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자살 문제에서 계속 인과 담론은 실패하는가

정신역학과 예방의학의 관점에서

by 에피

자살은 오랫동안 공중보건의 핵심 지표이자, 동시에 가장 해석하기 어려운 결과 변수 중 하나였다. 자살률은 사회적 고통의 총합을 상징하는 숫자로 자주 호출되지만, 그 숫자에 도달하는 인과적 경로를 설명하려는 시도(“그래서 자살의 원인은 무엇인지”)는 반복해서 실패해 왔다. 자살을 주제로 강의를 마친 뒤 흔히 받는 질문이 있다. “역학적으로 자살의 원인을 알면, 그 원인을 제거해서 자살을 막으면 되는 것 아닌가요? 그런데 왜 자살예방은 늘 실패하는 건가요?” 이 질문은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자살 정책을 둘러싼 공적 논쟁의 구조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우리는 자살을 사회적 문제로 말하면서도, 동시에 그것을 단일한 원인과 단일한 해법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처럼 기대한다.


나는 정신역학자이자 예방의학자로서, 자살 연구에서 인과관계를 파악하기 어려운 이유를 단순히 “자료가 부족해서” 혹은 “연구가 미숙해서”라고 보지 않는다. 자살 연구의 어려움은 연구 방법의 한계 이전에, 자살이라는 현상 자체가 인과 추론이 전제하는 조건과 근본적으로 어긋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면 자살 정책에서 반복되는 원인-효과 논쟁 역시 이해할 수 없다. 이 이해의 부재는 정책의 기반이 되었던 연구들이 “잘못된 상관 해석”을 하였거나 “방법의 부정확성”에 기인하여 정책이 실패한다고 오인하게 만든다. 하지만 문제는 연구 자체에 있는 게 아니다. 자살이라는 현상은 원래 원인과 결과를 깔끔하게 정리하기 어려운데, 정책 담론은 늘 ‘무엇이 원인인가’라는 단순한 답을 요구한다. 이 둘이 맞지 않으면서 혼란이 반복된다.


역학이 다루는 대부분의 질병 결과는 비교적 명확한 발생 시점을 가진다. 감염이나 심근경색, 뇌졸중은 발생 이전과 이후를 구분할 수 있고, 노출과 결과 사이의 시간적 순서를 설정할 수 있다. 그러나 자살은 그렇지 않다. 자살은 어느 날 갑자기 발생한 사건처럼 기록되지만, 실제로는 장기간에 걸쳐 누적된 심리적/사회적/생물학적 과정이 특정 시점에서 하나의 행동으로 응축된 결과다. 이 과정에는 우울, 불안, 충동성, 사회적 고립, 경제적 압박, 관계의 붕괴, 신체질환, 알코올 사용, 치료 경험과 같은 요소들이 비선형적으로 얽혀 있다. 중요한 점은 이 요소들이 단순히 더해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변화시키며 시간에 따라 형태를 바꾼다는 것이다. 이런 구조에서는 “어떤 요인이 자살을 유발했다”라고 말하는 순간, 우리는 이미 복합적 인과과정을 하나의 원인으로 환원하는 오류에 빠지게 된다. 자살은 단일한 결과 변수라기보다, 수많은 인과경로가 합류하는 종착점이며, 이 점에서 자살은 역학이 전통적으로 다뤄온 단순 인과 모형에 잘 맞지 않는다.


자살 연구에서 인과 추론을 어렵게 만드는 또 하나의 근본 원인은 자살 위험이 강하게 확률적이며 개인 간 이질성이 크다는 점이다. 동일한 수준의 우울증, 동일한 경제적 위기, 동일한 상실 경험을 겪고도 어떤 사람은 자살을 시도하지만, 어떤 사람은 그렇지 않다. 이는 단순한 통계적 잡음이 아니라, 우리가 흔히 측정하는 위험요인들이 자살 행동의 충분조건이 되지 못하며, 위험이 맥락과 시점, 개인의 취약성에 따라 크게 달라지는 조건부 과정임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자살의 인과모형에는 효과를 증폭하거나 완충하는 변수가 존재하지만, 그것들은 종종 미세한 시간 단위로 변화하거나, 표본에서 체계적으로 누락되며, 측정되더라도 불완전한 대리변수로 남는다. 이런 구조에서는 동일한 노출이 관찰되더라도 결과가 갈라지고, 평균적 인과효과 추정은 필연적으로 불안정해진다.


