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 나는 플로리스트가 된다. 야외조경을 할 수 없는 시기이자, 졸업식 준비와 새 시즌 룩북 제작을 위해 꽃을 다룬다. 내가 좋아하는 꽃들이 겨울에 많아서 사실 설레는 계절이다. 일주일에 많으면 3번, 울산에서 서울과 부산을 오가며 꽃을 산다. 다른 계절은 흙을 만지다 보니 손톱과 옷이 지저분한데, 이때는 그나마 깨끗하다. 그래도 거친 건 어떻게 해결이 안 된다...^^;;
경매가 한창인 농협부산화훼공판장의 아침
저도 가격 몰라요
서울은 오전 12시, 부산은 오전 8시부터 꽃시장에 물건이 쏟아진다. 농가에서 출하된 큰 단위의 꽃들이 순차적으로 경매되면, 중도매인 분들이 5송이에서 10송이씩 소분하여 판매하신다. 우리는 이걸 사게 된다.
저 많은 장미 중에서도 유달리 예쁘며 크고 깨끗한 '상품'을 찾기 위해, 조심조심 관찰한다. 이렇게 서있다 보면 재밌는 일이 많다. 대부분 여성분들이 많아서인지 남자인 나는 조금 튄다. 그리고 일할 때 팔꿈치에 뭔가 닿이는 느낌을 싫어해서 항상 반팔을 입는데, 그래서 조금 더 도드라져 보인다. 게다가 팔이 길다 보니 남들보다 몇 배의 꽃을 품에 안을 수 있는데. 얼핏 경매받은 꽃들을 가져오는 사람처럼 보인다. 그래서 나를 중도매인, 경매인으로 알고 가격을 묻거나 오늘 무슨 색이 나왔는지 물어보시는 분들도 있다..^^;;
카라와 아스틸베 화이트
가격은 몰라도
좋은 꽃을 고르는 방법은 잘 알고 있다. 우리는 '부케'를 위한 꽃을 많이 사입하기에, 품질에만 집중한다. 가령 부케에 많이 쓰이는 흰 카라와 아스틸베는 1년 내내 전 세계 신부들의 사랑을 받는다. 그만큼 비싸다. 주로 재배되는 여름이 아니라면 가격은 몇 배를 뛴다. 제철이 아니면 당연히 품질이 떨어지기도 하고, 크기도 작을 때도 많다. 송이수만 생각해서 부케를 만들면 정말 낭패를 볼 수 있다. 물론 이럴 땐 손을 떨면서 몇 배의 돈을 주고 개수를 몇 배로 넣으면 간단히 해결(?!)된다.
그래서 어떻게 고를까
우리가 꽃을 고르는 방법은 플라워샵을 운영하거나 꽃집에서 화병용 꽃을 산다면 도움이 될 것이다. 꽃에 손대지 않고 좋은 꽃을 고르는 방법!
첫째, 꽃잎에 물이 묻지 않은 것.
호접란, 수련을 제외한 대부분의 꽃잎이 물에 약하다. 물은 얇은 꽃잎을 금방 무르게 만들고 곰팡이도 부른다. 즉 꽃의 수명을 짧게 만든 다는 것. 꽃잎에 물이 마른 자국이 있다면 피하는 것이 좋고, 물이 묻었다면 즉시 털고 바람에 말리는 것이 중요하다.
둘째, 꽃받침에 멍 자국이 없는 것.
일명 '카톡개' 프로도가 손으로 가리키고 있는 곳이 '꽃받침' 부분이다. 저부분에 멍든 바나나처럼, 갈색으로 변하지 않은 것이 중요하다. 그런 모습을 '습졌다' 라며 부른다. 꽃받침 부분이 습진 꽃의 경우 줄기에서 꽃잎이 쉽게 떨어지거나 냄새가 날 확률이 높다.
셋째, 절정인 꽃 고르기.
제철꽃이 나오기 시작할 때가 아닌, 절정일 때 구매하는 것을 추천한다. 겨울꽃인 '라넌큘러스'는 10월에도 볼 수 있다. 다만 이 꽃이 가장 많이 출하되는 1월부터 구매하는 것을 추천한다. 1년 내내 볼 수 있지만 한 여름 수박이 제일 맛있듯, 온실 재배되는 꽃도 자신의 계절을 만날 때, 가장 튼튼하고 저렴하다.
넷째, 줄기 색상 보기
대부분 줄기는 진한색이다. 만약 아래쪽부터 위로 40% 가까운 지점까지 줄기를 봤을 때, 투명하면서 무른듯한 줄기 색상이 보인다면! 피하는 것이 좋다. 약한 꽃이거나 출하된 지 오래된 꽃일 확률이 높다. 전체 높이의 아래쪽 10%가 그렇다면 물을 흡수하면서 보이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사장님, 이거 조화예요?
우리는 이 4가지 방법을 기준으로 꽃의 특성에 따라 선별방법을 추가한다. 모든 꽃들이 아름답기에 '혹'해서 다 쥐고 오면 후회할 수 있다. 우리의 매뉴얼을 바탕으로 품질 좋은 꽃을 고르고, 신선하게 관리한다. 별난 우리의 장사철학, 장점은 꽃이 오래가서 고객 만족도가 높다는 것이고 단점은 손님이 자주 '못'오신다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