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같은 경쟁 사회에서 타인을 본받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 신들은 훌륭한 조상, 좋은 부모와 착한 누이, 훌륭한 스승들, 착한 식솔과 친척, 친구들 거의 모두를 내게 주셨고, 심지어 내 성품이 이들과 불화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이들의 감정을 전혀 상하지 않도록 하셨네. 내가 수치를 당할 일들이 생기지 않은 것도 신들의 은혜였네.” - 1권 본보기 中
경쟁 사회, 물질주의 사회, 능력주의 사회, 개인주의 사회인 현재 우리 사회는 하루하루 잘 살아내는 게 각박하고 삭막하게 느껴진다. 치열해야 함과 박탈감에서 오는 허무감을 하루에도 여러 번 오가며 느끼게 되는 환경은 자연스레 불안감이나 분노들로 바뀌어 타인에 대한 불신과 혐오를 불러오는 듯하다.
그래서일까, 사람들이 아이나 노인과 같은 약자는 물론 타인에 대한 존중이나 연민, 배려 등 점점 따뜻함을 잃어가고 있는 것만 같다.
"내가 이만큼 이렇게 해내고 살아오는데 사회가, 사람들이 나한테 해준 게 무엇이 있나? 다 나 혼자만의 피, 땀, 눈물이 아닌가? 다 내 능력 아닌가?"
어쩌면 가지고 있는 것들을, 누리고 있는 것들을 보다 갖고 있지 않은 부족함을 좇느라 감사함을 느껴보지 못해서 그저 당연한 전부 나만의 능력, 나만의 권리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비행기에서 40대 남성이 갓 돌 지난 아기가 울자 아기의 부모에게 폭력적인 언행으로 난동을 부렸다는 기사를 보고 마음이 좋지 않았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난동을 부린 남성은 아마 몰랐을 테지만, 그래서 그랬을 테지만, 분명 그가 아기였을 때, 아이였을 때, 청소년을 지나 성인이 되기까지 많은 어른들의 보살핌을 간접적으로 직접적으로 받아왔을 것이다. 이러한 점은 저 남성뿐만이 아니다. 우리 전부, 모두 해당된다.
우리는 자라고 크면서 사회로부터, 어른들로 부터, 사람들로 부터 간접적이고 직접적으로 보살핌을 받아왔다. 그렇게 우리는 무사히 어른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법과 규칙이 있는 사회와, 법과 규칙을 지키는 사람들, 배려와 인정이 넘치는 사람들, 이웃들로부터 말이다.
내가 아이였을 때를 생각하며, 내 아이라고 생각하며, 내가 될 노인이라고 생각하며, 내 부모님이라고 생각하며, 내 형제, 친구라고 생각하면 불편하고 걸리적거리는 존재가 아니라, 그냥 같이 어울려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일 뿐 아니겠는가.
마르쿠스는 1권 본보기에서 타인 덕택에 얻을 수 있었던 점들을 나열한다. 타인들과 함께 지내고 부딪히며 그들을 통해 배우고 깨닫고 반성함과 동시에 감사함을 표현한다.
타인에게서 장점이나 본보기를 찾을 수 있다는 점은 쉽지 않은 일이다. 스스로 반성하거나 되돌아보는 것은 이미 고착된 시선과 관념을 바꾸기 위해 엄청난 에너지를 써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인의 장점을 보고 본받으려 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나 자신을 위해서 이다.
타인에게서 장점을 보려 하면 내게 있는 단점을 찾게 되고 반성하게 되거나, 그를 통해 자연스럽게 얻어진 내 장점들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럼 아마 그들이 덜 혐오적이게 느껴질 것이다. 연민이 느껴질 것이다. 타인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사람을 이해하기 시작하면 점차 세상살이가 이해되고 힘겹게만 느껴지진 않을 것이다. 그렇게 지내다 보면 내가 이해한 만큼 타인을 배려하게 되고 그만큼 타인의 배려들이 하나하나 느껴질 것이다. 생각보다 삶은 혼자만의 힘으로 능력으로 살 수 없고 이루어 낼 수 없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세상이 날 힘들게 하는 게 아니고 내가 세상을 힘들게 살았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감사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나 자신이 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는 걸 느끼며 나 자신이 더 좋아지게 될 것이다.
그 시작은 부모님이다. 부모님을 떠올리며 부모님께 받은 내 장점은 무엇인지 깨닫는 것이다.
오늘과 같은 사회에서 타인을 본받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나를 위해서 내 인생을 위해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