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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든네 번째

연필

by 재인


바스스 흩날리는 날들에서 하나를 골라 거기에 편지를 써 수신을 누구로 할까 고민했어 나의 편지는 누가 받게 될까 나는 골똘히 생각하면서 연필을 꺼내 칼로 삭삭 깎았어 하나둘씩 연필의 나무 잎들이 떨어지고 나는 그것들을 어디로 날아가지 못하게 손으로 쓸어모았어 이제는 연필의 마음을 다듬었어 좀 더 거친 소리가 났지 나는 마음을 뾰족하고 날카롭게 벼렸지 그가 지나갈 종이의 결을 파고들도록 그렇게 파고 들어서 각인되길 바래서 나의 편지는 누구에게 갈까 나는 나의 하늘색 셔츠를 좋아했지 청량한 여름의 하늘이 아니라 추운 겨울의 입김이 서린 하늘색이었어 나는 그것을 한여름에 입고 너의 앞에 있었지 그때 차가운 바람이 불었을까 그래 나는 네게 찬서리를 보낸 적이 없지 비가 하늘에 내렸을 때 물색으로 변하는 내 몸을 보면서 너를 싣고 너른 바다로 나가는 것도 괜찮을 것이라 생각했어 나는 하늘과 바다에서 너를 품고 그대로 머무르겠지 그래 내 편지의 수신인은 너로 해야겠어 연필이 눌러쓴 흔적들을 쓰다듬을 너의 손길을 생각하며 나는 내 마음을 깎아내고 있어 차라리 뭉뚝했더라면 좋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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