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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네 번째

독서(讀書 / doxa)

by 재인


20대 때엔 기분이 안 좋으면 학교 도서관에 가서

거기 소파에 너부러져 있거나 교보문고에 가거나 했다.

교보문고에서도 학교 도서관에서와 다를 바 없었다.

지금의 광화문 교보문과와는 달랐던

2000년대와 2010년대의 교보문고 외서 코너는

일종의 작은 성과 같았고 나는 다른 카테고리에서

책을 가져오든지 외서 코너에 있는 아무 책이나 골라

자리에 몇 시간이고 주저앉아 읽었다.

도서관이든 교보문고든 그 장소들이 주는 위안이 있었고 난 그 위안이 정말 좋았다.

그때 읽었던 책들, 그 활자들이 의미가 있든 없든

내 눈에 그대로 들어와 그대로 마음 한 켠에 쌓여

그렇게 소복해지곤 했다.




나는 음악 듣는 것을 너무나 좋아하고 사진 찍는 것을 사랑하지만, 읽는 것은 뭐라고 해야 할까.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책을 열심히 읽었다.

부모님께서 여덟 살 위인 오빠에게 사준 세계/한국 문학 전집을 내가 다 읽었고 그 외의 다른 책들도 참 열심히 읽었다. 책만이 아니라 나가서는 가게의 간판이며 전화번호며 여러 안내 사항 같은 것들도 계속 읽고 다녔다. 그게 무엇이든 활자를 놓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그렇다면, 내게 읽는다는 건 뭘까.

독서(讀書), 혹은 독사(doxa).

20대 시절에 도서관과 교보문고가 주었던 위안을 생각해 보면, 그리고 지금도 읽는 행위가 내게 주는 위안을 생각해 보면 나의 읽음이란 무지 혹은 불안과 밝음 혹은 안정, 그 사이 어딘가에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일종의 믿음 같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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