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화양연화>에서 모완(양조위)은 리첸(장만옥)을 정말 사랑했다. 그 사랑은 리첸도 마찬가지였다.
서로의 배우자끼리 바람이 났다는 것을 선물을 통해 알게 된 두 사람은 배우자의 행동을 이해하려고 만나다가 그들처럼 서로를 사랑하게 된다. 배우자들처럼 안 되고자 했는데 사랑에 빠지는 게 그렇게 어려운 것은 아니었다.
사랑을 한다는 건 숨 쉬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러웠다. 국숫집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는 만큼, 오르락내리락하며 서로를 스치는 순간들만큼 사랑은 가깝고 아슬아슬하며 서로의 숨이 느껴질 것처럼 밀접했다. 사랑에 빠지기까지 어떻게 했을까, 하는,서로의 배우자들을 따라가는 행위들 속에서
서로에 대한 호감과 사랑이 싹트지 않는 건 오히려 너무나 이상한 일이었다.
하지만 모완과 리첸의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모완은 캄보디아의 숲으로 가서 나무에 구멍을 파고 거기에 리첸과 오갔던 감정을 속삭인다. 비밀.
<화양연화>에서의 비밀처럼 나무에 구멍을 파고 비밀을 속삭일 수는 없지만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를 외치는 것처럼 초록의 숲에서 어떤 비밀을 외치고 싶을 때가 있다. <화양연화>에서처럼 개인의 비밀이든 임금님의 귀처럼 타인의 비밀이든지 말이다.
비밀의 한자는 숨길 비에 빽빽할 밀이다.
물론 그 외에도 여러 의미들이 있지만 밀(密)의 의미로 빽빽하다, 촘촘하다를 사용하고 싶은 건 왠지 비밀이란 건 마음의 켠에, 혹은 켠마다 꽂혀있는 일종의 책 같기 때문이 아닐까. 마음의 켠에 숨겨져 있는, 자기만이 펼칠 수 있고, 알아볼 수 있는 그런 책.
자기만이 알고 있어야 비밀이다. 비록 임금님의 귀가 당나귀 귀라는 '비밀'은 모두가 알게 됐지만 말이다. 하지만 모완의 비밀은 나무만이 알고 있다. 서로의 마음을 어렴풋이 보여주고 있었던, 사랑의 상대인 리첸은 알고 있겠지만, 그리고 그녀만이 알고 있고. 그러니 나무 구멍에 묻어둔 모완의 속삭임은 그 자신만의 비밀이었다. 속닥속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