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지금 ‘공중보건’과 ‘정신예방’의 언어로 다시 봐야 할까?
자살은 한 사람의 ‘약함’이나 한 가지 병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우울증이나 중독 같은 정신질환도 영향을 주지만, 실업과 빈곤, 과도한 업무 스트레스, 사회적 고립처럼 삶의 조건이 함께 얽혀 있다. 그래서 자살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가 함께 풀어야 하는 공중정신건강 문제이다.
그런데 최근 연구들은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반복해서 보고한다. 자살과 관련된 많은 결과가 어린 시절의 역경 경험, 즉 아동기 역경(ACE: adverse childhood experiences)과 통계적으로 강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연구들에 따르면 자살사고·계획·시도 같은 결과 중 약 30–40% 정도가 ACE와 ‘연관’된 것으로 추정한다. (이는 앞 글에서 설명한 인구기여위험분율, Population Attributable Fraction, PAF를 뜻한다. 필자의 한국인 코호트에서도 ACE는 PTSD, 우울증 외로움의 30-40%를 설명한다고 추산되었다.) 이 말은 “ACE가 자살의 유일한 원인이다”라는 뜻은 아니지만, 사회 전체의 자살 부담을 줄이려면, 어린 시절의 역경을 ‘핵심 요인 중 하나’로 진지하게 다뤄야 한다는 뜻이다.
한동안 이 ACE는 공중보건보다는 아동복지나 정신의학, 심리학에서 더 많이 쓰였다. 그런데 왜 지금, ACE를 다시 ‘보건학과 정신건강 예방’의 언어로 가져와야 할까.
1990년대 미국의 의사들은 진료하는 일정 그룹의 환자들에게서 이해하기 어려운 특이한 패턴이 계속된다는 것을 발견했다. 같은 병을 앓고 있고, 같은 설명을 듣고, 같은 치료를 받아도 결과가 전혀 달랐다. 금연 교육을 받아도 담배를 끊지 못했고, 체중 조절 프로그램에 참여해도 폭식은 멈추지 않았다. 고혈압과 당뇨 치료를 받아도 상태는 쉽게 악화되었고, 병원 방문과 입원은 반복되었다.
“이 사람들은 왜 치료가 안될까?”
“이 사람들의 의지가 부족해서일까, 아니면 뭔가 모르는 다른 요인이 있는 것일까”
당시 미국의 의료기관이었던 Kaiser Permanente는 미국 최대 규모의 보험 기반 의료 체계(HMO)로, 수심만의 성인환자를 장기간 추적할 수 있는 드문 환경을 갖추고 있었다. 이곳의 임상의들은 환자들의 차트 속에서 하나의 공통된 특징을 발견한다. 만성질환, 중독, 우울, 불안, 반복적인 의료 이용이 겹쳐 있는 환자들 중 상당수가 어린 시절의 어려운 환경을 조심스럽게 언급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가정폭력, 알코올 문제, 방임, 성적/정서적 학대, 부모의 정신질환, 반복된 분리와 상실과 같은 경험들은 진료 기록의 주변부에 흩어져있어 어느 하나만으로는 현재의 건강문제를 설명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이것들이 한 사람에게 여러 개씩 겹쳐 있었다는 것은 분명했다. “어떤 특정 사건이 문제라기보다, 이런 경험들이 쌓이는 구조자체가 건강을 바꾸는 것이 아닐까?”라는 질문으로 Kaiser Permanente는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와 함께 ACE 연구(ACE study)를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연구자들은 ‘어린 시절의 여러 역경’이 단독으로 따로따로 일어나기보다, 여러 형태가 함께 겹쳐 나타나고, 그 누적 정도가 커질수록 성인이 된 후 다양한 건강 문제가 더 많이 생긴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래서 “어떤 한 사건”만 보기보다 “얼마나 여러 역경이 쌓였는가”를 보는 ACE 점수(ACE score)가 등장하였다.
