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st personal is the most creative
며칠 전 예전 브런치에 끄적였던 글을 보고 한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해당 회사는 공유할 이야기가 있는 사람(여기서는 ‘호스트’라고 부른다)과 이를 1:1으로 듣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버추얼로 연결해주는 플랫폼 스타트업이었다. 인생 선배를 자처하는 호스트와 그 이야기를 듣고 싶은 게스트가 대화할 수 있도록 연결해주고, 게스트가 지불하는 비용에서 약간의 중개수수료를 받는 것이 사업 모델이었는데, 내게 호스트가 되어 주면 좋겠다는 제안이었다. 호스트로 등록되어 있는 사람들 중 해외에서 근무하고 있는 한국인들이 많았는 데, 아마 내가 브런치에 쓴 <MBA 도전> <싱가포르 생활> 등의 짤막한 글을 보고 연락이 온 것 같았다.
이곳은 매우 초기 단계의 스타트업으로서 호스트들을 적극적으로 확보하고 있었는데, 그 노력이 얼마나 열성적이었던지 나에게까지 등록 제안이 왔다. 이러한 요청을 받는 것은 내게 매우 생소한 일이었는 데, 사람들이 내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는 하는지 여부는 차치하고서라도 포스팅과 팔로우 수도 거의 없는 온라인 상 presence 가 매주 작은 나에게까지 연락이 온 것이 신기할 뿐이었다. 처음에는 호스트에 대한 bar가 너무 낮아서 그런 것 일까 하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뭐 어찌 됐든 연락을 받은 것이 기분 나쁜 일은 아니었다. 크지 않지만 나름 작은 도전들을 해왔다고 스스로 생각하기도 하고, 그런 도전과 노력을 누군 가는 듣고 싶어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 ‘한번 해볼 까?’라고 하던 찰나..! 다시 생각을 정정했다. 객관적으로 나를 돌아보고 주변을 살펴보니 내가 지금까지 이룬 것이 있다고 말할 것이 별로 없었다. 한 분야에서는 전문가라고 할 만큼 정통한 것도, 남들이 가보지 않은 길을 용기 있게 가본 것도, 뚝심을 갖고 자기 사업을 해 본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자 멘토처럼 사람들에게 내 이야기를 해주기는 어렵다고 생각했다. 특히 비슷한 나이에도 대단한 성취를 한 사람들과 나를 비교해보니 더더구나 하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위에 열거한 이유들을 한 두줄로 정리하여 예의 있게 NO라는 답변을 업체에 보냈고 마음이 편해졌다. (괜한 자신감으로 등록했다가는 나중에 겪을 크게 창피할 일을 모면했다는 안도감과 함께) 그런데 다음 날 다시 답장이 왔다. “부담 갖지 마세요. 유영님의 이야기가 비슷한 경로로 가는 누군가에게는 큰 도움이 될 거예요!”라는 내용으로…
흠… 내가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까? 주제는 잘 찾아봐야 MBA와 해외 취업 정도일 테지만, 이러한 주제는 이미 훌륭한 입담, 필력, 그리고 재미난 경험을 담은 콘텐츠를 쉽게 찾을 수 있었고 정보 전달 위주의 내용은 내가 더 이상 value를 add 하기 어려워 보였다. 이렇게 이어진 생각은 ‘그럼 지금의 나를 있게 한(거창해지려는 의도는 아니다), 그니까 지금의 나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데 가장 큰 계기가 되었던 것은 무엇일까?’의 질문으로 바뀌었다. 처음엔 ‘음.. 계획에도 없던 해외에서 일하고 살고 있으니 그 물꼬를 터준 MBA인가?’라는 생각이 들다가 ‘아니 그보다 MBA를 목표하고 준비할 수 있게 해 줬던 그 전 회사일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아니면 ‘그보다 더 이전인 대학 졸업 후 로스쿨을 준비했던 과정이 결국 이 길로 오게 했나’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나의 막연하기만 했던 꿈을 북돋아주고 구체화해주었던 한 친구 덕분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런 생각은 계속 이어졌는데 결론은 사실 내가 경험한 모든 것들 - 도전과 실패, 노력과 좌절, 내가 했던 모든 여행 - 나에게 자극과 영감을 준 장소와 작품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교류했던 모든 사람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어떤 방식으로든> <크든 작든> 내가 지금까지 오는 길에 영향을 주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나의 방식대로 해석하게 해 주었던 것은 읽었던 책 들이었다. 대학교 1학년 때 읽었던 알랭 드 보통의 책을 통해서는 세상을 해석하는 새로운 프레임을, 폴 오스터의 책을 통해서는 필연과 절대성으로만 해석하지 않는 아닌 관점을, 이어령, 리처드 도킨슨의 책과 강연을 통해서는 과학과 종교를 생각해보는 계기를, 그리고 또 시오노 나나미 덕분에 흥미를 갖게 된 고대 그리스, 로마인 이야기에서 르네상스까지 이어지는 역사와 예술. 많지는 않지만 그때 읽었던 책들이 아니었다면 아마 똑같은 경험을 하고도 다른 해석과 결론을 내렸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어쩌면 그것들이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글로 적고 보니 내가 한 경험도 그 자체로 소중하고 고유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맥락은 다르지만 봉준호 감독의 수상소감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아래 구절도 떠올랐다.
"When I was young and studying cinema, there was a saying that I carved deep into my heart, which is that the most personal is the most creative" "That quote was from our great Martin Scorsese."
"제가 어릴 때 영화 공부를 할 때, 제 마음에 깊이 새겼던 말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현재의 나일 수 있음에 감사하다. 지금 어디 있든 그리고 앞으로 어딜 가든, 어떤 것이 다가 오든 나는 그를 받아들일 것이고 사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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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만에 책도 읽고 글도 쓰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 끄적인 글-
마리나 베이 스타벅스에서 시작해서 집에서 마무리�
https://www.youtube.com/watch?v=MqzE7a1J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