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철학으로 돌아가야 할까?
“철학은 우리의 얼이 욕되거나 훼손되지 못하게 막아주고, 또한 우리가 쾌락과 고통을 관리하며 목적 없이 행동하지 않게 하고, 속이거나 가장하지도 않으며 타인이 무엇을 하든 말든 욕망을 비우게 하고, 심지어 우연이나 운수도 동일한 근본에서 온 것으로 받아들이게 하고, 죽음은 각 생명체를 구성한 다양한 요소들의 결합이 풀어지는 것에 불과하다 여기며 그 죽음을 즐겁게 기다리게 합니다.” - 2권 철학훈련(관찰력) 中
이과에 공대를 나와 직업이 개발자라고하면 왠지 문과, 철학, 인문과 거리가멀고 숫자와 데이터, 수치를 좋아하며 딱 맞아 떨어지는 정답과 눈에 보이는 결론을 좋아할 것같지만, 나같은 경우는 전혀 아니다.
나도 내가 어쩌다 이과에 공대를 나와 개발자를 하고 있는지 신기할 정도로 숫자보는걸 머리아파하고 딱 떨어져 고정되어있는 답을 내리는 행위에 즐거움을 잘 느끼지 못하는 편이다.
그렇다고 아예 문과감성을 갖고 있는것도 아예 이과감성을 갖고 있는것도 아닌게 뭐랄까 그 사이 어딘가에서 왔다갔다 유영하고 있는듯 하다. 아무래도 책과 철학을 사랑하던 엄마와 컴퓨터와 기술을 좋아하던 아빠 사이에 태어나고 자라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후라이드반 양념반 같은 존재가 된게 아닌가 싶다.
빠르게 발전하는 기술과 트렌드 속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의 필수역량에 인문학적 사고나 소통능력이 추구되고 있다. 아마도 인문학의 중요성이 커지는 이유는, 그 기술들과 트렌드를 따라가는 이들이 결국 사람이라서가 아닐까 싶다. 가만보면 이렇게 애매한 반반 포지션에 있는것도. 장점이 되기도 하는구나 안심이다.
좋아하던 독서를 중학교에 들어서면서 잊고 살다가 20대 초반 다시 시작하면서 소설을 많이 찾아 읽었었다.
지금도 여전히 좋아하는 작가 들 김애란, 구병모, 최진영, 최은영 작가 등등 작품 하나를 읽으면 주구장창 그 작가의 여러 작품의 책을 사들여 읽어댔다. 문장 하나하나 내 마음을 대변하기도, 이해되기도, 설레기도, 위로도 많이 받으며 잊고있었던 독서의 즐거움을 되찾을수 있었고 그렇게 즐거움의 장르를 넓혔다. 에세이로, 고전으로, 인문으로.
점점 인문, 철학을 선호하는 비중이 커지면서 명확하게 설명할 순 없지만, 내 내면에 무언가 하나 둘씩 천천히 변화하며 단단해지고 견고해지는게 느껴졌다. 어려운 상황이나 문제에 닥쳤을때 나의 태도나 관점 마음가짐이 전보다 덜 부정적이게, 취약하고 시도떼도 없이 찾아왔던 불안과 긴장이 덜 크게 다가왔다.
나 스스로를 이해하게 되는만큼 남을 이해할수 있는 범위가 넓어졌다. 내가 진짜 추구하는게 무엇인지 내가 진짜 좋아하는게 무엇인지 내가 진짜 원하는게 무엇인지 고뇌하게 되는 만큼 나와 남를 분리해서 볼수 있게 되었다. 오로지 나를 바라볼수있는 법을 찾게되었다. 나는 여전히 참 부족하고 어리석지만 그래도 과거 살아지는대로 살았던 나보단 꽤나 괜찮아졌다고 느낀다. 이런 힘이 철학을 통해 길러졌다고 생각한다.
철학이라는건 눈에 보이지 않고 증명하기 어려운 것들이라 허황된다고 느껴질수 있다. 그런데 철학적 사고를 추구하다보면 이해할 수 없었던 것들이 이해되는 순간이 잦아진다. 그런 순간이 찾아오는 이유는 그 만큼 알게 되어서라고 나는 생각한다. 아는 만큼 보인다. 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듯 하다.
왜 우리는 철학으로 돌아가야 할까
거짓말같겠지만, 정말 세상살이가 좀 더 나아진다. 진짜 중요한게 무엇인지, 진짜로 봐야하는게 무엇인지.
어쩜 같은 눈을 가지고도 보이는게 느껴지는게 달라진다.
현실보다 가상의 세상이, 나보다 남을 보는게 더 쉬웠던 세상에서 나를 중심으로 세상을 직시하며 자기자신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철학을 곁에 두어야 하는게 아닐까싶다.
그렇게 나는 삶이 힘들고 불안이 찾아오고 울적해질때 철학책을 집어든다. 한권에 한 줄이라도 얻으면 참으로 다행이다. 그 속에서 힘을 얻으면 참으로 다행이다 라는 생각을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