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기를 잡는 가장 완벽한 방법은,

초단편 소설

by epiphany



3호선 출근길.


덜컹이는 만원 지하철 속에서 남자는 어딘가 불편한 얼굴이다.

어젯밤에 왼발 두 번째 발가락이 모기에 물린 것이다.

갑갑한 신발 속에서 발가락을 이리저리 꼼지락거려 보지만 소용이 없다.

어지간한 건 잘 참는다고 하는 남자인데 이 가려움만큼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는지 얼굴이 일그러진다.

구두와 양말을 시원하게 벗어던지고 그대로 주저앉아 발가락을 벅벅 긁는 상상을 한다.

그러다 중심을 잃고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으나 간신히 옆에서 핸드폰을 보고 있던 여자의 팔뚝을 붙잡았다.

여자는 '악' 소리와 함께 지금 뭐 하는 거냐며 남자를 치한 취급했다.

남자도 호들갑 떠는 여자에 빈정이 상해 건성으로 사과를 하자, 여자는 미간에 인상을 잔뜩 쓴 채로 구시렁거리며 멀찌감치 자리를 옮겼다.


회의 시간에는 모기 물린 발가락과 엄지발가락을 위아래로 비벼대느라 정신이 팔려 있었다.

영문을 모르는 팀장은 그 모습을 보고 한심하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고객을 응대하다가도 불현듯 찾아오는 가려움에 미칠 지경이었다.

이를 악물고 긁고 싶은 욕구를 참아 보려니 동공이 풀리고 식은땀이 났다.

이상한 낌새에 손님들도 슬금슬금 남자를 피하는 눈치다.

그건 가려움이 아닌 괴로움이었다.

남자는 퇴근만을 기다렸다. 곧장 집으로 달려가 어젯밤 자신의 발가락 피를 뽑아 배를 채우고, 오늘 하루를 몽땅 망쳐버린 놈을 직접 잡아 죽이겠노라 다짐했다.


작은 거실 겸 부엌과 방 한 칸이 전부인 남자의 집 구석구석 전등이 밝게 켜졌다.

한 손에는 모기약을 한 손에는 고무장갑을 꼈다.

맨손으로 모기를 잡는 건 어쩐지 내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제 거실에서 티브이를 보다 잠들었으니 놈은 거실에 있을 것이다. 그러나 거실은 물론 알량한 집안 어디에도 보이질 않았다. 퇴근하고 저녁도 먹질 못한 채 벌써 한 시간째 이놈만 찾고 있다. 포기할까 잠시 마음이 약해지려는 순간 또다시 가려움이 밀려온다.

사포라도 있으면 긁어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이놈을 못 잡으면 내일 출근길에도 그리고 직장에서도 무엇에도 집중할 수 없을 것이다.

모기 물린 발가락을 화장실 앞 지압 매트에 대고 앞뒤로 비비니 조금 나아지는 것 같다.

'아, 시원하다.'

남자는 어느새 무아지경의 상태가 되어 돌로 된 울퉁불퉁한 지압 매트 위에 드르륵드르륵 뼈 갈리는 소리가 나도록 격렬하게 비벼 대고 있었다.


그러다 불현듯 떠오른 욕실 안. 불을 켜고 들여다보니 아니나 다를까.


통통하게 살이 오른 모기 한 마리가 욕실 거울에 떡하니 앉아있는 것이다.


남자는 기쁨에 이성을 잃을뻔했다.

조심스레 욕실로 들어간 남자는 문을 닫고 놈을 가뒀다.

고무장갑 낀 손으로 당장이라도 몸을 터뜨려 죽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냉정해지기로 했다.

피곤하기도 하고 배도 고팠으며 발가락도 간지러웠다. 행여나 놓치기라도 하면 시간이 지체된다.

양손을 사이에 두고 고민하던 그는 약을 쓰기로 결심했다.

자신이 개인적인 복수심보다는 냉정하게 상황을 판단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에 스스로 흡족했다.


남자는 신중히 위치를 선정하고 모기를 향해 스프레이를 뿌리기 시작했다.

치이이이~치이이이~

깜짝 놀랐는지 녀석은 빠르게 날아올랐고 남자는 녀석이 도망가는 쪽을 향해 무차별로 뿌리기 시작했다.

치이이이이이~ 치이이이이이익~

이를 악물고 스프레이 든 손을 정신없이 좌우로 흔들었다.

'죽어. 죽어라. 제발!'

모기는 지그재그로 비틀거리며 날다가 욕실 벽에 부딪혀 아래로 떨어졌다. 징그럽게 가늘고 긴 다리가 파르르 떨렸다.

지하철에서 자신을 치한 취급하던 여자와, 남자를 경멸하던 팀장의 얼굴이 경련하는 모기 위로 오버랩되었다. 남자는 스프레이 병을 흔들어 약이 얼마나 남았는지 확인하더니 남은 약을 몽땅 쏟아부었다.

모기 위로 축축하고 번들거리는 액체가 두텁게 쌓였고, 더 이상 놈은 움직이지 않았다.


욕실 가득 찬 모기약 냄새에 남자는 멀미가 났다.

시체는 잠시 두기로 했다. 어쩐지 바로 치워버리고 싶지 않았다.

두고두고 녀석의 시체를 지나다니며 한동안 능멸하겠노라 생각했다.

남자는 모기 시체를 피해 화장실 문을 열고 위풍당당하게 나오는데,

그만 욕실 문턱에 발이 걸리고 말았다.


"읍!"



