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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홍 Jun 09. 2024

《영국 노동계급의 형성》을 마저 읽다.

민중들은 민초이다!

《영국 노동계급의 형성》상의 〈사탄의 요새들〉장을 마저 읽다.

프랑스대혁명이 터지자, 잉글랜드의 지배계급들은 혁명이 잉글랜드에 들어올 것이라는 두려움에 빠진다. 이들은 자신들을 민중들이 타도하는 일이 없도록, 민중들은 부도덕하다는 정형화 또는 프레임으로써 노동과 금욕을 설파하는, 복음주의의 회심주의에 기반을 두는 글들을 써댐으로써 민중들을 지배계급들의 지배논리에 길들인다. 반국교도 곧 잉글랜드 성공회의 교리와 전례에 반대하는 개신교와 복음주의 성공회 신자인 한나 모어가 그러한 역할을 한다. 보수주의자들인 이들은 지배계급의 이념을 설파하는 지식인들에 불과하다. 지식인들이 교도소 환경개선-한국도 마찬가지이다. 고 노회찬 의원이 국회에서 새우잠을 자는 모습을 보여서 재소자들의 인권이 열악함을 비판한다.-등의 인권운동을 할 정도로 진보하던 잉글랜드 의 역사가 지배계급들이 프랑스 혁명에 대한 두려움을 느껴 보수주의로 돌아가 버렸다.

산업자본주의로 사회구조가 바뀌어 노동자와 자본가가 등장하자, 노동운동으로써 투쟁하는 노동자들에게 지배계급들은 폭력 프레임을 씌운다. 기계파괴와 절도를 사형으로써 처벌하도록 형법을 개악하여, 법의 폭력으로도 자신들을 낮은 임금으로 착취하여 빈곤에 빠지게 하는 자본에 대한 민중들의 투쟁을 탄압한다. 그래서 민중들은 자신들을 억압하는 형법을 증오하고, 골드스미스라는 작가는 “빈자를 법으로써 으깬다.”라고 비판했고, 법의 폭력으로써 처형당하는 민중들에게 꽃과 오렌지를 던져서 지지를 보냈다고 한다. 재판에서도 배심원들이 사형에 반대하고는 하였다. 필자가 판단하기로는 빅토르 위고가 쓴 《레 미제라블》이나 연암 박지원이 쓴 《허생전》도 산업혁명 시기에 영국 민중 및 지식인들이 했던 생각과 같은 비판의식을 담고 있다.

이는 한국도 마찬가지여서, 지배계급들은 노동하는 민중들이 자신들을 착취하는 자본에 저항하지 못하도록, 노동조합 혐오선동, 최저임금 인상반대 프레임을 조선일보, 중앙일보라는 보수언론들로써 설파하여 민중들을 지배계급의 지배논리에 길들인다. 또한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신군부가, 윤석열 대통령이 그러했듯이 민중항쟁과 노동운동으로써 투쟁하는 노동민중들에게-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전두환의 살인명령을 따른 계엄군들의 살인으로써, 국가폭력으로써 죽임당한 사망자 대부분이 임금노동자 특히 정신노동자들과 달리, 육체노동을 하는 하층노동자들이다.-폭력 프레임을 씌운다. 윤석렬이 말하는 “법과 원칙”도 대우해양조선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임금삭감에 항의하여 파업을 하였을 때, 국가의 탄압을 비판한 민주당 이탄희 의원의 표현처럼 “선택적 법치주의”(SBS 8시 뉴스 유튜브 채널)일 뿐이다. 최근 산업재해와 실업급여를 노동자의 권리로서 존중하기보다는, 부정수급 프레임으로써 노동자들을 부도덕하다고 낙인찍는 국민의 힘, 고용노동부, 조선일보의 꼴도-이에 대해서는 권동희 노무사님과 이상헌 국제노동기구 고용특보가 《경향신문》과 《한겨레신문》에 쓰신 글을 참고하면 도움이 된다.- 영국의 지배계급들과 닮았다.

그럼에도 민중들은 강하게 투쟁한다. 장 칼뱅이 “하느님은 임금노동자들에게 생활비를 임금으로써 주시기 때문에, 임금삭감은 죄”라고 비판함에서 알 수 있듯이(이종성,《칼빈》,대한기독교출판사.) 노동자들의 생활비를 줄이는 임금을 줄임에 항의하여 싸우고, 보일러의 플러그를 뺌으로써 싸운다. 또한 사재기와 매점매석을 하여, 터무니없이 물가를 높이는 상인들과도 싸운다. 존 웨슬리 신부에 의하면, 노동자들은 상인들이 사재기와 매점매석을 한 곡식을 부두에서 가져와서 시장에서 정상가격을 판매함으로써 가난한 이들이 굶어죽지 않게 하였다.(92-93쪽.) 1766년에는 섬유노동자들이 농장주들에게 곡물을 가져다가 시장에서 정상가격에 팔고는, 판매한 돈과 포대를 돌려주었다. 정부는 퇴역군인인 토머스 스펜서와 섬유노동자들이 곡물 상인들에게 곡식을 비싸게 팔지 말라고 요구하여, 처형당한다. 그러자 민중들은 장례마차를 따르는 연대를 하였다.

민중들은 민초이다. 민초는 질경이에서 유래한 말인데, 정말 들꽃처럼 민중들은 강인하다. 6월 6일 아침에 퇴근하는 길에 어느 때처럼 들꽃들을 살펴보려고 하니, 예초기에 매년 같은 위치에서 반겨주던 씀바귀들이 잘려나갔는데, 놀랍게도 다시 꽃을 피우고, 출근길에서 본 며칠 사이의 기억으로는 버스 정류장에서도 들꽃들이 예초기에 잘려나가도, 다시 꽃을 피움처럼 민중들은 예수처럼 끝없이 부활한다. 2024년 6월 9일 (일)

흩어지면 죽는다.! 흔들려도 우리는 죽는다! 하나되어 싸우는 우리! 승리의 그날까지!-파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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