이처럼 ACE는 개인의 성격이나 선택을 설명하기 위한 개념이 아니라, 임상과 공중보건이 함께 “성인기 질병과 위험행동의 뿌리를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탄생한 역학적 프레임이었다. 처음부터 트라우마 치료의 언어였던 것이 아니고, 건강 불평등이 생애 초기에 어떻게 새겨지는지를 보여주는 지도로 등장한 개념이었던 것이다.
아동기 역경은 무작위로 발생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운이 나빠서 역경을 겪고, 누군가는 보호받으며 성장하는 것이 아니다. ACE는 사회적으로 구조화된 노출이며, 그 분포는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사회의 조건에 의해 예측 가능하게 결정된다. 빈곤, 주거 불안정, 불안정한 노동, 양육 지원의 부재, 사회적 고립, 지역사회 폭력과 같은 구조적 요인은 서로 독립적으로 작동하지 않고 중첩되며, 이러한 조건에 놓인 가정과 지역에서 아동기 역경의 발생 가능성은 체계적으로 높아진다.
실제로 다수의 연구는 ACE가 사회경제적 지위(SES), 교육 수준, 고용 안정성, 이주 배경, 가족 구조, 지역 박탈 지수와 강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부모의 정신질환이나 물질사용 문제 역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빈곤, 장시간 노동, 사회적 고립과 같은 사회적 스트레스 환경 속에서 발생하고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그 결과 ACE는 특정 개인의 비극적 경험이 아니라, 사회적 불평등이 가정환경을 통해 아동에게 전달되는 경로로 기능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ACE 점수는 한 개인이 ‘얼마나 불운했는가’를 보여주는 지표가 아니라, 한 사회가 취약성을 어떤 방식으로 분배하고 있는지를 반영하는 분포 지표(distributional marker)로 이해될 수 있다. 동일한 사회적 조건이 유지되는 한, ACE는 개인의 노력이나 치료로 제거될 수 없으며, 다음 세대에서도 유사한 양상으로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ACE는 개인의 과거사가 아니라, 사회 구조가 생애 초기에 남기는 흔적이며, 정신건강 불평등이 세대 간 전이되는 메커니즘을 가시화하는 지표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며 ACE는 오랫동안 ‘개인 병력’으로 쓰였다. 주로 두 영역에서 사용되었는데, 아동복지에서는 학대나 방임을 빨리 찾아 보호하기 위한 지표로, 정신의학에서는 우울증·PTSD·중독·자살 위험을 설명하는 개인 병력으로 사용되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ACE가 “이미 문제가 생긴 개인의 과거”로 종종 이해되었고, 이로 인해 개입은 늘 늦어지고, 해결도 개인 치료나 사례관리로 좁아질 수 있었다. 개인의 ACE가 강조되면서 어린 시절 역경을 만들고 키우는 빈곤, 불안정한 노동, 주거 불안, 돌봄 부족, 사회적 고립 같은 조건은 뒤로 밀려나기 쉬웠던 것이다.
다시 우리가 처음에 언급한 자살로 돌아가서, ACE는 자살과 어떻게 관련되어 있을까. 자살은 우울증만으로 생기지 않는다. 사회적 고립, 성인기에 겪는 실직, 경제적 압박 같은 조건이 함께 작용한다. 그런데 같은 위기를 겪어도 어떤 사람은 버텨내고, 어떤 사람은 무너진다. 앞선 연구들은 이 차이를 설명하는 데 어린 시절 역경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이야기한다. 많은 논문들에서는 자살의 30-40%가 ACE로 인해 설명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미국 CDC의 추산에 따르면 자살시도의 89% 이상이 ACE로 인해 설명된다고 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ACE는 흔하며, 특정 소수만 겪는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ACE 경험자를 찾아내서 관리하자”는 방식은 직관적으로는 쉬워 보이지만, 현실에서는 문제가 생긴다. ACE가 너무 흔하기 때문에, 선별검사를 하면 양성(ACE가 있다고 보고하는 사람 수)이 너무 많이 나오는데, 실제로 그중 다수는 자살로 이어지지 않는다. 