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진우 Jun 01. 2018

당신은 진정 SUV가 필요한가?

SUV가 많아도 너무 많다

한국에는 SUV가 정말 많다. 아스팔트 위의 4할 이상이 SUV다. 무슨 현대판 보부상들이 이리도 많은지 SUV가 보이지 않는 곳이 없다. 그렇다고 짐을 싣고 다니는 것도 아니다. 그저 출퇴근만 하는데도 SUV를 끌고 다닌다. 

SUV의 근본적인 목적은 많은 짐을 싣고 비포장 길을 다니기 위함이다. 미국인들은 포장이 되지 않는 드넓은 대륙을 개척하고 횡단하기 위해 지상고가 높고 짐 공간이 넓은 픽업트럭과 SUV를 탔다. 그런데 SUV는 짐을 많이 싣고 오프로드를 달리기 위해서 많은 것을 포기한 차다. 차체가 무겁고 차고가 높으며 바람 저항도 심하다. 당연히 연비가 떨어진다. 미국은 기름값이 엄청나게 쌌으니 걱정 안 하고 큰 차들을 살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상황이 많이 다르다. 기름이 미국보다 두 배 비싸고 국토 면적은 100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 고속도로가 잘 뚫려 반나절이면 남한 어디든 갈 수 있다. 연비 외에도 SUV는 무게중심이 높아 빨리 달리지 못하고 세단보다 전복 위험이 높다. 뒤차 시야를 방해하고 야간에는 높은 헤드램프가 세단 운전자의 눈을 공격한다. 

한국인들의 SUV 사랑은 어제오늘 일만은 아니다. 한국이 자동차를 생산하지 못했던 한국전 당시, 짚 윌리스가 이 땅에 들어와 전장을 누비는 것을 봤다. 전쟁이 끝나자 미군이 놓고 간 윌리스를 고쳐 타고 다녔다. 그 차가 시발 자동차였다. 이승만 대통령도 짚을 탔고 박정희, 전두환도 점퍼에 선글라스를 끼고 짚을 타고 시찰을 다녔다. 

우리는 수십 년 동안 이 땅의 최고 권력자가 타고 다니는 짚을 보았고, 짚은 그렇게 권력의 아이콘이자 부의 상징이 됐다. 한국인들의 내면 깊은 곳에는 높은 지상고와 큰 타이어에 대한 로망이 잠재돼 있다. 잠재돼 있던 로망은 경제발전과 더불어 소비로 이어졌고 쌍용을 비롯해 현대, 기아가 많은 SUV를 만들었다. 그리고 우리는 SUV를 ‘짚차’라 불렀다.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도 짚에 대한 로망이 SUV 소비로 이어지고 있다. SUV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지금의 환경임에도 SUV는 아주 잘 팔린다.

시대의 아이콘은 그 시대에 남겨두고 새로운 시대에 맞는 똑똑한 소비를 해야 하지 않을까? ‘내가 진정 SUV가 필요한가?’를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SUV를 사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라이프스타일과 생활 패턴에 맞는 적절한 소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사진: 최민석(PENN STUDIO)

짐이 많다면  SUV가 맞는 선택이다. 하지만 일주일에 단 하루 짐차로 이용할 목적이라면 왜건과 해치백도 생각해볼 만하다. 차체가 SUV보다 가볍고 무게 중심도 낮아 더 안정적이다. 연비가 더 높고 가격은 같은 크기의 SUV보다 낮다. SUV를 일주일에 하루나 이틀 정도 짐차로 쓴다는 건 일주일의 5~6일은 SUV를 비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단 하루의 효율을 위해 6일을 비효율로 다니는 건 누가 봐도 똑똑한 소비는 아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는 차가 하늘을 나는 시대에 살게 될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