찰나의 기쁨과 성취감이 한순간에 막을 내렸다.

두 번째 발가락 통증은 양쪽 옆에 있는 발가락들까지 퍼지더니 곧 발 전체가 저릿했다.

너무 아파 쳐다볼 수도 없어 일단 두 손으로 발을 감싸 쥐고 주저앉아 신음하고 있었다.

쪼그려 앉은 얼굴에는 피가 쏠리고 순간적인 충격에 머리카락이 헝클어졌다. 뼈가 부러진 걸까.

심상치 않은 고통에 다친 발가락을 조우할 용기가 도무지 나지 않았다.

조심스레 발을 감쌌던 손을 펴자,

방금 전까지 가려움에 치를 떨던 발가락에 발톱이 덜렁거리고 있었다.

안으로는 피가 났는지 부어있었다. 겨우 몸을 일으켜 발을 디뎌 보았다.

괜찮은듯하여 한발 한발 디디다 갑자기 찌르는 통증에 '악' 소리를 내며 식탁 의자까지 간신히 깽깽이걸음으로 가서 앉았다.

"후우..."


짧은 사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마치 스프레이를 삼키기라도 한 것처럼 남자는 숨을 쉴 때마다 뱃속에서 모기약 냄새가 올라왔다.

밤새 간지럼과 통증이 번갈아 찾아왔다. 아니 동시에 오기도 했다.

이젠 어디가 간지러운 곳이고 어디가 아픈 곳인지 남자도 헷갈렸다.

뜬 눈으로 밤을 새운 남자는 팀장에게 사정이 생겨 병원에 들러 지각한 다고 아침 일찍 메시지를 했으나 그녀는 읽고도 답이 없었다.

"발가락이 뽀개졌네요."

엑스레이를 보던 의사가 모니터를 가리켰다.

"여기 보시면 이 발가락만 매끈하지 않죠? 여기가 골절된 겁니다."

남자는 뭐라 해야 할지 몰랐다.

"젊으시니까 4주 정도면 붙을 거예요. 그때까지 깁스 잘 하시면 됩니다."

팀장의 얼굴이 머리를 스쳤다. 가뜩이나 남자를 한심하게 여기는 팀장은 깁스를 하고 고객을 응대할 바엔 이참에 일을 그만두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목발을 짚고 병원을 걸어 나오는데 모기 물린 곳이 또다시 간지럽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같은 빌라에 사는 여자의 얼굴이 머릿속에 번개 치듯 떠올랐다.

여자는 남자가 사는 빌라 주인 할머니의 손녀였다.

나이를 가늠하기 힘든 그 여자는 출퇴근 시간이면 빌라 입구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향해 뭐라 혼잣말을 하곤 했다. 남자는 어딘가 모자라 보이기도 하고 정신이 이상해 보이는 여자가 마땅치 않아 집 앞에서 마주쳐도 한 번도 알은체하지 않았다.

며칠 전 빌라 앞에서 우연히 마주쳤을 때도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을 하고 있었다.

평소 미친 여자라 생각했기에 남자는 위아래로 여자를 훑어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어휴, 아침부터 미친년을 봤으니 하루 일진 걱정이네.'

그러자 여자는 그 소리를 알아듣기라도 한 듯 수첩에 무언가를 갈겨쓰는가 싶더니 출근하는 남자의 뒤통수에다 대고 깔깔거리며 웃는 것이었다.


병원을 나오던 순간 왜 그날 일이 떠오른 걸까.

남자는 그에게 닥친 일들이 모두 그 여자 때문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확신에 가까웠다.

남자는 낯설고 성가신 목발을 겨드랑이에 낀 채 절뚝이며 집으로 향했다.

때마침 여자는 빌라 입구 계단에 앉아 남자가 오는 쪽을 바라보며 히죽히죽 웃고 있었다.

무릎에는 그 수첩이 올려져 있었다.

발가락엔 통증과 가려움이 동시에 느껴졌다.

온몸에 털이 바짝 서는 것 같았다.

간지럼이든 통증이든 어느 하나라도 잦아들기를 바랐다.


남자는 멀리 보이는 여자를 향해 빠른 걸음으로 걷기 시작했다.

그러다 속도가 성에 차지 않은 듯 거추장스러운 목발을 빼 옆으로 홱 던져버렸다.

여자에게 가까워질수록 웃음소리도 또렷해졌다.

남자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거렸다.

남자는 손을 뻗어 여자 무릎 위에 있던 수첩을 낚아챘고, 그러다 중심을 잃고 쓰러질 뻔했다.

수첩에는 알아보기도 힘든 글씨로 삐뚤빼뚤하게 쓰여 있었다.

104호 머저리 새끼

‘지나가던 차에 웅덩이 물벼락이나 맞아라.’

‘휴지 없는 화장실에서 설사나 해라.’

‘밥 먹다 혀나 왕창 씹어라.’

남자는 최근에 자신이 소름 끼치도록 똑같은 일들을 겪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여자는 어느새 바닥을 거의 뒹굴며 깔깔거리고 웃고 있었다. 아래에는 또 이렇게 쓰여있었다.

‘모기한테 발가락이나 뜯겨라.’
‘화장실에서 나오다 문지방에 발이나 콱 찧어라!’

망연자실한 얼굴로 여자를 내려다보았다.

웃음소리에 귀가 멍해진다.


그때 남자의 화장실에 누워있던 모기는 다리를 아주 살짝 움직이는가 싶더니 다시 날아오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


-끝-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