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육각형] Ep2. 회사에는 언니, 오빠는 없어.

세상에서 가장 작은 육각형은 점.

by ephemeral

회사라는 전쟁터 같은 공간에서

업무스타일과 마음 맞는 동료를 찾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년을 함께 일한 동료가 생겼다.


커리어 패스도, 사고방식도 너무 달랐지만

그 차이는 오히려 시야를 넓혀줬고

업무 판단에 도움이 됐다.

우리는 잘 맞았고, 그 덕에 성과도 나쁘지 않았다.


회사라는 공간에서

30대가 넘어 사적으로 가까운 친구를 얻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친자매처럼 지내던 우리는

회사에서도 조금은 편해졌던 것 같다.

업무 시간 외에도 연락하며

업무 이야기를 놓고 열띤 토론을 하기도 했고,

선을 넘는 농담과 삶의 얘기도 많이 하곤 했다.


내가 속한 조직은

대기업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었지만

유난히 수평적인 문화를 자랑했다.

언니, 오빠, 동생이라는 호칭이 어색하지 않았고,

팀장들끼리도 자연스럽게 그렇게 불렀다.

우리 팀장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녀에게는 특히 각별한 남자 동료가 있었다.

그녀는 그를 ‘엉아’라고 불렀다.

회의 중에도, 메신저에서도, 복도에서도.

“엉아한테 물어봐.”

“엉아가 이건 더 잘 알아.”

“엉아가 만든 자료야. 너무 잘 만들지 않았어?”


그녀가 이해하지 못하고 해결하지 못한 업무는

대개 다른 팀 소속의 ‘엉아’에게 흘러갔다.


리더의 역할은 그를 찬양하는 것으로 귀결되었고,

실행과 책임은 우리 몫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팀원들끼리 유독 단단해 보였는지,

나는 면담이라는 이름의 호출을 받았다.


관리자도 아니고 실무자도 아닌

애매한 포지션의 나에게

‘선임’의 역할을 하라며

그녀의 16년 회사 생활에 대한 강의가 시작됐다.


그리고 갑자기 화살은

나와 동료의 관계와 호칭에 향했다.

“회사에서는 직급이 있지.

언니, 오빠, 동생은 없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얼굴이 뜨거워졌다.

왜 그랬을까.


회사생활 9년차,

신입사원도 들어본적 없는 지적질에 대한

수치심이었을까?

아니면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했다는 비난 앞에서

느낀 나에 대한 실망감이었을까?

출처 : 카카오톡 이모티콘 퇴사꿈나무


하지만,

무엇보다도 남들과 사담하고 친목질하는 것이

회사의 첫 번째 목적이요, 최대 행복인

그녀가 나에게 그런말을 한다는 것에 대한 분노가

가장 컸던 것 같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날 이후

회사에는 언니, 오빠, 동생이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대신 ‘엉아’는 존재했다.


오늘도 그녀는 엉아를 불러 점심을 먹고,

메신저 창에서 웃음 이모티콘을 보낸다.


공적인 조직에서

사적인 관계를 가장 경계하라던 사람이

사적인 관계를 가장 적극적으로 누리고 있었다.


회사에는 언니도 오빠도 없다고 했다.

아마

엉아는 예외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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