그러나 이 이질성을 단순히 개인차나 측정의 한계로만 설명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자살 위험이 조건부로 갈라지는 이유는 개인의 심리적 취약성만이 아니라, 그 취약성을 형성하고 증폭시키는 거시적/구조적 맥락이 동시에 작동하기 때문이다. 자살은 개인 내부에서 발생하는 사건이지만, 그 사건을 가능하게 만드는 위험의 분포는 사회적 조건 속에서 생산된다. 실업, 소득 불안정, 부채, 주거 불안, 불평등, 지역사회 붕괴, 돌봄 공백, 의료 접근성 같은 거시적 조건은 그 자체로 자살 행동을 직접 유발한다기보다, 일상 속 만성 스트레스와 관계의 손상, 고립을 통해 개인이 세계를 해석하는 방식에 누적적으로 개입한다. 즉 거시 조건은 절망감, 대안 부재의 인식, 자기 부담감 같은 주관적 인식을 형성하는 상위 경로이며, 그 주관적 인식은 특정 순간에 행동을 촉발하는 근접 기제로 작동한다. 그럼에도 기존 자살 연구는 이 둘을 하나의 인과 사슬(causal link)로 충분히 엮어내지 못했다. 심리학적 모형은 거시 구조를 배경으로 밀어 두고, 사회역학적 모형은 개인의 주관적 인식을 불충분하게 반영하는 방식으로 분절되어 왔다. 이 분절은 정책 설계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한쪽은 상담·치료 같은 개인 개입으로, 다른 한쪽은 소득보장·고용·지역사회 정책 같은 구조 개입으로 원인을 환원시키며 경쟁하는 구도를 만들어 왔다. 그러나 실제로 필요한 것은 ‘마음’과 ‘구조’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구조가 어떤 경로를 통해 마음을 변화시키고, 마음의 변화가 어떤 조건에서 행동으로 전환되는지를 시간축 위에서 연결하는 통합 모델이다. 자살 연구의 인과추론이 반복적으로 흔들리는 이유는 바로 이 연결고리, 즉 거시–중간–미시 수준을 관통하는 인과 사슬이 경험적으로 충분히 구축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신역학에서 다루는 대부분의 노출은 자살과 양방향 관계를 가진다. 실업은 우울을 악화시키지만, 우울은 다시 실업의 위험을 높인다. 치료 이용은 위험을 낮출 수도 있지만, 동시에 중증도의 결과이기도 하다. 이러한 관계는 시간에 따라 반복적으로 순환하며, 어느 시점을 기준으로 원인과 결과를 고정하더라도 원인과 결과의 관계가 뒤바뀌어 버리는 역인과성(reverse causality)의 가능성은 항상 남는다. 더 나아가 정신건강 영역에서는 교란 요인 자체가 시간에 따라 변화하며 노출과 결과에 동시에 영향을 미친다. 우울 증상, 스트레스 수준, 기능 저하, 사회적 고립은 시간에 따라 변하면서 이후의 치료 이용과 생활사건에 영향을 주고, 동시에 자살 위험에도 영향을 준다. 이런 시간변화 교란 구조에서는 단순한 회귀 기반 통제가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과거의 노출이 교란요인을 변화시키고, 변화된 교란요인이 다시 이후 노출과 결과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떤 변수를 통제(혹은 보정)하느냐에 따라 효과 추정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 더 복잡한 문제는 정신건강 연구에서 흔히 통제하거나 보정하는 변수로 실제로는 노출과 결과의 공통된 결과물이 선택된다는 점이다 (이를 콜라이더(collider)라고 한다). 예컨대 치료 이용, 상담 참여, 병원 방문 여부는 위험요인에 의해 증가할 뿐 아니라, 자살 위험이 높아지는 과정 자체의 산물이기도 하다. 이런 콜라이더 변수를 만약 기존의 방식대로 통제/보정하게 되면 노출과 결과 사이에 원래 존재하지 않던 연관성이 인위적으로 보일 수 있다. 예를 들어, “사회적으로 지지가 부족한 사람들은 자살사고를 더 많이 한다”는 가정을 검증하기 정신건강 핫라인 상담자 자료를 분석한다고 보자. 이때 핫라인 이용여부라는 변수는 사회적 지지가 부족한 사람들에게서 더 나타날 것이며, 자살사고가 늘어나면 핫라인을 더 많이 이용할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상담자 이용 코호트”로 표본을 제한해 놓은 상태에서 노출과 결과의 연관을 분석하면 원래 사회적으로 지지와 자살사고 간에 관련이 없다고 해도 통계적으로는 유의하게 연관성이 관찰될 수밖에 없다. 전체 집단에서 “상담 이용 여부”라는 변수를 보정해도 마찬가지다. 결국 정신건강 연구에서 어려운 점은 결론을 내기 위해 다뤄야 할 변수가 많아서가 아니라, 무엇을 보정(혹은 통제) 해야 하고 무엇을 보정해서는 안 되는지조차 사전에 명확히 확정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특정한 사람들만 따로 분석하거나 모델에서 보정변수를 넣는 것은 비뚤림(bias)을 줄이기 위한 장치이지만, 정신건강 영역에서는 이러한 통제가 언제든지 새로운 비뚤림을 생성할 수 있다.


