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뮈엘 베케트
“문제는 지금 이 자리에서 우리가 뭘 해야 하는가를 따져 보는 거란 말이다. 우린 다행히도 그걸 알고 있거든. 이 모든 혼돈 속에서도 단 하나 확실한 게 있지. 그건 고도가 오기를 우린 기다리고 있다는 거야.” – 137p
조금 이상하게 들릴지도 우습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어릴 적엔, 그러니까 10대, 20대 초까지도 내게 30대가 올까 하는 생각을 문득문득 했었다. 30살에도 내가 세상에 존재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낮 부끄러운 생각이지만 그땐 진지했었다. 기대되지 않아서 였을까. 단순히 기대하지 않아서 라기엔 좀 더 깊고 어둡고 완벽하게 설명하기엔 어려운 그런 이유가 있었던 것 같다. 알 수 없고 끝이 없다고 느껴졌던 우울의 바다에 잠수해 있느라 상상력이 넘치는 나 였지만 왠지 30살 이후의 내 인생은 짐작도 상상도 되지 않았었다.
20대 후반,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기점으로 좀 더 건강한 에너지로 하루하루를 채우고 느끼려 노력하며 회복탄력성이 조금은 좋아진, 어쩌다 서른이 되어버린 나는 미래에 어느 앞날에 내가 세상에 여전히 존재하고 있을까 같은 생각이 아닌, 나는 과연 멋지게 잘 살고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걸음마를 배워 막 한 발자국을 내딛게 된 듯, 이제서야 인생을 제대로 살줄 알게 된 듯 느껴진다. 마치 “온통 시커멓고 뼈만 앙상했던” 가지들이 어제와는 다르게 “잎으로 덮여” 있는 것처럼.
이상하게도 잘 살고 싶어지니, 더 혼돈 속으로 빠지는 것 같아졌다. 걱정과 생각에 빠져 허우적대던 버릇은 쉽게 고쳐지지 않는지, 저 조언이 맞을까 이 조언이 맞을까. 기회는 언제 찾아올지 모르니, 우선은 잡아두는 게 맞는 것일까. 놓친다면 결국엔 후회하게 될까. 내가 너무 스스로를 과대평가하는 것일까. 아님 과소평가하는 것일까. 나만의 착각일까. 나만의 고집일까 나만 이런 고민에 빠져 있는 것일까. 이게 진짜 내가 원하는 것일까. 원하는 게 맞을까. 꼬리 물기를 끊임없이 하다가 갑자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웬 과한 걱정들이람. 웬 자업자득 스트레스람.’
결국엔 내가 가겠다고 결심한 길이 있으면서 말이다. 기다리는 고도가 있으면서, 그 모습이 정확히 어떤 모습인지 구체화하는 건 나만 할 수 있는 내 몫인 걸 알고 있으면서, 고도를 위해 뭘 하기로 했는지 스스로 몇 번이고 다짐하고 그 다짐을 가꾸고 있으면서 말이다.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마치 블라디미르는 이성이 되어, 에스트라공은 감성이 되어 끝없는 대화를 하고 있는 듯 느껴졌다. 그들은 한마음으로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며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 없는 고도, 정의할 수 없으며 잘 모르지만 언젠가 찾아와주길 바라는 고도, 즉 미래를 기다린다. 예측할 수 없는 세월, 상황, 사건, 사고, 사람들 등 두들겨 맞고 배고파하고 인생에서 끊임없이 마주치는 포조와 럭키를 맞이하면서.
고도를 기다리는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포조와 럭키를 마주쳤던 그날이 어제와 같지만 오랜 세월이 지나버리고 만 건지, 어제와는 다른 포조와 럭키와 마주친 건지, 여전히 언제 올지 모르는 고도를 기다려야 한다는 다를 게 하나 없는 상황이지만, 자세히 보면 가만히 들여다보면 나무도 경치도, 달라졌다는 걸 알 수 있다.
블라디미르 말처럼 그 자리에서 뭘 해야 하는지 뭘 하고 있는지 정확히 알고서 기다리는 것은 마냥 기다리기만 하고 있는 것과 아주 큰 차이가 있는 듯하다.
여전히 현생은 힘겹게 느껴지고 어렵고 상처받을 일이 넘칠 것이다. 내가 혼돈 속에 빠져있더라도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고 계속 흐를 것이다. 그렇더라도, 지금 존재하는 이 자리에서, 지겹도록 특별할리 없는 달라질 리 없는 똑같은 하루하루 살더라도, 이성과 감성을 잘 조절해가며 해야 하는 걸 미루지 않고 한다면. 뭘 할 수 있는지를 따져 하나씩이라도 하다 보면. 그 하루하루가 바로 언젠가 좀 더 나은, 멋진 미래가 될, 기다리던 고도를 맞이하려 준비하는 하루하루이게 될 것일 테니까. 그러다 가만히 둘러보면 똑같지만 분명 다른 하루라는 걸 깨닫게 될테니까.
그래서 또 해본다. 한탄도 해보고 하소연도 하다가. 그냥 지내보기도 하고. 넘어져 누워있다가 누운 채로 있기도 하고, 다시 일어나 그만 둘까 하다가, 그만두는 걸 미뤄보고, 화도 냈다가 웃기도 하며 또다시 시작하기로 해본다. 40 대 50대 60대 고도를 위해 다짐하며 또 하루하루를 가꿔 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