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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피 Jul 23. 2024

엄마의 정년

아버지의 정년 글을 올린 것이 2년 전이었는데, 어느새 어머니도 정년을 하시게 되었다.

대학교수였던 엄마의 정년은, 아버지의 정년 때보다도 내게 많은 생각과 감정이 들게 한다.

엄마는 나와 같은 여성으로서 사회에서 일했고, 논문과 연구로 업적을 평가받았으며, 교수로서 제자들을 가르쳐야 했고, 다양한 학교 행정일을 동시에 처리해야 했다. 그와 함께 퇴근하면 다시 출근의 시작과 같았다- 아이들의 주 양육자로,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며느리로, 또한 아내로 너무나 다양한 역할을 동시에 다 해내야 하는 것이 엄마에게는 기본이었다. 

엄마는 지방에 있는 국립대학의 교수라서 항상 일요일 저녁에 지방으로 내려가셔서 금요일 저녁에 터미널로 오셨는데, 초등학교 어린 나이의 나에게는 그냥 매일 엄마가 없다는 생각뿐이었다. 준비물도 잘 못 챙기고 숙제는 다반사로 안 해갔었다. 언젠가 한 번은 구구단을 외우라고 학교에서 숙제를 내줬었는데, 나는 엄마가 없으니 그냥 놀자 이렇게 일주일을 보내다가 금요일 저녁에 엄마 오기 전에 먼저 자는 척하다 들켜서 끝까지 구구단을 외워서 학교에 갔던 기억이 난다. 학교 행사 때는 엄마대신 할머니가 당연히 오는 것이었고, 그러다 가끔 학교에 왔던 우리 엄마는 항상 다른 엄마들 무리에 섞여있지 못하고 학부모 모임에서 혼자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 엄마도 다른 엄마들처럼 집에 있으면 어떨까? 생각을 해보았지만, 엄마의 특성이 다른 엄마들과는 너무 달라서 집에 있는 것도 전혀 어울려 보이지 않았다. 엄마는 집보다는 직장이 어울리는 사람이었고, 자신의 일을 사랑했고, 누구보다도 헌신적으로 교수의 일을 해갔다. 또한 내가 기억하는 엄마는, 항상 새벽에 일어나서 학생들 추천서를 일일이 고치시는 모습이었다. 내가 조금 크고 나서는 그까짓 학생 추천서 대충 쓰면 안 되나라고 하면 펄쩍 뛰시면서 한 사람의 인생에 나에게 왔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나 하며 심혈을 기울여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계셨다. 때론 나보다도 학생들이 우선인 것 같을 때도 있었다. 저녁 9시 10시 11시에도 학생들과 미팅 중이라며 전화가 안될 경우도 많았다. (나중에 알았지만 엄마의 학생들은 대부분 파트타임이었기 때문에 낮에 일하고 저녁에 와서 지도를 받고 갔다고 한다)

시외버스로 통근하시던 엄마의 손에는 항상 학교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이 들려있었다. 엄마는 한때 소설가를 꿈꾸었을 만큼 문학소녀였고 그만큼 내러티브에 강했다. 유머도 많아서 항상 엄마와 이야기를 하다 보면 폭소를 터뜨리는 경우가 많았다. 엄마와 대화할 때면 노련한 지식인이 사회를 바라볼 때 갖는 시각과 표현이 이런 거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사회현상을 세세히 꿰뚫으면서도 비판적인 의식을 잃지 않았으며, 또한 그것을 해학과 풍자로 넘길 수 있었다. 엄마와 있을 때면 종종 소설과 시를 이야기했는데, 고등학교 때 엄마가 내 스트레스를 해소해 준다면서 자고 일어날 때즈음에 항상 머리맡에서 시를 읽어주셨던 생각이 난다. (의도하진 않았지만 그 덕택에 수능 문학을 꽤 잘 봤던 기억도 난다)

엄마는 독립적인 인간이었고, 또한 내가 아는 그 누구보다 매력적인 사람이다. 자신의 삶에 대해서 정말 열심히 살았으며 후학을 가르치는 데에도 내가 본 누구보다 더 헌신적으로 임하셨다. 끊임없이 더 나은 공부를 하고자 하셨으며, 학문에 대해서 정말 진중하셨던 분이다. 때론 좋은 아내, 순종적인 며느리, 사근사근한 여인과 같은 옛날 사람들이 보던 틀에 본인이 맞지 않아도 한 명의 인간으로서 그만큼 훌륭했을 수 없다고 믿는다. 그리고 나는 오늘 그런 엄마를 존경하며, 충분히 좋은 엄마(Good enough mom)라고, 정년을 축하드린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같은 여성으로서, 엄마로서, 교수로서 우리 엄마를 바라보는 자부심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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