자살 연구는 필연적으로 선택된 표본 위에서 이루어진다. 병원을 방문한 사람, 상담을 이용한 사람, 조사에 응답한 사람, 그리고 무엇보다 살아남은 사람들이다. 자살로 사망한 집단은 가장 중요한 비교 대상이지만, 동시에 연구 설계에서 가장 빠져 있는 집단이다. 이로 인해 자살 연구는 시작부터 선택비뚤림(selection bias)을 가지고 출발할 수밖에 없다. 또한 윤리적 이유로 인해 무작위배정 시험과 같은 강한 인과적 설계는 거의 불가능하다. 위험을 무작위로 배정할 수 없고, 고위험군을 의도적으로 방치할 수도 없다. 이러한 제약 속에서 자살 연구는 자연실험(natural experiment)과 준실험적 접근(quasi-experimental assessment)에 의존해 왔다. 정책 시행 전후 추세를 비교하는 중단 시계열 분석(Interrupted time-series, ITS), 적용 집단과 비적용 집단의 변화를 비교하는 차이의 차이 분석(Difference-in-difference, DiD), 사건 발생까지의 시간을 다루는 시간-사건 분석(time-to-event) 등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방법들은 무작위 배정이 불가능한 현실에서 인과성에 최대한 근접하기 위한 합리적인 타협이지만, 한계를 완전히 제거하지는 못한다. 중단 시계열 분석은 정책 시행 시점과 동시에 발생한 다른 외부적인 자극의 영향을 분리하기 어렵고, 차이의 차이 분석은 평행추세(개입이 없었어도 비교하는 두 집단은 원래 비슷한 방향으로 같이 움직였을 것)라는 강한 가정을 필요로 하며, 시간-사건 분석은 관측되지 않은 이질성(heterogeneity)과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위험 구조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할 수 있다. 결국 자살 연구에서 인과성 추정이 불확실해지는 것은 연구자의 실수라기보다, 인간의 생명과 고통을 다루는 연구가 감수해야 하는 구조적 조건에 가깝다.


이 지점에서 질문은 연구에서 정책으로 이동한다. 문제는 “왜 자살 연구에서 인과성을 밝히기 어려운가”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책은 왜 끊임없이 인과성을 요구하는가, 그리고 이 요구는 정당한가를 묻고 싶다. 정책은 본질적으로 제한된 자원을 배분하고 개입을 정당화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무엇이 문제의 원인인가”, “어디에 개입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정신역학 역시 자살이 왜 발생하는지를 다양한 사회적/심리적/구조적 요인을 통해 설명해 왔다. 그러나 자살 정책에서 반복되는 혼란은 ‘왜 자살이 발생하는가’를 묻는 것 자체가 아니라, 서로 다른 층위의 인과적 질문이 하나로 압축된다는 점에서 발생한다. 역학이 다루는 원인은 대개 특정 노출이 자살 위험을 얼마나 변화시키는지, 그 효과가 어떤 집단과 맥락에서 강화되거나 완충되는지, 그리고 그 경로가 어떻게 구성되는지를 밝히는 설명적 인과성(explanatory causation)의 형태로 제시된다. 이는 자살이 확률적이고 다요인적 과정이라는 사실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며, 정책 설계 단계에서 위험집단과 우선순위를 설정하는 데 중요한 근거가 된다. 반면 정책이 효과평가 단계에서 요구하는 인과는 다른 질문이다. 여기서의 핵심은 “왜 자살이 발생하는가”가 아니라, “이 정책이 없었더라면 자살률은 어떻게 되었을까”라는 반사실 조건(counterfactual) 하에서 특정 개입이 결과를 얼마나 변화시켰는지를 추정하는 개입 효과 인과성(interventional causation)이다. 즉 정책이 요구하는 인과성은 원인의 완전한 규명이 아니라, 개입의 정당성과 효율성을 판단하기 위한 실천적 추정에 가깝다. 자살 정책에서 인과 담론이 반복해서 실패하는 이유는 설명적 인과가 부족해서도, 개입 효과 인과가 틀려서도 아니다. 문제는 이 두 종류의 인과가 각기 다른 역할을 가진다는 사실이 망각된 채, 단일한 원인 설명을 요구하는 방식으로 뒤섞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책은 설계 단계에서는 복잡한 문제를 ‘한 가지 원인’으로 정리해 달라고 요구하고, 평가 단계에서는 애매한 효과를 두고 곧바로 “누가 책임질 거냐”는 논쟁으로 넘어간다. 그 결과 인과에 대한 논의는 정책을 개선하기 위한 학습이 아니라, 성과를 주장하거나 반박하기 위한 공방으로 굳어지게 된다.


