해줄 수 있었던 일은 겨우 주사기로 죽을 만들어 먹이고 물을 주는 것뿐이었다.
내가 그렇게 받아들여서였을까, 반려견은 곡기를 끊어버렸다. 억지로 좀 먹이려고 해도 고집스럽게 다 뱉어버렸다. 미웠다. 주는 족족 음식물을 뱉어내는 반려견을 붙잡고 너 정말 죽으려고 그러는 거냐며 이렇게 진짜 날 떠날 거냐며 엉엉 울어 댔다.
죄책감이 들었다. 자연의 이치라며 받아들여야지 어쩌겠냐며 어른스러운 척, 강인하고 이성적인 척 나 자신을 속인 댓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입 밖으로 대놓고 꺼내지 않고 반려견에게 티 내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이미 이 아이는 모든 걸 다 알고 있는 것처럼 굴었다.
그렇게 반려견은 이주정도 길지 않고 짧게 아프다가 제발 혼자 쓸쓸히 가지 말아 달라는 소원마저 들어주며 품 안에서 떠나갔다.
참 많이 후회했다. 연명의 의미 밖에 안된다 하더라도 태연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치료를 시도해 보았더라면 더 괜찮았을까 하는 후회들이 밀려왔다. 내가 물질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여유로웠다면 그냥 이렇게 떠나보냈을까, 내가 한 선택이 맞았을까. 내가 한 결정이 맞는 거였을까. 머릿속으로 여러 가지 선택을 해보고 결국엔 알 수 없을 결과마저 상상해 보며 자꾸만 후회했다. 전부 내 부족 때문이라고 느껴지기도 했다.
프랑수아를 제 손으로 직접 죽여야 했던 앙리, 그 모습을 지켜보기만 했어야 했던 뤼시에게서 내 모습을 조금 겹쳐보았다.
스스로 결정한 선택에 후회 없는 결론이란 없다. 핑계도 없다. 상황은 이치는 진리는 어느 말도 하지 않는다. 그런 건 그냥 존재하는 거고 결국 선택은 스스로 하는 거라는 걸 안다. 그 결과가 어떻던 잘 견뎌내고 받아들이는 태도가 중요한 것도 안다.
그런데 아는 것과 하는 것은 너무 큰 차이임을 또 한 번 느꼈다. 그 과정은 너무나도 괴롭고 힘겨운 과정이다. 내 선택으로 만들어진, 아물기에 시간이 꽤 걸릴 듯한 깊은 상처에 어떤 연고를 어떻게 발라야 하는지 스스로 임상실험을 하는 과정인 듯하다. 살아내는 건 참으로 어려운 일인 듯하다. 책임이라는 건 참으로 어려운 마음인 듯하다.
지난 14년 동안 내 인생을 함께 해준 고마운 아이야. 덕분에 울고 웃고 추억도 위로도 사랑도 얻고, 인생을, 책임을 배웠다.
다음에 또 만나면, 그땐 후회보다 더 많은 사랑을 주고 싶다. 그립고 사랑한다 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