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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5번째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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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piphany Jan 10. 2019

와플과 밀크셰이크의 상관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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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시절의 나는 늘 뭔가를 배우러 다니기 바빴다.

 벌써 옛날 사람이 된 것 같아 슬프지만 그 당시만 해도 어릴 때부터 학원에 다니는 애들이 생각보다 많지 않았고, 놀이터도 꽤나 붐비던 시절이었다. 나 역시 그 놀이터를 채우던 수많은 아이들 중의 한 명이었고, 한참 롤러브레이드가 유행하던 시절에는 따로 약속을 하지 않아도, 시원한 저녁만 되면 그걸 타고 모르는 동네 아이들과 술래잡기를 하고 다녔다.



하지만 나는 동시에 늘 뭔가를 배우러 다니고 있었다. 이모가 영어 과외 선생님이었다는 흔한 이유로 친한 친구와 과외를 받고, 한자며, 스케이트며, 심지어는 주위에서는 아무도 안 하던 스키 강습도 받으러 다녔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오래 배웠던 건 역시 수영이다.

  


나는 사실 맥주병이 따로 없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 잠시 들어갔었던 아기스포츠단에서는 키판을 잡고도 자꾸만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그 때문에 금세 스포츠단도 그만둬버렸거니와 수영은 싫다고 선언까지 했다.



그래서 초등학교 1학년 여름, 엄마 손을 잡고 끌려간 집에서 10분 거리 수영장에서는 이미 입이 한 움큼 나와있었다. 절대 싫다고, 안 배울 거라고 떼를 쓰며 울었던 듯한 기억도 있다. 하지만 엄마는 항상 나름의 기준이 있었고, 해보지도 않고 포기하지 말라며 제대로 배워보라고 강사 1명에 수강생은 2명인, 개인 과외 수준의 수업을 대뜸 신청해버렸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존경스러울 정도의 실행력이 아닌가!)

  


아무튼 그렇게 맥주병은 천천히 물에 뜨는 법을 배웠다. 서서히 물에 뜨게 되고, 키판을 잡고 헤엄치는 법을 익히고, 드디어는 키판도 놓게 되었다. 그 지난한 과정을 거치는 동안 나에겐 한줄기 빛 같은 존재가 있었다.


출처 http://blog.daum.net/


바로 수영 강습이 끝나고 씻은 다음, 머리도 안 말린 채 후다닥 뛰어나와 사 먹는 이 노릇노릇 잘 구워진 옛날 와플. 와플이 구워지는 동안, 어찌나 고소하고 달콤한 냄새가 진동을 하던지. 온몸이 녹진하도록 수영을 하고 나온 허기진 나에게는 참을 수 없는 유혹이었다.


정확할지는 모르겠지만 당시에는 이런 와플을 500원이면 살 수 있었다. 처음 수영센터가 있는 건물 앞에서 와플집을 발견하고, 동전이 없어 침만 꼴깍이며 집에 돌아온 나는, 그다음부터 수영 수업이 있는 날은 동전을 꼭 챙겨 다녔다. 내가 수영장에 갈 때마다 500원을 받아가는 게 귀찮아진 엄마는 현관 앞에 동전 그릇을 가져다 두었고, 나는 주머니 속 500원이면 그 날 하루가 행복했다.

  


요즘은 잘 팔지 않는 옛날식 동그란 와플. 가끔 보이는 와플집에서도 온갖 종류의 과일과 아이스크림, 누텔라 잼까지 넣어서 팔곤 한다. 하지만 그 시절 수영장 앞 와플은 심플하기만 했다. 매번 가도 과묵하기만 하셨던 아주머니가 막 구워진 와플을 꺼내 사과잼을 한 스쿱 떠서 얇게 바르고,  그 위에 생크림을 펴 바른다. 그리고 시나몬 가루를 솔솔 뿌린 후에 길게 반을 접어 종이에 쓱 끼워서 건네주셨다. 하지만 그 거면 충분했다. 그 바삭바삭한 달콤한 맛은, 수영 후에 찾아오는 노곤함을 완벽하게 녹여주었고 나는 눈을 반짝이며 신나게 집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2년 남짓 수영을 다닌 어느 날, 어른들의 사정으로 그 건물은 팔려나가고 수영장도 없어진다는 얘기가 들려왔다. 나중에는 와플 아주머니도 어디론가 가 버리고 안 보이셨다. 결국 나는 집에서 한참이나 떨어져 있는, 번듯하게 들어선 건물에 새로 생긴 커다란 수영장에 다니게 되었다. 나의 실망감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정든 수영장을 떠나는 것도 싫었지만, 그렇게 좋아하던 와플을 못 먹게 되었다는 사실도 너무 서글펐다. 지금 생각하면 어이가 없을 정도로 사소한 일이었는데, 내 어린 시절의 애정에는 그토록 귀여운 집요함이 있었다.

  


하지만 새로 수영장을 옮기고 나니, 그런 기분은 온데간데없이 마냥 좋기만 했다. 이전의 오래되고 벽이며 바닥이 누렇게 바래가던 조그만 수영장에서, 모든 것이 새하얗게 반짝반짝 빛나는 새 수영장으로 오니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그토록 집요할 때는 언제고 뒤돌아서면 잊히던 나의 애정이라니. 더군다나 새로운 수영장 건물 1층에는 생전 처음 보는 햄버거 체인 전문점인 '버거킹'이 들어와 있었다. 그리고 그 휘황찬란했던 버거킹에는 나의 새로운 수영 친구, 밀크셰이크가 있었다.

 

https://kr.123rf.com

  


어떻게 밀크셰이크를 처음 먹게 되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수영이 끝나면 이제 습관적으로 단 걸 찾던 내 입맛에는 더 이상 딱일 수 없었다. 게다가 번쩍번쩍해진 수영장만큼이나, 밀크셰이크에서는 더 고급스러운 단 맛이 났다. 그림 속의 유리컵은 없었고 대부분 버거킹의 종이컵에 담아 집으로 걸어오며 먹었지만, 난 그 새하얀 빛깔이 좋아 늘 플라스틱 뚜껑을 벗겨내고 마셨다. 빨대를 꽂아 쭈욱 들이켜면 목을 타고 넘어가는 그 부드러운 목 넘김이라니! 고급스럽게 달콤한 바닐라 향이라니! 나는 또 새로운 애정을 쏟게 되었다.

  


시간은 흐르고, 나는 초등학교 4학년이 되어 엄마에게 이제 발레가 배우고 싶다고 졸라대기 시작했다. 수영장은 더 이상 번쩍번쩍하지 않았고 밀크셰이크도 초코며, 딸기 맛까지 쏟아져 나왔지만 그 무엇도 처음처럼 특별하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수영에 흥미를 잃어갔다. 결국은 내 뜻대로 수영을 그만두고 발레를 배우게 되면서 내 작은 간식 시간의 즐거움들도 잊혀 갔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그 달콤함으로 수영장을 추억한다. 수영장의 시간들을 떠올리며, 코를 찌르던 락스 냄새와 바닥이 비쳐 보이던 그 연하늘색 물빛보다도 와플이 구워지는 고소한 냄새와 밀크셰이크의 부드러운 목 넘김을 조용히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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