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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맛.
어른이 되어 버린 사람에게 밤의 맛이란 사실 다양한 듯 단조롭다. 머릿속에는 온갖 다채로운 술과 안주들이 떠오르지만, 이미 내가 그 맛을 알아버렸고 그것 이외에 달리 떠오르는 별다른 맛이 없다는 것은 어딘지 모를 공허함을 남긴다. 하지만 술맛이 뭔지 알 수 조차 없었을 그 시절 나에게 밤의 맛이라 하면, 그 건 왠지 파르페다.
우리 부모님은 밤에 하는 유흥을 그다지 즐기시는 편이 아니었고, 지금도 여전하시다. 해가 지면 각자의 공간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우리 집 분위기에서, 어떻게 나 같은 괴짜가 나왔는지는 아직도 모를 일이다. 지나가는 밤이 아쉽고 서늘한 밤공기가 그다지도 즐거운 나로서는, 잔잔한 강물 같은 부모님의 일상이 스물몇 해가 지난 지금도 문득문득 낯설고 생경하다. 하지만 그런 부모님이 유일하게 유흥에 자연스레 녹아드는 날도 있었다.
친척들이 모두 모여 할머니 집 거실이며 주방이 적잖이 떠들썩해지던 내 어린 날들의 명절. 지금은 1년에 얼굴 한번 보기 어려운 얼굴들을 생각하니 괜스레 저릿해지는 마음 한 구석이지만, 내 기억 속 그날들은 속절없이 따뜻하다.
친척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어 한바탕 인사치레를 하고, 그 시절 어느 집에나 있었을 네모반듯한 큰 상에 둘러앉아 끊임없이 나오던 LA갈비며, 줄지도 않는 잡채를 먹고 나면 사실 그렇게 할 일이 많지는 않았다. 그러면 그때부터 모두가 각자의 속도로 넘쳐나는 시간을 엮는다. 나와 내 동생들은 그리 크지도 않은 집에서 숨바꼭질을 하고, 그러다 지치면 만화책을 빌려 과자를 까먹으면서 보고, 그래도 심심하다 싶으면 부루마블로 세계 정복이나 했다.
그러는 동안 어른들이 하는 일은, 대개는 화투였다. 점심부터 해가 질 때까지 지치지도 않고 패를 두드리고, 가끔 소소하게 한몫 챙기신 분들의 환호성이 이어지다, 이윽고 대부분의 친척 어른들이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주섬주섬 남은 돈을 챙기실 때까지 그 시간들이 이어졌다.
그러고 나면 어느새 저녁 먹을 시간이었다. 대부분의 경우 어른들은 저녁을 먹고 티브이를 보며 수다를 떨곤 했었지만, 그 어느 한 해 명절에는 동네 호프집에서 시간을 보낸 일이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점심 먹고 치우고, 저녁 먹고 또 치우던 우리네 어머니들을 위한 배려였을까 싶기도 한 그때, 나는 초등학생조차 아니었다. 내 조그만 사촌동생들은 같이 말을 섞기에는 너무 어린 아기들이었고 심지어 몇몇은 태어나지도 않은 때였다. 나를 외갓집에 혼자 두고 가기가 못내 마음에 걸렸던 엄마는 무슨 영문인지 나를 데리고 호프집으로 갔다.
기억 속 호프집은 희미하다. 너무 어렸고, 그마저도 보냈던 시간의 태반을 테이블에 엎드려서 졸다 깨다 했던 그곳은 샛노란 조명에 분명 호프집이지만 알 수 없는 전통술집의 모양새인 데다, 좁은 칸막이들로 나뉘어 있었다. 어른들은 술을 마시겠지만 이런 곳에서 나는 뭘 해야 되나, 어린 마음에도 그런 의문에 뻘쭘해져 있을 때쯤 나왔던 화려한 그것.
지금은 찾아보기도 힘든 이 파르페의 눈을 홀리던 화려함이란.
같은 것은 당연히 아니지만 내 기억 속 파르페는 딱 이러했다. 지금 보면 피식 웃음이 나올 정도로 어딘지 모를 촌스러운 모습이지만, 당시에는 슬슬 감겨오던 눈꺼풀이 반짝 떠질 정도로 어린아이를 사로잡기에는 충분했다. 그렇게 나는 첫 밤의 맛을 마주했다.
분명 호프집인데 왜 파르페가 있었을까 하는 의문은 뒤로 하고 일단 그것은 예뻤다. 길고 우아한 컵에 가득 담긴 아이스크림에, 온갖 종류의 기다란 과자에, 초코 시럽과 체리까지! 거기에 보기에는 허접하지만 의외로 접었다 폈다까지 할 수 있는 뜻 모를 조그만 우산까지 있으면 완벽하다. 온갖 당분과 지방으로 점철되어 지금 먹어보라면 한 입만 먹어도 머리가 띵해질 파르페를, 나는 천천히 아껴가며 다 먹었다. 열 살도 되지 않은 인생에서 처음 맛보는 밤의 맛은, 달콤하고 화려했다.
그리고 내 인생에 또 한 번, 파르페가 있었다. 그 역시 밤이었으니 내 기억 속 밤의 맛이 파르페인 데는 의외로 설득력 있는 연결고리가 존재한다. 지금은 거의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수준인 미사리는 당시에는 수많은 라이브 카페에서 통기타 라이브가 펼쳐지곤 했다. 그리고 밤에는 외출을 거의 하지 않으시는(물론 지금도) 우리 부모님이 나와 함께 야심한 시간, 미사리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우스운 건 파르페와 함께한 대부분의 시간은 사실 먹을 때를 제외하고는 잠들었던 기억뿐이다. 미사리를 방문했을 때는 가는 차 안에서도 자고, 잠시 메뉴판에서 파르페를 보고 기뻐하다가, 먹는 와중에도 졸음을 참지 못하고 아예 의자에 누워서 잤다. 아이의 밤 시간이란 대개 그렇게 지나가는 법이지만. 그랬기에 미사리 카페에서 알 수 없는 통기타 라이브를 들으며 파르페를 먹었던 기억은 꿈속 일처럼 느껴진다. 차를 타고 가며 봤던 저 화려한 라이브 카페의 조명들, 귀를 울리던 기타 소리 같은 어렴풋한 감각으로만 추억할 뿐이다.
하지만 아무리 나의 기억을 뒤적여 봐도 밝은 대낮에 햇살을 받으며 파르페를 먹은 기억은 없으니 그 또한 의아한 일이다. 기가 막힌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겠지만 내가 그 화려하고 우아한 어떤 것을 마주했던 시간은 늘 어린 나의 눈꺼풀이 잠에 못 이겨 떨어지는 그즈음이었다. 그런 반복된 우연이 내 기억에 조그만 흔적을 남기고, 나는 지금 그 흐릿한 기억을 더듬어 이렇듯 글로 끄적거리고 있으니 무의식이란 무서운 것이다. 어쩌면 심지어 그 기억의 달콤함이, 밤에 대해 알 수 없는 편안한 애정을 차곡차곡 쌓아오는 계기가 되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어린 나의 밤은 그토록 우아하게 달콤했고, 놀랍도록 화려했지만, 그 선연함과는 별개로 아주 흐릿하고 또한 희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