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재홍 Jan 28. 2024

예수의 가르침을 듣고 사람들이 경탄하였다.

제2독서와 복음서를 듣고 정리한 생각.


제2독서가 사도 바울이 고린토 교회에 보낸 첫째 편지 1장 21절에서 28절이다. 사도 바울은 고린토 교회에서 우상에게 바친 제물을 먹는 문제로 갈등과 고민을 하는 교우들을 위해 편지를 보냈다. 퇴계 이황 선생과 다산 정약용 선생이 후학들과 유배지인 전남 강진군에서 두 아들들에게 보낸 편지처럼 사도 성 바울은 고린토 교회의 문제에 대해 답장을 보내어 다신교 사회에서 살아가는 교우들의 믿음이 강건하도록,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심처럼 믿음이 약한 교우들을 믿음이 강한 교우들이 우상에게 바친 제물을 먹지 않음으로써 배려하도록 돕고 있다.

복음서가 마르코복음서 1장 21절에서 28절이다. 예수께서 가파르나움의 회당에서 하느님나라 복음을 전하시자, 많은 사람들이 그분의 말씀이 율법학자들과 달리 권위가 있었다고 칭찬을 한다. 장로교 목사이자 신학자인 유진 피터슨은 《메시지》신약(복 있는 사람)의 《마가복음》에서 “종교학자들처럼 인용과 궤변을 늘어놓지 않고, 솔직하고 확신에 찬 예수의 말씀에 사람들이 놀랐다”라고 말한다.(121쪽) 성공회 사제이신 장기용 요한 신부님과 김학윤 다니엘 신부님은 “사람을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마음”을 가지심, “섬기고 사랑하는 권위”라고 설명하셨다.(2024. 1. 28 연중 4주일 설교문, 주보). 필자의 생각에는 예수님의 가르치심이 학자인 율법학자들과 달리 매우 솔직하고 꾸밈이 없는 소탈한 가르침이셨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산 정약용 선생이 전남 강진군에 유배생활을 하실 때 집주인 노파와 한 이야기를 전남 신안군 흑산면에서 유배생활을 하시던 둘째 형인 정약전 선생(어민인 장창대의 도움을 받아 물고기 도감인 《자산어보》(서해문집)를 쓰신 분이시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말한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차이


어느 날 저녁에 집주인 노파가 곁에서 한담을 나누다가 갑자기 물었습니다. “선생은 책을 읽은 사람이니 이런 뜻을 아시는지요? 아버지와 어머니의 은혜는 똑같고 더구나 어머니가 오히려 애쓰시는데도, 성인들이 교훈을 세우기를 아버지를 중히 여기고 어머니는 가벼이 하며 성씨도 아버지를 따르게 하였고, 복(服)을 입을 경우에도 어머니는 아버지보다 한 등급 낮게 하였습니다. 아버지의 혈통으로 집안을 이루게 해 놓고 어머니 집안은 도외시하였으니, 이건 너무나 편파적이지 않은가요?” 그래서 저는 “‘아버지께서 나를 낳으셨다’라고 했기 때문에 옛날 책에는 아버지가 자기를 처음 태어나게 하신 분으로 나와 있소. 어머니의 은혜도 무척 깊기는 하지만, 하늘의 으뜸, 탄생되게 하는 근본의 은혜가 더 중요한 탓일 겁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노파는 “선생의 말은 옳지 않습니다. 내가 생각해 보니 그렇지 않습니다. 풀이나 나무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아버지는 나무나 풀의 종자입니다. 어머니는 나무나 풀로 보면 토양입니다. 종자가 땅에 떨어지는 것은 그 베풂이 지극히 미미한 것이지만, 부드러운 종자가 밤나무가 되고 벼의 종자가 벼가 되는데, 그 몸 전체를 이루는 것은 모두 땅기운입니다. 그러나 결국 나무나 풀의 종류는 본래의 씨를 따라서 나뉘게 되는 것이니, 옛날 성인들이 교훈을 세워 예(禮)를 제정한 것은 이러한 이유인 것으로 생각됩니다.” 저는 노파의 말을 듣고 흠칫 크게 깨달아 공경하는 마음이 일었습니다. 천지간에 지극히 정밀하고 오묘한 진리가 이렇게 밥 파는 노파에게서 나올 줄이야 누가 알았겠습니까? 기특하고 기특한 일입니다.(다산 정약용, 박석무 편역, 〈3부 둘째 형님에게 보낸 편지〉,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창비. 311-312쪽. 2017년 개정 2판 3쇄.)

     

예수의 가르침도 그러하지 않았을까? 갈릴래아라는 농업과 어업을 하는 시골 청년인 예수의 입에서 나오는 하느님나라라는 대안질서와 사회공동체에 대한, 그분의 거룩한 가르침이 학자로서 논리는 완벽하지만 진솔함이 없는 율법학자들과 달리 청중들에게 깊은 공감을 일으킴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든다. 예수의 삶은 사람들이 경탄하도록 한 가르침뿐만 아니라 악령에 들린 사람들에게서 악령이 떠나가도록 하고, 베드로의 장모의 열병을 치유하도록 하여 해방자 그리스도가 되셨다. 로마제국에서는 로마의 평화를 말하여 식민통치를 정당화하는 선전을 하지만(식민주의), 실제로는 로마제국의 억압적인 식민통치를 받는 민중들의 몸과 마음이 병든 삶의 자리, 강대국이 다른 민족을 지배하고, 억압하고, 착취하는 지배구조인 제국주의 아래에서 민중들의 질병을 치유하시는 해방자 그리스도로서 그분은 사셨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자신이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도록 하셨다. 십자가에서의 고난과 부활로써 하느님의 어린양(Agnus Dei)으로서 이루신, 하느님의 아들을 보내시고 하느님의 어린양으로서 구조악, 존 스튜어트 밀, 엔도 슈사쿠가 《자유론》, 《예수의 생애》에서 지적했듯이, 닫힌 사회에서 종교권력인 가야파 대사제와 예수가 아닌 바라바를 택하고, 예수의 처형을 본티오 빌라도에게 요구하여 굴복하도록 한 민중들의 자기 중심성과 집단폭력에 의해 십자가에서 죽임 당함으로써, 우리의 구원을 위한 희생제물이 되도록 하신 하느님의 구원(메리 1세의 치세에 개신교 신앙을 고백하고 순교한 토머스 크랜머 캔터베리 대주교가 쓴 《성공회 기도서》 성찬기도 제1양식, 에드먼드 리치, 《성서의 구조인류학》, 한길사)을 사람들이 기억하고 깨달을 때까지. 그분의 십자가와 부활을 경험한 이들이 예수께서 자기 중심성으로부터 인간을 해방하여, 그분을 믿는 사람마다 자기 중심성에서 벗어나 영원한 삶에 이르도록 하시는 해방자 그리스도이심을 깨달을 때까지.(구스타보 구티에레즈, 성염 옮김, 《해방신학》, 분도출판사) 2024년 1월 28일 연중 4주일.

작가의 이전글 좋은 일자리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