정책 담론에서 상관성은 종종 “인과성으로 오해된 것”이라는 비판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이는 절반만 맞는 말이다. 정책 설계 단계에서 상관성은 필수적인 출발점이다. 자살 위험이 어떤 집단에서 높아지고 있는지, 문제가 어디에 집중되어 있는지, 어떤 요인이 위험과 함께 움직이는지를 파악하는 데 상관성만큼 유용한 도구는 없다. 이 단계에서 상관성은 인과성을 탐색하기 위한 후보이며, 인과성이 아직 확정되지 않았더라도 정책 논의에 반영되어야 할 중요한 신호다. 반면 정책 효과 평가 단계에서 상관성의 역할은 달라진다. 이 단계에서 정책은 더 이상 “어디에 개입할 것인가”를 묻지 않는다. 대신 “이 개입이 실제로 무엇을 얼마나 바꾸었는가”를 요구한다. 따라서 정책 효과를 주장하는 근거로는 단순한 상관이 아니라, 개입 효과에 대한 인과적 추정이 필요하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정책평가의 인과성 기준은 설계 단계보다 훨씬 더 엄격해져야 한다. 효과가 있다는 판단은 예산과 인력을 재배치하고, 다른 개입의 기회를 제거하며, 때로는 실패의 책임을 은폐하거나 특정 집단에 부담을 전가하는 방식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이제 이러한 틀을 한국의 주요 자살 정책 사례에 적용해 보자. 여기서 중요한 질문은 “이 정책이 효과가 있었는가”가 아니다. 더 근본적인 질문은 각 정책이 제공할 수 있었던 인과성의 수준과, 정책 담론이 그 정책에 요구한 인과성의 수준이 일치했는가이다. 수단 제한 정책, 특히 치명적 농약에 대한 접근 제한은 자살 정책 중 비교적 강한 개입 효과 근거를 확보할 수 있는 영역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이 정책에서 볼 수 있는 인과성은 자살의 원인을 제거했다는 설명적 인과성이 아니라, 자살 시도가 발생했을 때 사망에 이를 확률을 낮추는 개입 효과 인과성에 가깝다. 다시 말해 수단 제한은 자살 충동이나 고통의 발생 자체를 없애기보다, 동일한 위험 조건하에서 결과의 치명도를 변화시키는 정책이다. 그럼에도 이를 해석할 때, 이 정책을 자살 감소의 주된 원인으로 층위를 바꾸어 버린다면, 그 순간부터 “다른 정책 때문 아니었나”라는 반론에 쉽게 휘말린다. 이는 효과가 없어서가 아니라, 요구된 인과의 수준이 정책이 제공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노인 소득보장 정책은 자살 위험을 직접적으로 제거하기보다, 경제적 불안과 사회적 박탈이라는 장기적 스트레스 경로를 완화함으로써 위험을 낮추는 간접 개입에 해당한다. 이런 정책의 효과는 시간에 따라 분산되고 특정 집단에서만 두드러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정책 담론은 여기에 단기적 효과나 전국 자살률 같은 거시 지표에서의 변화를 요구한다. 그래서 효과가 일부 집단에서만 천천히 나타나면 “별 효과 없다”는 평가를 받기 쉽고, 반대로 어느 해 자살률이 우연히 떨어지기라도 하면 그 변화를 특정 정책 하나의 성과로 지나치게 돌려버리기 쉽다.


