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_일디코 엔예디(2017)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는 사슴이 되어 설산을 누비는 꿈을 공유하는 안드레와 마리아의 만남에 대한 이야기다. 어느 도축업체의 재무이사로 일하는 안드레, 출산휴가를 떠난 품질 관리원의 대타로 들어온 마리아. 안드레는 마리아를 처음 본 순간부터 그녀에게 관심을 가진다. 둘은 교미 발정제가 없어진 사건으로 상담사를 대면하면서 서로의 같은 꿈을 꾼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급속도로 가까워지기 시작한다.
안드레는 한쪽 팔을 쓰지 못한다. 남은 팔로 음식을 먹고, 옷을 입고, 일 한다. 그는 어찌 된 이유인지 몇 년 전부터 모든 욕망을 끊었다. 그래서일까, 안드레의 눈빛에는 생기가 돌지 않는다. 마리아는 타인과의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다. 어릴 때부터 쭉 상담을 해왔던 것 같고, 자신의 공간(집)에서 타인을 배제한 체, 이야기하는 것도 레고를 통한 상황극으로 프로토콜처럼 연습하지 않으면 제대로 할 수가 없다.
이 영화는 육과 영의 불구가 어떻게 서로의 결핍에서 벗어나는지를 보여준다. 안드레는 신체적 불구이고 마리아는 정신적 불구다. 불구라는 뜻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함을 의미한다. 안드레의 팔이 그러한 것처럼, 마리아의 의사소통이 그러하다.
이 영화는 하갈과 사라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 하갈은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의 시녀였지만, 사라가 아이를 낳지 못하자 그녀 대신 아이(이스마엘)를 낳는다. 그러자 사라에게도 아이가 생기는데, 바로 언약의 아이인 이삭이다. 이 이야기에서 중요한 것은 육과 영의 순서다.
일단 성경만 보더라도 육과 영 가운데 하나를 곧바로 고를 수 없다. 육과 영이 동시에 주어지며 그 가운데 하나를 고를 수는 없다는 뜻이다. 사라가 아들을 얻으려면, 하갈이 먼저 아들을 낳아야 한다. 아들을 낳는 순서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영을 선택하려면 육을 먼저 선택해야 하는 것과 같다. 그래서 두 번째 아들만이 참된 영의 아들이 될 수 있다. ... 육을 통과해야 비로소 영에 이른다.
[신을 불쾌하게 하는 생각들]_슬라보예 지젝
영화 속에는 육과 영을 대표하는 공간이 등장한다. 살이 살을 해체하고, 끊임없이 살을 마주하는 육의 공간이 도축장과 서로 인간이 아닌 다른 무언가가 되어 만나는 영의 공간인 설산이 그러하다. 영화의 순서상 안드레와 마리아는 영의 공간(설산)에서 처음 서로를 만나고 그 후에 육의 공간(도축장)에서 처음으로 대면한다. 도축장은 '몸'과 깊이 연루된 장소로, 마초적인 말로 으스대지만 자신의 남성성을 바로 세우기 위해 교미 발정제를 빼돌리는 인간이 있는가 하면, 입사하자마자 젊은 직원들에게 추파를 던지는 신입 '수컷'도 있다.
안드레와 마리아가 서로 꿈으로 연결돼 있기는 하지만 둘이 이어지려면 현실적인 문제가 남아있다. 꿈은 곧바로 둘을 결합시키지 못한다. 둘에겐 실수와 상처라는 단계가 남아있다. 이것을 거치지 않으면 둘은 이어질 수 없다. 그래서 마리아와 안드레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삐걱댄다. 휴대폰이 없다는 마리아의 말을 자신과 이야기하기 싫다는 뜻으로 오해하는가 하면, 속내를 알 수 없는 마리아의 스킨십 거부에 지쳐 이제 그만하자는 안드레의 말에 마리아는 자살을 시도한다. 그러나 그 순간 마리아의 새 핸드폰에 전화벨이 울리며 그녀를 구원한다.
마리아는 안드레에게 사랑을 일깨워준 존재다. 그가 관계에 지쳐 짜증을 내고 다른 이성과 관계를 맺을 때 안드레는 꿈속에서 마리아를 찾아 헤맨다. 그는 실수를 저지른 다음에야 깨닫는다. 이미 마리아에 대한 마음이 걷잡을 수 없다는 것을. 그렇게 안드레는 같은 시각, 죽어가고 있던 마리아에게 연락해 사랑을 고백하고 마리아를 살린다.
의아한 것은 이 둘이 육체적 관계를 맺고 연인이 된 후의 마지막 시퀀스다. 안드레와 마리아는 웃으며 아침 식사를 하는데, 안드레가 흘린 빵 부스러기를 마리아가 굳은 표정으로 털어내고 잠깐의 적막이 흐른다. 그리고 한동안 꿈을 꾼 적이 없다고 말한다. 기억력이 좋은 마리아도 꿈을 꾼 적이 없는 것 같다는 말도 한다. 그 말이 끝나자 설산이 환한 빛으로 가득 차며 끝이 난다.
이 둘은 어떻게 되는 걸까? 영으로 맺어진 이 연인에게 나쁜 미래가 펼쳐진다는 암시라도 되는 걸까? 빛으로 가득 차며 소멸되는 듯한 설산의 마지막 이미지를 보면 그런 것 같지는 않다. 다만 그 둘이 이미 연결됐기 때문에 꿈에서 만날 필요가 없는 거라는 생각이 든다.
영화를 보면서 [펀치드렁크]가 생각났다. 수줍음 많은 막내로 자란 남자가 자기를 사랑해주는 여자를 만나 달라지는 내용이다. 남자 주인공은 여자를 만나 사랑의 힘 때문인지 찌질했던 과거에서 나아가 새로워진다.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의 남자 주인공도 끝내 실수의 굴레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솔직하게 받아들이며 연인과의 재결합에 성공한다.
결국 사랑은 혼자 할 수도, 의지를 가졌다고 해도 할 수 없는 일인 것 같다. 사랑으로 인해 원하든 원치 않든 우리는 바뀐다. 안드레는 애프터 쉐이브를 사고 마리아는 으깬 감자와 스킨십을 한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그 둘은 어떻게든 타성에 젖은 자신의 모습을 변화시킨다.
이 영화는 여행에 대한 기억을 다시금 상기시킨다. 뿌연 필터를 낀듯한 피렌체의 밤거리를 걸었던 날의 기억이 촉감처럼 오소소 찾아왔다. 내가 묵던 #에어비앤비 는 베키오궁 근처에 있었는데, 시든 표정으로 들어와 잠들면 새벽 즈음에는 행인들의 웃음소리가 창 밖으로 들려오곤 했다. 부스스 덜 깬 눈으로 웅성거리는 창 밖을 바라보던 그 꿈결 같은 순간을 잊지 못한다. 영화를 보며 나는 조금 외로워졌고, 이 달콤 씁쓸한 외로움을 맛보러 어딘가로 훌쩍 떠나고 싶어 졌다.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영화(https://movie.naver.com/movie/bi/mi/photoView.nhn?code=159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