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단편소설
이삿짐 정리를 마치고 새로운 동네도 구경할 겸 시내를 돌아보고 있었다.
‘정진헤어’
허름한 동네에 어울리지 않는 외관이었다.
서울에서나 볼 법한 모던하고 세련된 간판은 같은 상가에 위치한 주변 점포들과 뚜렷하게 비교되었다.
이사하느라 몸도 마음도 지쳐있던 터에 기분 전환이나 할 겸 미용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40대 중반 정도 돼 보이는 여자가 인사를 했다.
밖에서 본 것과 달리 허름한 실내 인테리어에 실망감이 들었다.
내부는 여느 시골 동네 미용실만한 규모로, 커다란 거울과 짝을 맞춰 놓은 미용의자 3개가 전부였다.
그중 가운데 자리에는 할머니라기엔 아직 어정쩡해 보이는 손님이 앉아있었다. 여자가 손님 머리에 롯드를 말면서 물었다.
“어떤 거 하시게?”
“저.. 커트 될까요?”
“당연히 되지~ 이 손님 거의 다 말았으니까 조금만 기다리셔.”
손님과 직원은 이미 잘 아는 사이인지 편한 농담을 주고받으며 대화하고 있었고, 나는 출입문 옆에 마련된 대기용 의자에 앉아 가게 안을 둘러보았다.
한 쪽 벽에 색이 바랜 벽지 위로 액자 3개가 걸려있었다.
첫 번째 액자에는 영어로 '오레알 인터내셔널 아티스트 김정진'이라 쓰여있었다.
두 번째 가장 큰 액자에는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렸던 헤어 스타일링 쇼의 광고 포스터가 들어있었고,
나머지 액자에는 '매년 한국의 헤어 트렌드를 선도하는 김정진 디자이너'라는 제목의 기사가 스크랩되어 있었다.
나는 가게 중앙에 서서 열심히 롯드를 말고 있는 여자를 돌아 보았다.
‘저 사람이 김정진일까?’ 여성의 손놀림은 날렵한 듯했으나 그리 능숙해 보이지는 않았다.
꼬리빗으로 조심스레 가르마를 탈 때도 고개를 갸웃거리는 게 어딘가 확신이 없어 보이기도 했다.
나는 궁금증을 이겨내지 못하고 물었다.
“저기..”
두 여자의 시선이 동시에 나를 향했다.
“혹시 김정진님이세요?”
그러자 손님과 파마를 말던 여자가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무엇이 그리 웃긴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우리 사장님 이름이 김정진! 나는 여기 직원.”
“아..”
“이사 왔어요?”
앉아있던 손님이 물었다. 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모를 수 있지.”
“사장님이 실력이 좋으신가 봐요.”
“아휴, 저거 봤죠? 대단하신 분이지!”
직원이 턱 끝으로 벽에 붙은 액자들을 가리키자 앉아있던 여성이 말을 이었다.
“맞어. 나두 전부터 궁금했어~ 저렇게 대단한 양반이 왜 이런 시골에서 장사 하는지.”
“그거야, 사연없는 사람 있나요?”
“무슨 사연?”
손님이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묻자 나도 덩달아 고개를 끄덕이며 궁금하다는 표시를 했다.
“그거는 쫌 말하기가 그래 형님.”
직원은 손님을 형님이라 불렀다.
“동생, 나 입 무거운 거 몰라?”
“알지.”
“근데도 말 못 해?”
“아이. 참 이거 난감하네..”
직원은 잠시 움직이던 손을 멈추고 창밖을 보았다. 장갑 낀 손으로 눈썹 주변을 몇 번 긁더니 큰 결심이라도 한 듯 입을 열었다.
“형님, 이거는 진~짜 어디 가서 말하면 안 돼요~”
“나 여기서 나가는 순간 다 까먹을게. 그쵸? 새로 이사 온 아가씨?”
“그럼요. 저도 바로 잊을게요.”
나는 뭐든 한번 들은 건 좀처럼 잊는 법이 없었지만, 도리가 없었다.
그러자 직원은 어디서부터 어떻게 이야기 할지 머릿속으로 정리하는지 눈동자를 위로 치켜뜨고 잠시 생각 하다 쩝하고 입을 뗐다.
“나도 사장님이랑 술 한잔하다 우연히 들은건데 우리 사장님이 저거 보면 알겠지만, 한때는 이쪽 업계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었대요. 강남에 압구정인가 청담동인가 그야말로 아주 톱스타들 있잖아. 응? 그런 연예인들, 재벌가 사모님들이 우리 원장한테 머리 한번 하려고 그렇게 줄을 섰다는 거 아녜요.”
