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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우 Jun 22. 2018

관중을 미치게 하는 랠리크로스

지금 이 시대에 가장 재미있는 자동차 경주는 단연 월드 랠리크로스다

월드 랠리크로스(World Rallycross)는 2014년 처음 시작됐다. 랠리크로스는 1967년 ‘유로 랠리크로스’라는 이름으로 유럽에서 처음 시작됐으니 역사가 짧은 모터스포츠는 아니다. 하지만 규모는 그다지 크지 않았다. 영국과 네덜란드 등에서 경주가 펼쳐졌고 이후 호주(1970년)와 미국(2009년)에도 랠리크로스가 전파됐다. 스포츠의 나라 미국에 전파되면서 랠리크로스의 인기가 갑자기 오르기 시작했고 2014년 FIA가 세 개 대륙의 경주를 묶어 월드 랠리크로스를 만들었다. 

월드 랠리크로스는 지금까지 단 네 시즌밖에 치루지 않았음에도 어느 모터스포츠보다 성장 속도가 빠르다. FIA는 2014년 랠리크로스 TV 송출 퍼센티지가 2013년에 비해 무려 550퍼센트 증가했고 방송 시간은 444퍼센트 늘었다고 밝혔다. 유럽에서만 연간 1100만 명이 시청했다. 경주 하이라이트를 볼 수 있는 소셜 미디어 노출도 엄청나게 올랐다. 인스타그램은 무력 900퍼센트 증가했고 페이스북은 348퍼센트 높아졌다. 랠리크로스 상품 판매도 200퍼센트 가까이 늘었다.

이렇게 랠리크로스가 급성장한 주된 요인은 각종 모터스포츠의 흥행 요소만을 모았기 때문이다. 우선 랠리크로스는 온로드와 오프로드를 모두 아우른다. 아스팔트와 흙길을 동시에 달리는 독특한 형식인데 타이어 그립력이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에 세심한 컨트롤이 필요하다. 매우 좁은 공간에 인공 코스를 만들어 경주장이 한눈에 다 보이는 것도 특징이다. 레이싱 서킷과 랠리는 경주차를 지속적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 단점인데, 랠리크로스는 경주장이 한눈에 다 보인다. 경주장이 작아 빠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은 접어두자. 0→시속 97킬로미터 가속이 F1 경주차보다 빠르다. 

몸싸움도 허용된다. F1은 경주차끼리 부딪치면 경주가 중단되고 세이프티카가 출동한다. 살짝만 접촉해도 페널티를 받는다. 랠리크로스에선 그런 거 없다. 범퍼가 떨어져 나가도, 경주차가 뒤집어져도 진행에 방해만 안 되면 경주는 계속된다. 점프와 드리프트는 WRC에서 가져온 흥미 요소다. 좁은 공간에서 속도를 줄이지 않고 달리기 위해선 드리프트가 필수다. 물론 드리프트 중에도 충돌은 계속된다. 

먼지가 풀풀 나는 곳에서 충돌, 점프, 드리프트가 계속되니 차가 성할 리 없다. 출발선에선 멀쩡하더라도 결승선을 통과할 때는 전혀 다른 차가 돼 있는 경우가 많다. 그것도 단 4~5분 만에. 랠리크로스는 한 경주가 5분 안에 끝난다. F1 결승은 1시간 30분, WEC는 짧게는 6시간에서 길게는 24시간 걸린다. WRC는 13~17개의 스페셜 스테이지가 있다. 3일 내내 봐야 한다. 경주가 길어 모터스포츠 골수팬이라도 어느 한순간 지루할 수 있다. 그런데 랠리크로스는 지루할 틈이 없다. 박진감 넘치는 액션이 단 5분 만에 끝나는 것이 아쉬울 수는 있다. 경주가 5분밖에 걸리지 않으니 TV 중계 사이사이에 광고를 넣기 편하니 방송사도 좋아한다. 또 SNS에 동영상 클립을 올리기도 좋다. 스마트폰 시대에 가장 특화된 모터스포츠가 아닐 수 없다. 

경주 시간이 매우 짧다는 건 팬 유입에 이점이 될 수도 있다. 스포츠는 모름지기 쉬지 않고 치열해야 관중의 즐거움이 커지는 법인데, 대체로 경주 시간이 긴 모터스포츠는 밋밋한 흐름이 이어지는 경우가 있다. 자동차 경주를 처음 보는 사람은 단 한 순간이라도 지루함을 느꼈다면 흥미를 잃을 수 있다. 

룰이 간단한 것도 팬 확보에 큰 장점이다. 난 F1을 10년 넘게 봐왔는데 아직도 F1의 룰이 헷갈린다. 규정도 너무 자주 바뀐다. 또 각 팀의 엔진과 경주차 특성도 파악해야 하고, 서킷 구성과 그에 따른 타이어 및 공력성능 전략 등을 공부하며 봐야 하는 경주다. WRC 규정은 그나마 F1보다 덜 복잡하지만 공부해야 하는 건 같다. 그런데 랠리크로스는 그런 거 없다. 그냥 ‘먼저 들어오는 놈이 이긴다.’ 

랠리크로스에서만 볼 수 있는 흥미 요소도 있다. 조커 랩(Joker Lab)은 본 코스 외에 또 다른 코스를 두어 모든 경주차가 4~6랩이 지나는 동한 한 번은 거쳐야 한다. 본 코스보다 길어 지연이 생기는데 언제 조커 랩을 돌아야 할지 판단하는 게 중요하다. 때에 따라선 일부러 두 번 이상 조커 랩을 도는 드라이버도 있다. 조커 랩에선 속도를 더 높일 수 있어 다음 코너에 빠른 가속을 유지하기 유리하기 때문이다. 

현재 랠리크로스는 모터스포츠계에서 가장 핫한 레이스다. 아우디가 WEC를 떠나 랠리크로스로 온 것은 랠리크로스의 흥행성을 인정했다는 뜻이다. 팀을 새로 꾸릴 필요도 없었다. 이미 마티아스 엑스트롬이 개인 팀(EKS)을 꾸려 아우디 S1으로 출전하고 있었고 이 팀에 재정 및 기술을 지원하는 형식으로 랠리크로스에 참가한 것이다. 이제 EKS는 아우디 팩토리 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참고로 엑스트롬은 현재 아우디 DTM 드라이버로도 활동하고 있으며 챔피언까지 지낸 실력자다. 2016년 랠리크로스 챔피언이기도 해 현재 유럽에서 가장 핫한 드라이버 중 한 명이다. 엑스트롬 외에도 랠리크로스엔 꽤 유명한 드라이버들이 많다.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켄 블록이 꾸준히 참가 중이고 다카르와 WRC에서 여러 번 우승한 랠리 영웅 세바스티애 뢰브, WRC 챔피언 피터 솔베르그도 볼 수 있다. 

랠리크로스는 여러 모터스포츠의 특징과 장점들을 모아 만든 완전히 새로운 경주다. 드라이버의 스트레스가 많고 높은 스킬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열광하고 관중몰이에 성공하고 있다. 아우디 외에도 혼다와 르노가 참가를 고려하고 있다. 기아차도 참가한다는 소문이 있었다. 랠리크로스는 그만큼 관중에게나 자동차 메이커에게 매력적인 모터스포츠다. 어쩌면 랠리크로스가 모터스포츠 판을 크게 바꿔버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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