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 사례로 살펴보는 온 사회가 함께하는 진정한 예방
우리는 자살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 흔히 ‘개인의 불행’이나 ‘정신과 문제’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 사람이 삶을 포기하기까지의 여정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우울증, 외로움, 실직, 학업 스트레스, 경제적 위기, 가정 불화… 이 모든 것들이 겹쳐져 어느 순간 한 사람을 극단으로 내모는 경우가 많다.
핀란드는 한때 세계에서 자살률이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 흐름을 바꾼 나라로 평가받는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그 해답은 바로 '연결'에 있다. 정신과 진료실 안에서만 자살을 막을 수는 없다. 핀란드는 보건, 복지, 교육, 노동, 지역사회, 심지어 언론까지 함께 손을 잡고 자살이라는 사회 문제에 맞섰다.
핀란드에서는 오래전부터 정신건강 문제가 개인의 일이 아닌 사회 전체의 과제로 여겨졌다. 과거에는 정신질환이 있는 사람들을 격리된 병원에 머무르게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핀란드는 이 방식을 과감히 바꾸었다. 1990년대 초, 핀란드는 정신과 치료를 일반 보건소, 지역 보건의료 시스템, 사회복지 서비스와 통합했다. 정신건강 서비스가 다른 의료 분야와 따로 노는 것이 아니라, 동네 병원, 복지부서, 지역사회가 함께 협력하는 구조로 전환된 것이다.
예를 들어, 어느 마을에서는 정신건강 문제가 의심되는 주민을 보건소 의사(일반의)가 처음 만나고, 필요하면 사회복지사나 전문 정신과 의사와 연결해 주는 시스템이 갖춰졌다. 이렇게 하나의 문제를 여러 분야가 함께 고민하는 방식은, 위기를 조기에 감지하고 끊어지지 않는 돌봄을 가능하게 한다.
핀란드는 법으로도 이를 뒷받침했다. 정신건강은 단순히 치료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함께 만드는 일’이라고 명시했고, 의료와 복지 분야가 반드시 협력해야 한다고 못 박았다.
자살을 줄인 비결: 혼자가 아니라 함께
핀란드는 1986년부터 10년 동안 국가 차원의 자살예방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놀랍게도, 보건부만이 아니라 교육부, 국방부, 경찰, 언론사, 시민단체 등 30여 개 기관이 함께 참여했다. 이 프로젝트는 자살이라는 민감한 주제를 사회 전체가 외면하지 않고 정면으로 다루자는 시도였다. 한 해 자살한 이들의 삶을 되짚어보는 ‘심리부검 연구’부터 시작해, 교사와 의사, 기자를 위한 교육, 지역사회 캠페인, 위기상담 핫라인 운영까지 다양한 방법이 동원되었다.
결과는 놀라웠다. 프로젝트가 본격화된 후 핀란드의 자살률은 꾸준히 떨어졌고, 10년 뒤에는 20% 가까이 줄어들었다. 이 변화는 단지 숫자에 그치지 않는다. 자살에 대해 숨지 않고 이야기하는 사회, 위기의 징후를 놓치지 않는 공동체가 만들어진 것이다.
자살은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종종 자살을 개인의 극단적인 선택, 혹은 단순한 우울증의 결과로만 이해한다. 하지만 한 사람이 삶을 포기하게 되는 과정은 훨씬 더 복잡하고, 훨씬 더 조용하게 이루어진다. 빈곤, 실직, 관계 단절, 학업 스트레스, 가정 내 갈등—이 모든 것들은 병의 이름으로 불리지 않지만, 분명 사람의 마음을 조금씩 무너뜨린다.
정신질환은 그 과정의 한 축일뿐이다. 때로는 정신과 진단을 받기 전, 아니 진단에 도달할 기회조차 없이, 사람들은 사라진다. 그렇기에 자살은 의료의 문제이기 전에 사회 전체의 문제이다. 그리고 그 예방은 병원이라는 건물 안에서만 이뤄질 수 없다.
핀란드가 보여준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자살을 줄이기 위해 정신건강 정책만 강화한 것이 아니다. 학교에서는 학생의 위기 신호를 읽는 방법을 교사들이 함께 익혔고, 직장에서는 동료의 침묵을 주의 깊게 바라보았으며, 언론은 자살 보도의 책임을 다시 생각했다. 심지어 군대, 경찰, 종교계, 지방자치단체까지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그렇게 이 사회의 많은 기관과 직업군들이 자신들의 역할을 찾아갔고, 그 결과 핀란드는 눈에 띄게 자살률을 낮출 수 있었다.
자살은 더 이상 한 사람의 어깨에만 올려둘 수 없다
다시 언급하자면, 자살은 흔히 정신질환의 결과라고 여겨지곤 한다. 그래서 우리는 자살 문제를 정신과 의사의 책상 위에 조용히 올려두고는 한다. 그들이 알아서 해결해 줄 거라고, 우리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그렇게 책임을 옮기고 마음을 내려놓는다.
하지만 핀란드의 경험은 그 생각이 얼마나 비현실적인지 보여준다. 정신과 의사 한 사람이 감당하기에는, 자살에 이르는 길이 너무 복잡하고, 너무 조용하고, 너무 일상적이다. 실직, 따돌림, 시험 스트레스, 외로움, 가난… 그것은 병원 밖에서 시작되고, 그래서 병원 밖에서부터 함께 대응해야 한다. 자살예방이란 누군가가 병원에 찾아오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무너지기 전에 만나는 일이다. 그 만남은 교실에서, 일터에서, 복지관에서, 심지어 뉴스 기사 한 줄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
정신과 의사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그들이 모든 고통을 알아차릴 수는 없다. 자살을 진심으로 줄이려면, 이 사회 전체가 ‘나도 이 일에 책임이 있다’는 생각으로 움직여야 한다. 동네 다른 과 의사, 교사, 기자, 복지사, 공무원, 직장 동료… 우리가 그 고리를 함께 이어갈 때, 그제야 누군가의 마지막 신호가 허공으로 흩어지지 않을 수 있다.
자살은 전문직 하나로 감당할 수 없는, 너무나 인간적인 일이다. 그래서 오히려, 우리 모두의 자리에서 시작해야 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