형님이라 불리는 손님은 오, 음, 아 같은 추임새를 넣으며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사람을 딱 보면 있잖아요?"
"두상부터 얼굴형, 피부 톤, 그 사람 이미지까지 쫘악 스캔을 해서 자기 얼굴에 기가 막히게 어울리는 헤어스타일을 만들어 줬대요. 글쎄.”
“허, 대단하네.”
“한번 우리 원장 손을 거치잖아요?
그러면 다음부턴 절대로 다시는 다른 데 갈 수가 없었대요.
그러니 손님이 늘다가 늘다가 도무지 어쩌지도 못하는 상황까지 간 거지.”
“어머나 어머나, 어쩌면 좋아.”
“돈 벌고 명예를 얻으면 뭐해요? 피곤에 쩔어서 링거를 노상 달고 살았다는데.”
나는 다음 이야기를 기다리며 침을 꿀꺽 삼켰다.
“하루는 있잖아요.
당시 우리나라에서 제일 인기 있던 여배우가 우리 사장님을 찾아왔더래요.
그때는 사장님이 좀 쉬어야 하는데, 글쎄 욕심인지 뭔지. 그 배우 머리를 잘라주다가 잠깐, 아주 잠깐 존다는게 그만.”
“응? 그만 뭐?”
손님이 짜증 섞인 목소리로 빨리 말하라 재촉하듯 물었다.
“그만 가위로 배우 목을 건드렸지 뭐야.”
예상치 못한 전개에 사고가 정지되는 기분이었다.
“뭘 어떻게 건드렸는데?”
“아니, 생각을 해봐요. 우리 사장님 가위가 얼마나 잘 들겠어? 끄트머리로 아주 살짝만 찝어도 그게.. 아이, 몰라. 아무튼 여배우 목에 상처가 났으니 한동안 활동을 못했겠지.”
“쯧쯧쯧쯧. 세상에.”
앉아있던 손님도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그래서요? 그래서 어떻게 되었대요?”
내가 물었다.
“그 배우 몰라요? 박채린.”
“아니. 가만있어 봐. 몇 년 전에 자살한 박채린이?”
직원은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한때 출중한 외모와 탄탄한 연기력까지 겸비해, 출연하는 작품마다 메가 히트를 친 배우다.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천만 배우, 국민 배우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던 배우였는데
어느 날 갑자기 우울증으로 활동을 접었고 그렇게 대중들에게 잊어지다가 몇 해 전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는 기사를 접한 적이 있었다.
“그럼 박채린이가 김 사장 때문에 죽은 거였어?”
“아이고 형님. 설마 그러기야 했겠어요?”
“본인도 그 일로 뭐냐. 트.. 트..”
“트라우마요?”
“그래! 그거 때문에 우울증 약도 먹고 한 1,2년 쉬었다더라고. 그리고 다시 일을 시작했는데 그 뒤로 가위만 잡으면 한 번씩 손이 벌벌 떨린다 그러대?”
“그래서?”
“그래서는 뭐.. 사고를 한 번 더 쳤다더라고요.”
“잉? 나 이젠 좀 무서워질라 그러네. 동생~”
또 다른 사고라니. 어쩐지 목덜미가 서늘하게 느껴져 두손으로 목을 감쌌다.
“아주 큰 사고는 아니고~ 강남에선 소문 때문에 장사를 접고, 서울 변두리 무슨 학교 앞에서 여대생들 상대로 미용실을 차렸대요. 그날도 우울증 약 때문에 정신이 오락가락했는지, 뭐시기 트라우마 때문인지 또 그놈에 목을 쯧.”
직원은 말끝을 흐렸다.
나는 갑자기 김정진이란 사람의 얼굴이 궁금해졌다.
가게 안을 둘러보았지만 여기저기 사장의 이름만 있을 뿐, 사진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 손님은 또 어떻게 됐는데?”
“새파란 여대생 목에 상처가 났으니 합의금을 꽤나 많이 요구했다더라구요. 그게 정맥 쪽은 피도 많이 나고 상처도 아무는데 오래 걸리거든. 아무튼 합의금 주느라 가게도 접었는데 여기까지 와서 또 차린 거 보면 아직도 미련은 남은 거 같죠?”
“김 사장 그렇게 안 봤는데 좀 무서운 사람이네~?”
삐삐삐삐.
그때 중화약 바르는 시간에 맞춰둔 타이머가 울렸다.
“자, 형님은 이제 15분만 기다리시면 되고, 손님은 이쪽으로 앉으세요.”
갑자기 이야기가 끊기자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어떻게 잘라 드릴까?”
그때였다.
딸랑거리는 종소리와 함께 미용실 문이 열렸다.
"어머나, 사..사장님!"
-다음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