즉 선별의 예측력이 낮다는 뜻이다. 게다가 어린 시절의 민감한 경험을 묻는 과정은 낙인이나 상처를 다시 건드리는 위험(재외상)을 만들 수도 있다. 이건 공중보건에서 말하는 ‘예방의 역설’의 모습이다. 영국의 역학자인 로즈(Rose)는 위험이 넓게 퍼져 있을수록, “고위험군만 골라서” 해결하기는 어렵고, 대신 위험이 퍼져 있는 ‘분포 자체’를 바꾸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자살을 염두에 둔 ACE의 예방전략은 보편적(universal) 예방과 표적(target) 전략이 결합된 형태여야 한다. 어린 시절의 역경은 하나의 원인으로 생기지 않는다. 빈곤, 주거 불안, 양육 스트레스, 부모의 정신건강 문제, 지역사회 폭력 같은 조건이 겹쳐서 만들어진다. 여기에 일차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보편적 예방은 사회 전체의 평균 위험을 낮추는 정책을 통해 가능하다. 예를 들어 안정적인 소득과 고용, 양육 친화적인 노동정책, 아동수당, 돌봄 서비스, 방과 후 지원, 학교 기반 사회정서 교육(SEL), 지역사회 폭력 감소, 안전한 환경 조성과 같은 정책은 취약한 누군가를 골라내지 않아도 사회 전체의 위험을 낮춘다. 여기에 위험이 집중된 곳에 강도를 높이는 표적 예방이 더해져야 한다. 빈곤 가정, 한부모 가정, 학대 위험이 높은 가정에 대한 가정방문 실시, 부모의 우울이나 중독에 대한 치료 접근성 강화, 아동보호, 복지, 정신건강 서비스의 끊김 없는 연계가 이에 해당한다. 이는 보편정책(인구분포의 평균을 이동하는 정책)만으로는 줄이기 어려운 위험의 꼬리(가장 취약한 구간)를 줄이는 역할을 한다.
ACE를 묻는 과정에서 힘든 경험에 대한 재외상이 있을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그렇다고 ACE를 아예 묻지 말아야 할까. 이미 실제 현장에서는 상담과 진료, 위기 상황에서 ACE가 드러난다. 중요한 건 묻고 안 묻고를 떠나서, 드러났을 때 안전하게 다룰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개념이 트라우마 인지 접근(TIC: trauma-informed care/practice)이다. 트라우마 인지 접근은 단순히 ACE를 점수화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다양한 상처 경험을 가지고 있다는 전제에서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으며 설문에 참여할지 말지에 대한 선택권을 존중하는 중심으로 물어보는 것이다. “무엇이 문제인가?”만 묻기보다 “무엇을 겪었나?”를 이해하려고 하며, 상처를 다시 자극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이러한 접근은 아시아, 그리고 특히 한국에서 더 중요할 수 있다. 아시아권에서는 특히 ACE를 묻거나 답하는 것이 더 어려울 수 있다. 가정사를 말하는 것에 대한 낙인, 가족 중심 규범, 조사 상황에 대한 불신 등으로 보고가 낮게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해외논문들을 비교하면 중국이나 한국의 ACE 보고율은 훨씬 낮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환경에서는 ACE 선별검사의 정확도는 더 떨어지고, 반대로 위해는 더 커질 수 있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특히 ACE에 대한 조사를 확대하기에 앞서 트라우마 인지접근에 대해 보급하고 경험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정신건강 서비스는 늘었지만, 정신질환 유병률이 줄지 않고 자살 격차가 커졌다는 사실은 우리가 놓치고 있는 “윗단계 요인(upper stream)”이 있음을 뜻한다. ACE는 그 대표적인 예이다. ACE는 개인의 과거가 아니라, 사회적 불평등이 어린 시절에 어떻게 축적되는지 보여주는 분포 지표이다. 그래서 자살 예방의 관점에서 ACE를 다시 공중보건과 정신건강 예방의 언어로 가져와야 한다. “누가 위험한가”를 찾는 데서 멈추지 않고, 왜 위험이 이렇게 넓게 분포하는가, 그리고 그 분포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를 묻는 것이 공중정신건강의 역할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