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에 파묻혀, 아니 파묻히기보다는 떠밀린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지 모르겠다. 뭔가 일에 파묻힌다는 말을 들으면 굉장히 높은 수준의 업무를 하기 위해 자발적이고 불필요할 수도 있는 추가적인 노력을 들이는 느낌이라면 나의 상황은 음.. 그렇다기보다는 반 강제적인, 그니까 봉급을 받는다면 해야만 하는 일을 하면서 헉헉대는 것에 가까웠으므로 ‘일에 떠밀리다’라는 말이 더 맞을 것 같다. 하여튼… 이런 느낌의 ‘업무에 떠밀리는’ 생활을 한 지 몇 달이 지났고, 드디어 삶도 정상 궤도로 돌아왔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여유이고 편안함이다. 운동도 시작하니 기분도 상쾌하고. 오랜만에 약속이 없는 주말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을 들고 밖을 나섰다. 사실 몇 달 동안 책을 한 장도 읽지 않았다. 한 장도 읽지 않은 것보다 놀라운 것은 ‘책을 읽고 싶다’라는 욕구도 들지 않았다는 것. 핑계이겠지만 (아니 실제 나의 뇌 용량의 한계일 수도 있겠다) 몇 달간 다른 것에 신경을 기울일 만한 에너지가 없었다. 그래서 야근을 끝내고 나면 아무 생각 없이 소파에 누워 TV를 틀어 놓고 회사 일을 잊어버릴 수 있는 가장 단순하고 수동적인 휴식만을 취했다. 그러는 만큼 나는 칙칙한 사람이 되어 갔으려나.
그러기를 몇 달. 오랜만에 정말 오랜만에 ‘책을 읽고 싶다’라는 욕구가 드니 반가웠다. 역시 하루키의 책은 언제 읽어도 몰입도가 높다. 어느 곳인가 하루키가 우디 앨런의 영화 장면을 묘사한 부분을 읽다가 든 생각 ‘아 맞다! 나도 취향이 있는 사람이었는 데’ 그렇다. 나도 취향이 있는 사람이었다. 문학적 취향. 폴 오스터의 신작을 찾아보며 좋아하고 하루키의 글을 읽으며 크크 거리고 알랭 드 보통 책을 아껴보겠다고 천천히 읽다 우디 앨런 영화를 보며 해학과 위로를 느끼는 그런 나름 취향을 즐기고 부지런한 사람이었는 데! 업무의 양과 스트레스가 많아지는 만큼 일상의 여유가 없어지니 이러한 나의 취향도 깊은 곳에 묻혀 스스로 무엇에 즐거워하는지 잊고 있었던 것이다. 앞으로도 나를 더 즐겁도록 해야지. 인생에서 반드시 해야 되어 서가 아닌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하고 싶어 한다는 것, 그리고 할 수 있다는 것은 감사한 일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