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 한 갑만 사다 주실래요? (2편)

단편소설. 오늘 처음 만난 미성년자에게 담배를 배웠다.

by epiphany
막다른 골목 끝에 다다르자, 언제 붙였는지도 모를 담벼락의 ‘흡연 금지’ 싸인을 비웃기라도 하듯 바닥에는 꽁초들이 흩어져 있었다.


어디서 보았는데 이런 용도에는 ‘금연구역’, ‘흡연 금지’처럼 고리타분 한 문구보다

‘여기서 담배 피는 사람 바보’

혹은

‘바보들은 여기서 담배를 핍니다.’

같은 것들이 훨씬 효과적이라고 했다.


어쨌든 여기가 바보들의 아니 애연가들의 스팟인가 보다.

주머니에서 만지작거리던 말보로를 꺼내자, 아이의 눈빛이 밥그릇을 바라보던 배고픈 몽구처럼 변했다.

담배는 얇은 투명 비닐로 포장되어 있었다.

모서리에 실 테이프를 찾으려 가까이 들여다보자 아이가 이번엔 좀 더 과감하게 피식 웃었다.

나는 괜히 눈치를 보며 작은 헛기침을 한번 했다.

“처음이세요?”

어째서인지 대답하고 싶지 않았다.

“왜요? 왜 안 피세요? 술은 마셔요?”

하.. 담배 심부름해줘, 추적추적 비까지 맞아가며 친히 포장까지 까주는 내게 이런 비아냥으로 굴욕을 주다니..

“너 담배 안 준다.”

“전 대학 가면 할 수 있는 건 다 할 거예요."

커봐라. 등록금 내고 친구들이랑 밥 먹고 커피 사 먹으면 술값도 아쉬울 거다. 담배 같은 기호식품은 있는 집 애들이나 가능하지.. 세상 물정 모르고 한심한 소리 하는 꼬맹이 같으니라고.

“그러세요.”


제거한 비닐 껍질과 속지를 버릴 만한 곳을 찾아 두리번거리다 그냥 코트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말보로 한 개비를 꺼내 아이에게 건넸다.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걸까.

혹시 귀신에라도 씌인 건가 심히 걱정도 됐다.

“아. 라이터.”

주머니 속에서 500원짜리 라이터를 꺼내려는데 아이가 자신의 청바지 작은 호주머니에서 지포라이터를 꺼내는 게 아닌가.

이 아이와 만난 건 20분도 채 안 됐는데 대체 몇 번이나 어른을 당황시키는 건지..

나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담배 한 개비를 더 꺼냈다.

“피시게요?”
아이를 향해 어깨를 한번 으쓱 들어 보이곤 담배를 입에 물었다.

쿨한 어른처럼 보이고 싶었지만 담배를 너무 깊숙이 무는 바람에 입술 밖으로 나온 건 고작 2센티가 남짓이었다.

“풋.”

어차피 얘도 내가 처음인 거 다 눈치 깐 마당에 더 이상 부끄러울 것도 없다. 그렇다고 한때는 교사를 꿈꾸었던 내가 학생에게 담배를 배우게 될 줄이야.

그것도 오늘 처음 만난 미성년자와 맞담배를.

퇴근길 이 낯선 곳에서 중학생에게 담배를 배울 거라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가만 생각해 보니 오늘 아침 엄마는 화분에 물을 주면서 “아~ 한 치 앞도 모르는 우리네 인생”이라며 열창을 하고 있었다.

가끔 보면 엄마는 점쟁이 같다.

그러고 보니 당장 내일 아니 오늘 밤에는 또 무슨 예기치 못한 일이 벌어질지 모른단 생각까지 미치자 서둘러 담배에 불을 붙이고 싶어졌다.

아이는 입술 사이 정확하게 필터 부분을 물고 있었고 나는 그걸 보고 고쳐 물었다.

그러자

그 애가 순식간에 지포라이터에 불을 붙여 내 얼굴 앞으로 들이밀었다.

그동안 영화와 드라마에서 배우들이 멋스럽게 담배를 피우던 장면들이 머릿속에 뒤죽박죽 순서 없이 떠올랐다 사라졌다.


나는 한여름에 시원한 아메리카노를 빨아올리듯 입술을 잔뜩 오므리고 있는 힘껏 들이 마셨다.

망할. 연기에도 맛이 있다니.

쓰고 매캐한 안개 같은 것이 몸속을 기분 나쁘게 휘저었다.

콜록! 콜록!

기침은 아주 깊숙한 곳에서 분출되듯 뿜어져 나왔다.


아이는 자기 담배에 불 붙이는 것도 잊고 내 모습이 꽤나 흥미로운 듯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이 모습을 부장이 본다면 무슨 헛소리를 할까. 갑자기 그게 왜 궁금한걸까.

콜록! 콜록! 콜록!

눈물이 찔끔 났다.


“언니, 오늘 무슨 일 있었어요?”

나는 두 손으로 눈물을 찍어 훔치며 그게 무슨 소리냐는 얼굴로 쳐다봤다.

“보통 처음 필 때는 그렇게 깊이 안 빨거든요. 처음은 xx 소심하게 빨아요. 내 친구들도 다 그랬어요.”

얼씨구.. 무슨 담배 전도사라도 되세요.

“근데 저도 첨에 언니처럼 기침했어요.”


아이의 엄마, 아빠는 매일 밤마다 부부 싸움을 했다고 한다.

그러고 나면 아빠는 밖에 나가 엄마는 베란다에서 담배를 피웠다고 했다.

둘이 이혼한다고 했을 때, 엄마의 것인지 아빠의 것인지 모를 담배를 거실에서 한 개비 훔쳐서 처음 피웠다고 했다.

“이제 나는 어떻게 되는 건가 걱정도 되고, 맨날 죽일 듯이 싸움만 하는 집구석이 지긋지긋하기도 하고. 그런 마음들이 뭉쳐있었던 거 같아요. 홧김에 겁나 세게 빨았더니 언니처럼 그렇게 기침을 했었어요.”


그 애에게 무슨 말을 해주어야 할지 몰랐다.

이혼율은 갈수록 높아진다던데 생각해 보니 내 주변에 이혼 한 커플은 하나도 없었다.

뭐든 어설프지 않은 어른처럼 보이고 싶어 니 맘 다 안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언니는 무슨 일 있었는데요?”

사춘기에 가정이 붕괴되는 경험을 하고 있는 아이를 두고 회사의 변태 아저씨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애인이랑 싸웠어.”

아이는 이토록 찌질한 어른에게 그런 것도 있냐는 얼굴로 잠깐 놀라더니, 이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리곤 자기 담배에 익숙하게 불을 붙였다.

흰 종이 안에 싸인 갈색 담뱃잎에 라이터가 닿자 번뜩 불길을 만들었다.

아이는 가느다란 손가락 사이에 낀 그것을 참 맛있게도 빨았다.

그 모든 게 물 흐르듯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그제야 내가 한 짓에 후회가 밀려왔다.


-마지막화에 계속-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