상담 바우처 정책과 전 국민마음투자지원사업은 우울과 불안의 증가, 정신건강 서비스 수요 확대라는 관찰에서 출발했다. 이는 정책 설계 단계에서 충분히 타당한 문제 인식이다. 그러나 이 정책이 실제로 개입할 수 있는 영역은 자살사망이라는 최종결과라기보다, 증상 완화, 기능 회복, 치료 접근성 개선과 같은 중간지표에 가깝다. 그럼에도 정책 담론은 이러한 중간지표 수준의 변화가 결국 자살사망 감소로 이어질 것이라는 인과 경로를 사실상 당연한 것으로 전제해 왔다. 문제는 바로 이 지점에서 정책이 기대한 인과가 충분히 검토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즉 “상담 이용이 늘면 자살이 줄어든다”는 직관적 서사는 강하지만, 그 사이에 존재하는 시간지연, 효과의 누적 조건, 집단 수준으로의 확산 경로는 정책 설계와 평가 체계에서 명확히 구성되지 않았다. 더 나아가 이러한 서비스 기반 정책은 개입 자체가 선택 과정에 의해 강하게 왜곡될 수밖에 없다. 바우처와 마음투자는 형식적으로는 보편적 접근을 표방하지만, 실제 이용자는 정신건강 문제를 스스로 인식할 수 있고, 상담을 받는 데 따르는 낙인과 행정적 부담을 감당할 수 있으며, 시간과 정보, 지리적 접근성을 가진 사람들로 제한된다. 반대로 자살 위험이 가장 높은 집단은 도움을 요청할 역량 자체가 부족하거나, 서비스로 연결되기 전에 위기 국면에 진입하거나, 제도의 문턱에서 탈락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정책 효과를 “서비스 이용자들의 변화”로 평가하는 순간, 연구는 이미 선택편향을 내재하게 된다. 이는 정책이 효과가 없어서 결과가 나타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정책이 실제로 도달한 집단이 정책이 목표로 한 고위험군과 다를 수 있기 때문에 효과가 과소평가되거나, 반대로 이용자 집단의 특성 때문에 효과가 과대평가될 위험이 있다는 뜻이다. 결국 이 정책의 문제는 중간 성과가 무의미해서가 아니라, 중간지표의 변화가 어떤 경로를 통해 언제, 어떤 조건에서 집단 수준의 자살률 변화로 연결되는지를 검증할 평가 설계가 처음부터 충분히 마련되지 않았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 상담 바우처와 마음투자 사업은 정책이 개입할 수 있는 인과성 수준을 정직하게 규정하지 못했고, 동시에 선택편향을 최소화할 전달체계와 효과성 평가의 구조를 갖추지 못한 채 “최종 성과”의 심판대에 먼저 올라갔다. 이런 조건에서는 정책이 실제로 일부 개선을 만들어내더라도 성공을 입증하기 어렵고, 반대로 성과가 불분명할 때에는 정책 자체가 “상관성을 인과성으로 착각했다”는 비판에 쉽게 노출될 수밖에 없다.


이 세 사례의 공통점은 분명하다. 정책이 실패했다기보다, 정책에서 요구된 인과성과 해당 개입이 제공할 수 있는 인과성 수준을 넘어섰을 때 정책 담론은 과잉 단순화와 과잉 반박의 순환에 빠진다. 수단 제한은 치명도 경로의 강한 개입 효과를 제공하지만 ‘원인 제거’의 설명을 제공하지 않는다. 소득보장은 구조적·장기 인과를 제공하지만 단기 지표의 언어로는 포착되기 어렵다. 상담 바우처와 마음투자 정책은 중간지표 수준의 변화를 제공하지만, 최종결과와의 연결고리를 명시하지 않으면 성공을 증명할 수 없다. 결국 필요한 것은 “상관성을 버려라” 혹은 “인과성을 증명하라” 같은 구호가 아니라, 정책의 종류마다 가능한 인과성의 형태와 시간척도를 먼저 정직하게 규정하고, 그에 맞는 평가 설계를 붙이는 일이다.


자살 정책에서 필요한 태도는 상관성을 배제하거나 맹신하는 것이 아니다. 정책 설계 단계에서는 상관성을 인과성의 후보로 적극 활용해야 한다. 그러나 정책 효과 평가 단계에서는 개입 효과에 대한 인과적 추정을 훨씬 엄격하게 요구해야 한다. 이 구분이 명확해질 때 상관성은 정책 실패의 원인이 아니라 정책 사고의 출발점이 될 수 있고, 인과성은 정책을 정당화하는 수식어가 아니라 정책 학습과 개선의 도구가 될 수 있다. 자살예방은 단일한 정책으로 해결될 수 없고, 단일한 연구 설계로 입증될 수도 없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상관성을 넘어 인과성 있는 연구도 포기할 수 없다. 인과성은 완전한 설명이 아니라, 개입 가능한 고리를 찾기 위한 도구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살 정책의 과제는 정답을 선언하는 것이 아니라, 불확실한 조건 속에서도 학습 가능한 정책을 설계하는 것이다. 자살을 둘러싼 인과 담론이 정치적 책임 공방의 언어가 아니라 공중보건적 학습의 언어로 돌아오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실패의 반복을 멈출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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